◆쉽게 풀어쓰는 경제◆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문상을 가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대개 의무감에 얼굴을 비친 뒤 금방 빠져나오곤 하지만 간혹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특히 어르신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 특히 자식들은 얼마나 슬퍼할까'와 같은 생각이 무시로 들곤 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모딜리아니ㆍ브램버그ㆍ앤도 세 사람은 그들 이름의 첫 글자를 따 'MBA의 라이프사이클 가설'이란 것을 만들어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일을 하는 동안 재산은 지속적으로 늘다 은퇴 후에는 감소하게 된다. 현직에 있을 때 벌어놓은 돈을 은퇴 후 쓰는 것이니 이론상으로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대개 재산이 줄어들다 어느 순간 감소가 멈추게 된다. 멈추지는 않더라도 감소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활비는 연금 등으로 충당하고 재산에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그 이유는 자녀에 대한 영향력 유지에 있다. 즉 재산을 일찍 증여하거나 써버리지 않고 자기 수중에 보유함으로써 자녀에 대한 영향력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재산 보유 동기를 '전략적 유산(strategic bequest)'이라 한다. 자녀와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재산이란 패를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소 비정하게 들리지만 용어까지 생겨난 것을 보면 꽤 널리 통용되는 재산 보유 목적이다.
얼마 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60세 이상 노인이 소득 수준에 따라 얼마나 자주 자녀들과 접촉하는지를 알아본 것이다. 조사 결과 부모 소득이 1% 늘어날 때마다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날 확률이 2.07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글픈 결과다. 더욱 우울한 것은 다른 나라에는 한국 같은 곳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부모 소득이 적을수록 대면 접촉이 늘어나는 나라가 많았다. 자녀가 사정이 어려운 부모를 돌보기 위해 자주 찾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노년층 재산 보유 동기 중 하나로 '전략적 유산'의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 경기 침체가 아무리 길어질지언정 노인의 재산 가치만큼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매일경제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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