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은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곤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과연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서 일까요? 때로는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지나간 시간들이 그랬듯이 그것은 어느날 문득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견딜 수 없는 공허와 절망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신비하고 거대한 우주 공간속에서, 그리고 영원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했을때 우리들의 삶은 정말 왜소하고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와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예와 권력과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말년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장2절)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26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이처럼 귀하기에 우리는 단 한번의 기화밖에 주어지지 않은 이 생명을 보다 가치있고 행복하게 장식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돈과 권력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무리 이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순간 밀려오는 인생에 대한 공허와 불안과 두려움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품을 떠난 인생은 마치 어머니의 품을 떠난 아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떠난 아기가 아무리 다른 좋은 것들을 준다고 할지라도 불안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하나님품을 떠난 우리 인생도 불안과 두려움속에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시는 것일까요? 과연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는 것 일까요? 과연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모든 것은 끝나버리고 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결코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그렇습니다. 죽음은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살아 계셔서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분명 저 세상에는 천국과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나고 배우고 경험한 이 세상이라고 하는 틀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우물속에 갇혀서, 이 세상이라고하는 껍데기속에 갇혀서 하나님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한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의 교육을 받고, 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규범과 과학과 문화의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려 들고, 그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思考)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무의식속에서 진행되어 어느 사이엔가 굳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저 세상의 틀속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때 사람들은 믿을 수도 없었고, 믿으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가 돌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믿건 말건 지구는 바로 그 순간에도 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믿건 말건 하나님은 여전히 존재하십니다. 단지 그들이 알지 못할 따름입니다.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깨닫지 못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논리는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발견(또는 발명)하려면 고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지식과 경험의 껍데기를 벗어던져야 합니다. 저는 이 지면을 통해서 바로 그 작업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무지로 세상속에 갇혀있는 여러분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과 은혜의 속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돕고자하는 것입니다.
2.성경이란 어떤 책일까요?우리는 교회를 그저 이 세상에서의 축복이나 혹은 인격 수양을 위하여 다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교회에 다니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의 접근방법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접근방법의 오류는 거기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며, 그것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가치와 권위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3장16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어두움에 빠진 인생이 스스로의 힘이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구원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 3장 15절) 이것은 너무나 지당한 이치입니다. 나의 생각을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다른 어떤 사람도 내 뜻을 알지 못합니다. 더더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할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뜻도 본인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데 하물며 전적인 타자로써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을 그것도 죄에 빠진 인생이 어떻게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리켜 계시(啓示)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죄와 무지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인생에게 영생과 진리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천지창조와 인류의 죄,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약 1600여년에 걸쳐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40여명의 기자에 의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많은 시대적 차이와 저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마치 한사람에 의해 씌여진 것처럼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경에는 수천가지의 예언의 말씀들도 있는데 그중 이미 이루어진 예언만 해도 2,000여 가지나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언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수 차례에 걸쳐 예언되었는데 구약 성경은 예수님오시기전 약 400∼1,500여년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대로 자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수차례 예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예언의 말씀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 나셨고, 제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언제가는 당신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셔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요한 계시록 22장 7절)
이와같은 성경은 많은 사람들의 "왜 꼭 기독교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답변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우주만물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하지만 성경은 그 모든것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어떤 종교의 창시자들도 인간의 죄를 속해주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지 못했고, 부활하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 썩어버렸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부활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말할나위없이 오직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입안자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에 대해 기록한 성경 말씀은 그저 소설책 읽듯이 읽는 것만으로는 그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반복해서 읽고, 듣고, 배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눈을 열어 주시어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그저 한두번 읽어 보고 그 뜻을 깨달으려는 것은 마치 영어를 배우지도 않고 영어신문을 읽고 그 뜻을 알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처음 접할때는 육신은 비록 성인일지라도 영적으로는 갓난 아기인 것입니다. 아기는 젖을 먹어야하고, 영어를 읽고 뜻을 알려면 먼저 [A,B,C]를 배워야 하는 것처럼 아무리 지식인이고 성인이라 할지라도 계속 반복해서 읽고 듣고 배울때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전에는 그저 막연히 종교란 나약한 사람들이 세상사는 동안의 불안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또는 인간을 길들이기 위한 한 수단으로 조작되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조작되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실상이 아닌 그저 우리들의 정신 영역속에 잠시 머물다가 우리들의 정신활동이 정지되면 사라져 버리고 마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단정짓고 그러한 자신을 오히려 대견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수천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온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이었을까? 왜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갔을까? 그것이 단지 정신적인 문제일까? 그중에는 얼마나 많은 훌륭하고 똑똑한 정치가, 과학자, 법률가, 군인, 학자등이있었는가? 그들은 과연 나보다 나약하고 나보다 어리석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었을까?
