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본성법과 전례법에 대하여
가톨릭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먼저 (안식교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즐겨 인용하는)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원래 구약의 율법은 신약의 한 예표요 한 그림자일 뿐이다. " 율법의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다." (히브 10,1). 이 예표, 이 그림자를 당신 자신으로써, 즉 당신의 일생과 언행과 업적으로써 실현시키셨다. 즉, 완전하게 하셨다. " 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는 그리스도입니다" (골 2,1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 5,18), 즉 실현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이레네오,테르툴리아노,힐라리오,아우구스티노 등 성현 석학들의 해석이다. 과연 예언자의 예언이 그리스도에 와서 모두 실현되었으며 구약의 율법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로 대체되었다.
이 "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는 말씀의 뜻은 구약의 율법 그대로를 완전히 실시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였습니다"(에페 2, 15) "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히브 7,18-19)
그렇다며 구약 율법을 폐지하였으나 십계명 또한 폐지된 것일까? 무엇보다도 독자는 이 점을 잘 구별해야 한다. 율법 중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등의 인간 양심 고유의 '본성법' 도 있고 , 제례드리는 방법, 사례 표시의 행사, 축일의 제정, 기도드리는 방법 등의 ' 전례법' 도 있다. 본성법은 폐지될 수 없지만 구약의 전례법은 폐지될 수 있다. 신약이 구약의 예표를 실행한다. 보라 ! 구약의 제사와 할례가 신약의 미사 성제와 성세 성사로 대체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안식일 계명은 본성법인가 전례법인가, 그 존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안식일 계명은 본성법도 전례법도 된다. 마치 제례의 율법과 같다. 하느님께 제헌하는 심정은 인간본성 고유의 것이지만, 드리는 방식, 드리는 날, 드리는 희생의 종류 등은 전례법에 규정된 것으로 시대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특정한 날을 하느님을 경배하는 날로 정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인간 본성이 명령하는 바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제사날이나 명절을 지키지 않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하느님을 경배하는 특정한 날이 없겠는가. 하느님을 경배하는 제도는 본성법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이 다른 날이 아니고 한 주간의 일곱째 날이라는 것은 날의 선정에 관한 것인만큼, 단지 전례법의 규정인만큼 변경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본성법은 변할 수 없지만 전례법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교회의 권위로 변경할 수 있다.
사실상 구약의 전례법은 모두 폐지되었다. 구약 전례법 준수사상을 타파하려는 바오로 사도의 노력이 얼마나 컸었는지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축제일도 모두 폐지되었다. "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날을 특별히 더 좋은 날로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이나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각각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 14,15) 이 말은 곧 구약의 제사날이나 명절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언이다. 또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숭상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분을 위한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지나 않았나 염려됩니다." (갈라 4,10-11)라는 말은, 곧 구약의 축제일을 지키는 것이 몹시 불안하니 차리리 그만두라는 권고이다.
그러고 보면 구약의 안식일도 저절로 폐지된 셈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문제나 명절 지키는 일이나 초생달 축제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아무에게나 비난을 사지 마십시오. 이런 것은 장차 올 것의 상징에 지나지 않고 그 본체는 그리스도입니다 "( 골로 2,16-17).
이 말은 안식일을 아주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이 아니면 안식일을 불철저하게 지킨다는 비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식일을 불철저하게 지킨다는 비난이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일 지켜 왔고, 또 반드시 지켜야 할 안식일을 불철저하게 지킨다는 비난이었다면, 당연히 바오로 사도는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권고했을 것이지, 결코 신앙 생활의 긴장을 늦추는 이러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비난이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것은 안식일 폐지를 전제로 한 말이다. 바오로 사도는 안식일은 그림자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만일 그 당시 그 계명이 생명의 계명이었다면 그가 결코 이런 말을 했을리가 없고, 또 바로 그위에 말한 명절과 초생달 축제가 이미 폐지되었으므로 안식일도 당연히 폐지되었을 것임은 의심없는 것이다.
" 순례절이나 초하루나 안식일 등 절기에 따라 지키는 갖가지 축제를 폐지하여 모든 즐거움을 앗아 가리라"(호세아 2,11)하신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었다. 따라서 안식일을 논하는 사람들이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구약 성서의 안식일 계명에 관한 구절을 교묘하게 인용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믿게 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