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연필을 깎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대 곁에 앉아서
사각사각 연필을 깎겠어요
길을 걷다 문득
흐려지는 하늘 아래 문득
하나의 풍경 앞에 문득
오래 전 노래 속에 문득
책을 읽다 문득
누군가의 마음을 열다 문득
그대의 심장이 신호를 보낼 때
어딘가에 밑줄을 긋고 싶어질 때
그 손에 쥐여줄 수 있도록
잘 깎은 연필 한 다스 가지런히 품고
시간의 언저리를 맴돌겠어요
그대를 멈추게 한 무엇도 아니고
밑줄이 그어진 무엇도 아니고
연필조차 아닌 채로
지우면 가만히 지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