결론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즉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도 믿지 않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과 영적인 지식은 다릅니다. 아무리 학식이 높은 분이라 할지라도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러시아어에 대해서는 무지할수 밖에 없듯이 영적인 것을 배우지 않으면 영적으로는 무지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것은 영이니...."(요한복음 3장 6절) 물론 저도 처음에는 이런 말씀들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저는 어떤 길을 가든지 거기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아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기에 것이기에 무조건 거부하던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부터 약1,000년전의 시대로 거스려 올라가 오늘의 이 문명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그 당시 그 장소에서 그 환경과 문화와 문명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났기 때문에 지금의 문명 사회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누군가 가서 이 문명사회를 이야기 해준다해도 처음에는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씩 들려주고, 가르쳐주고, 보여 준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미개인도 결국 이 문명세계를 인정하게 되고 점차 적응도 할 수 있게 될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여년전의 사람이 지금의 문명의 세계를 알고 이해하고 그것을 누리려면 이 문명사회에 대해서 계속해서 듣고, 배우고, 그 미개 사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듣고 배움으로써 이 세상의 범주를 탈피할 때 하나님 나라를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것을 듣고 읽고 배워 깨닫지 못하면 영적으로는 무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만이 우리에게 참 생명의 풍요로움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안내해 주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성경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를 찾아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하니님은 성경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성경이 오류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이 말씀 또한 오류없이 사실 그대로 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우주 만물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것은 원인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으로도,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그 원인자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바 하나님께서 그 원인자인 것입니다. 온 우주만물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이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보십시요. 해, 달, 별, 지구, 온갖 종류의 동식물 등등의 모든 피조물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질서정연하고도 신비하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지구상의 이 신비한 질서와 오묘한 섭리는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까요? 들의 꽃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연약한 것에 그다지도 신비한 생명력이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생겨나 진화 과정을 거쳐 거기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으라하면 증거를 대라고 하면서 아무런 증거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증명도 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하여 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모순된 생각입니까? 자신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증명할 수도 없는 사실들을 그저 막연히 믿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일에는 증거와 증명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진화론을 배웠고, 불신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런 환경속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이 18세기의 다윈이라는 학자에 의하여 주장된 증명되지 못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많은 과학자들도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종(種)에서 다른 종(種)으로의 변이(變移)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진화중에 있는 어떤 형태의 동물이나 식물의 모습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어떤 중간 형태의 동물의 화석조차도 발견된 사실도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몇가지의 화석은 일부는 조작된 것이고, 일부는 중간적인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모양과 기능을 가진 동물임이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지금 현재는 말할 것도 없이 변이(진화)과정에 있는 그 어떤 동식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오랜세월에 걸쳐 진화가 되었다고 하면서 어떤 중간상태의 생물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지금은 전혀 진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등만 보아도 진화론은 하나의 추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진화론은 과학에 의하여 이미 증명된 법칙들 즉, 에너지 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이나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열역학 제2법칙), 멘델이나 바이스만의 유전의 법칙에도 모순되는 이론입니다. 그렇습니다. 진화론은 다윈이나 그밖의 몇 명의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입니다.(여기에 대해서는 창조와 진화에 대한 저의 소책자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물론 창조론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일은 무모할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과 과학을 초월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문명과 과학등 모든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계신 초월자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과학으로 증명되어 질수 있다면 그분은 인간의 영역안에 있고, 그분이 만약 인간의 영역안에 있다면 그분은 결코 절대자 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은 그분을 인간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도 지극히 일부분밖에 알지 못하는 우리가 그 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장 8,9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그분의 지혜는 무궁무진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그분에 비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벌레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설령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가 우리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는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그분에 대하여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성경을 통하여 그분께서 알려주신 대로, 그리고 온 우주만물이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며,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며, 오직 그 분께만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때에 우리 인간은 비로소 오늘의 현실속에서 그리고 장차 올 세상속에서 참된 생명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4.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우리 인간 역시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지금의 죄악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죄악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의문과 혼돈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었는가? 왜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의 길로 들어가게 바라만 보고 계셨는가? 또 그후에라도 왜 그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의 뿌리들을 제거해 주시지 않고 있단 말인가? 등등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분의 형상을 따라 로보트가 아닌 자유의지와 지성과 지혜와 재창조의 능력을 가진 훌륭하고도 멋진 인격체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고 지배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지성과 능력과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발적으로 사용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들에게 지혜와 지성과 능력과 자유의지를 주신 이상 우리들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강압과 강요는 그 자체가 악이며, 또한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일은 진정한 의미나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지혜와 지성과 능력과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들 모두는 죄인이 되었고, 따라서 거기에 상응하는 마땅한 고통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정도로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도 감히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장 23절)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아주 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은 그 속성상 죄에 대하여 스스로 관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속성가운데 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속성은 절대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적으로 인간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죄의 유무에 대하여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선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없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속성상 불의와 죄를 절대로 용납 하실 수 없습니다. 때문에 죄인은 반드시 심판 하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장 23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 27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죄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치도 아니하는 삶을 살고 있으므로 결국 그러한 죄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진 것입니다.
