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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Willam Blake and His Artistic Legacy

최슬기 |2008.12.14 19:00
조회 23 |추천 0

 

  지난 달 화창하고 쌀쌀한 초겨울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MoA에서 열리고 있는 William Blake and His Artistic Legacy展에 다녀왔다. 어릴 적 온갖 매체에서 나에게 강요해 왔던 ‘꿈과 환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진부한 기대를 갖고 전시장 입구를 들어섰다. 한쪽에 놓여있는 전시관련 서적을 읽고 나니 이번 전시의 작업들을 훑어 본 셈이 되었다. 삼십분 가량 책을 읽고 나서 작품을 천천히 보았다.

 

  작업을 관람하는 내내 각박한 나의 현실을 떠나온 서울대 미술관에서 블레이크의 예술적 전설들을 만나려 애써 보았다. 그러나 하얀 벽에 차분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던 18세기의 급진적 몽상가의 예술작업들은 너무도 현대적이고 이성적인 감각으로 걸려 있어서 마치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의 강요와 재회하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지점이지만 충실한 감상이 못내 아쉬웠던 점은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일요일 오후의 그곳은 조용하고 나른하다. 그날 스스로 자초한 정지감 때문일까? 상대적인 시간의 속도감에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난 다시 작업들을 바라보는 것을 이어 나갔다. 실제로 전시작품은 몇 점 되지 않아서, 둘러보는 것은 금방이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을 관찰하는 것은 나만의 수상한 취미이다. 어쩔 수 없는 척, 나는 이내 또 다른 관찰자가 되어 그들을 지켜본다.

 

  내가 방문한 날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저마다 각자 무얼 보러 온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모두가 학습 하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이곳은‘서울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시선이 어느 아이에게 나름의 설명을 덧붙여 주는 한 아버지에게 머물렀고 이내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과 겹쳐졌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로부터 항상 어린이답게 꿈과 환상의 세계를 믿으라고 강요받으며 자랐다. 나를 비롯한 또래들은 피터팬과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어야 했으며, 갖가지 동화책 속의 이야기들에 매번 감동 받고 큰 교훈을 얻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러한 외부의 압박을 타파 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주어진 꿈과 환상의 세계를 수용하며 그렇게 살았다. 결코 나는 어렸을 적 내게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꿈과 환상 따위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강요’에의 기억은 어른이 된 나의 냉소적임에 일조한 바가 크다.

 

  전시장에서 블레이크의 작업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접하자니, 용기 없는 나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또다시 부끄러움이 찾아 든다. 익숙하지만 매번 좌절하고 반성하게 하는 그런 강력한 감정이다.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어른으로 대해 줄 무렵, 현실은 어린 시절 그토록 강요받은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는걸 자각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빨리 알아 버리는 것 보다 천천히 알아가는 게 더 나은 것이라는 것 까지도 결국 알게 되고야 말았다. 이제야 내게 그토록 어른들이 강요했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밀려온다. 다신 돌아갈 수 없기에 ‘다시한번’을 원하는 나는 영락없는 어른이다. 생각의 꼬리를 이 지점까지 물고 늘어지자 나는 다시 MoA의 출입구 앞에 와 있었다.

 

  내게 꿈이라는 것은 지극히 유토피아적이라, 나의 일상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나는 끝없이 그 신비와 환상의 땅을 찾으려 애쓰지만 돌이켜 보면 내게 남겨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는 기억만이 있을 뿐, 이렇게 추억이 아닌 기억이 지워 지지 않는 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다분히 고딕적인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 찼던 블레이크, 그의 말대로 무한을 지각하고 영원으로 눈을 여는 것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는 다면, 언젠가는 ‘꿈꾼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러한 힘이 생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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