5.예수님은 어떤 분이 실까요?이와같이 인간은 죄인이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존재이지만 그러나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벌주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받아야할 형벌로 부터 구원해줄 해결책을 마련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예수님께 우리들의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들이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그 인간의 몸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속에서 우리 죄를 짊어 지시고 돌아 가셨지만 그분의 본체는 하나님자신이기에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과 함께 계신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분을 믿는 자는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믿어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만 하면 우리가 받을 형벌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을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셔서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죄가 사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받았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이를 믿는 자는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 복음 5장 24절) 이러한 영생은 우리의 의나 공로나 선행이나 돈이나 명예나 지식등등의 인간의 어떠한 행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9절)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수=진리라는 등식은 언제나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망각한채 다수=진리라는 착각속에 쉽사리 빠져 듭니다. 길이 아닌줄 알면서도 다수가 함께 갈때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길을 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옥이라는 말로 형용할수 없는 고통의 장소로 아무런 두려움없이 걸어가고 있는것은 그들이 다수라는데서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함께하기 때문에 진리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진정으로 진리를 알고 누릴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장 13,14절)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오직 그 길만이 진리의 길이요, 우리의 받을 형벌을 사함받고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돈으로도, 명예로도, 선행으로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다른 어떠한 노력으로도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속성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절대적으로 의로워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절대적으로 선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6절)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6.믿음이란 과연 무엇일까요?많은 사람들은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믿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알고 있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떠한 지식도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귀한 보물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한 그야말로 그림에 떡 일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있느냐고.....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일들만 믿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상은 그런 그들도 대부분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제사의식이나 귀신이라든지, 혼이라든지, 저승사자가 어쨌다느니 등등..... 인간들은 세계 곳곳에서 수천가지의 잡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모든것이 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 즉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단지 진리의 길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인 것 입니다.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 우리는 이순신장군도 세종대왕도 보지 못하였지만 그분들을 알고 그분들의 존재를 믿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책에 그렇게 씌여 있고 또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도 얼마든지 증거가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수천년 전에 씌여져 수십억의 사람들이 믿어온 책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책보다 많이 읽혀졌고 읽혀지고 있는 권위있는 책입니다. 또한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생활 했으며, 그분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히신 참 메시야되심을 증거하다가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만약 십자가의 사건이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조작된 것이라면 어떻게 열한명의 제자들이 그 조작된 사건을 위하여 한결같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제자의 제자들은 또 무엇을 위해서 죽어 갔을까요? 믿음이란 어떤 사상이나 관념이 결코 아닙니다. 단순한 지식도 아닙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여기는 신념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미쳐 알지지 못했던 하나님께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대하여 그것을 발견하여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오직 한분 참 하나님이시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 그래서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총과 함께 기쁨과 안식과 위로와 평안과 소망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생애를 맡기는 것입니다.
7.교회란 과연 무엇일까요?교회란 한마디로 신자들의 모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나가서는 이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고 또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신자들의 단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됩니다. 또한 교회안에서의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믿기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일은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만 하나님이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참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내의 부조리와 교인들의 허물과 잘못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선하다거나, 절대적으로 의로워 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빙자하여 우리의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건 분명코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허물과 잘못에 대한 비난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일 뿐 하나님이 될 수는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성이 감소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책임은 오로지 인간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인간을 바라보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였으며 종교 개혁가였던 존 칼빈은 자기 영혼속에 달라붙어 있는 죄악의 100분의 1이라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비교우위는 있을지라도 절대성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간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된 자아가 때때로 우리의 의지를 누르고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 주시며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세에 있는 동안에는 죄악된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러한 우리의 행위는 반복되어지고 그러할때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합니다. 실컷 잘못해놓고 회개만하면 그만인 사람들이라고......
사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 1서 1장 9절)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단, 그러한 행위(반복되는 잘못과 회개)에 있어서 의식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행위는 그 횟수도 감소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전과 현재를 비교할 때 성장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깨달음이 없이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모두 벌거숭이 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그러한 모든 행위를 낱낱이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우리의 어떠한 모습도 숨겨질 수도 꾸며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헌금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을 위하여, 게다가 생명의 안전까지 보장해 주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어찌 아깝겠습니까? 물론 헌금의 근본의미는 결코 투자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드리는 것 뿐입니다. 단지 우리의 작은 정성으로 드리는 감사의 표시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며 그분의 소유물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공급해 주시는 그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큰 죄의 길에서 우리를 구해주시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주셔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조금만이라도 안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감사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찬양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에게 거저 주신 그분의 사랑을 나누어 주기도 하며, 그 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깨닫도록 도와 주기도 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확장하는데 필요한 헌금을 하는등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몸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 장애요인이 되기도합니다. 물론 지상 교회는 아직 불완전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좀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또한 변경될수 없는 사실은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세워주신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유일한 단체로 존속 될것이라는 사실입니다.
8.당신은 선택하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만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여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지극히 인간적인 계산방법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가정하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양쪽을 비교하여 보는 것입니다. 양쪽의 득과 실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양쪽 다 확인되지 않은 길이라고 칩시다. 신자들은 믿는자는 천국으로, 믿지않는 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주장하고, 불신자들은 죽으면 모든것이 끝장이라고 주장합니다. 확률을 50%로(왜냐하면 믿지 않는 입장에서는 양쪽 모두 증명 또는 확인할 수 없는 길이므로)가정 했을때 과연 어느 길로 가는 것이 현명하겠습니까? 그 길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입니다. 신중해야만 합니다. 한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불신자편에 서면 잘해봐야 끝장이고 잘못하면 지옥의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신자편에 서면 잘못돼 봐야 끝장이고 잘하면 저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 기쁨과 사랑만이 넘치는 곳, 그 아름다운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아니 신자편에 서면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약 잘못되어 만에 하나 천국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이라도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맛 볼 수 있습니다. 평안과 위로와 소망속에 살 수 있습니다. 기뻐 찬양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영생의 길이요, 기쁨의 길이요, 소망의 길이요, 사랑의 길입니다. 당신이 보기에는 과연 어느길이 현명한 길이겠습니까? 과연 어느 길이 득이 되는 길이겠습니까? 이 이상 더 무슨 선택의 조건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이상 더 투자가치가 많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이상 더 수지 맞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확률이 50%가 아니라 단 0.5%라고 할지라도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 돈, 명예, 시간등등이 발목을 잡고 놓아 주려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멍에를 씌우려는 행위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하실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 가치관, 목표등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나라를 깨닫게 되면 그러한 모든 생각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나를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 비밀을 깨닫게 되는 날 틀림없이 가슴 깊숙히에서 터져나오는 환희의 함성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실 것입니다. 참으로 말로는 형용키 어려운 거듭났다는 의미를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저하게 되는 것은 기존의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만족과 기쁨과 가치를 찾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기쁨도, 만족도 느낄 수 없습니다. 설령 잠시 동안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모든것은 들의 꽃과 같이 잠시 잠간 후면 사라지고 맙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 전서 1장 24,25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만이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만족과 사랑과 소망이 있습니다. 오직 그 길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오직 그 길만이 우리가 받을 형벌을 사함받고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속히 생명의 길로 나아 오십시오.
9.시간이 언제나 우리의 편은 아닙니다.물론 우리는 시간은 아직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전에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말세, 말세한지가 벌써 몇백년이 지났는데 오신다던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그분에게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 말처럼 세상것 실컷 즐기다가 죽을 때쯤 "예수님, 믿습니다."하고 외칠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라도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다면 구원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나 희박할 것입니다. 게다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밤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홀연히 강림하실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인가에게는 종말이 시시각각으로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이 나는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음 순간을 보장 받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생명을 건지는 일에 어찌 촌각인들 미룰 수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다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장 20절) "내일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장14절)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그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장3절)고 말입니다.
저는 참된 기쁨과 소망가운데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참으로 감사하며 오늘을 삽니다. 물론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도, 슬픈일도 있습니다. 지치고 곤하여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순간에 지나면 그뿐, 참 그리스도인 만이 알 수있는 소망과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분은 나를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하면 저는 다시금 새힘을 얻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저 천성을 바라보며, 저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뻐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참으로 거듭난자만이 알 수 있는 이 기쁨, 이 소망을 우리 모두 함께 나누게 되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은 제가 알고 있는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말씀중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오늘 드린 말씀만으로는 깨닫기에 불충분하실지 모릅니다. 교회로 나아오십시오. 나오셔서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배우십시요.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저는 인간이기에 우리들 인간의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해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어느누구라도 우리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타인)의 생각이나 지혜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 그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무모할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그분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 그분의 능력과 우리의 능력 사이에는 접근할 수 없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분을 우리의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인간수준으로 끌어 내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가 지금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아오십시오. 나오셔서 듣고, 읽고, 배우시면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밤이 지나 태양이 찬란히 빛날 때 모든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고대의 청동 또는 다른 금속제 거울을 말함)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 전서 13장 12절) 이제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당신의 눈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죄로 어두워져 있던 당신의 심령은 참빛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밝아지게 됩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진리의 길, 영생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 영광의 날을 바라보는 가운데 오늘의 현실속에서 그 밝은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당신은 선택해야만 하고 그 결과도 역시 바로 당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