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파더 스텝, 미야베 미유키
아주아주 오래전(2007년으로 기억한다.)에 구입했던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다..
당시 모방범을 읽고 완전 팬이 되어버린 미야베 미유키의 색다른 면을 볼수 있는(?) 소설이라기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가 책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사 들인 책들 읽느라 밀쳐두었던 건데 이제사 읽게 되었다..
소설은 정말 너~~~무너무너무(x10) 재밌다..
소설의 설명은 간단하다..
서른 다섯살 노총각 도둑이 쌍둥이의 아버지가 되어 펼쳐가는 이야기들이다.. ㅎㅎㅎㅎ
스텝파더(stepfather)..
- n. 의붓아버지, 계부
'나'는 교외의 신흥주택가(우리로 친다면 신도시 쯤 되는)에 일(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가 지붕에서 벼락을 맞아 정신을 잃고 떨어져버린다..
깨어보니 낯선 집의 낯선 침대.. 그리고 낯설지만 똑같은 얼굴 둘..
그를 간호(?)한 건 쌍둥이 형제.. 일란성이라 누가 누군지 도통 헛갈린다..
헌데 그 쌍둥이가 자신의 부모가 되어 달란다..
원래 부모는 각자의 애인과 바람이 나서 떠나버렸다나?? ㅡ..ㅡ
부모가 없는건 전혀 불편하지 않지만 돈이 없다며 아버지가 되어달란다..
장비를 보니 프로 도둑이라 돈걱정 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고......
미친 술병 콤비를 잠시 노려본 다음 물어보았다.
- 싫다면?
둘은 능글맞게 웃었다.
- 우리, 아저씨 지문을 채취해뒀어.
- 아저씨 전과 있지? 곤란할 텐데?
- 또 감옥에 들어가는 거, 싫지 않아?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기로 한 '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쌍둥이들과 의리(?), 부자간의 정을 쌓아간다..
각자 애인과 바람이 나서 아빠 따로 엄마 따로 집을 나가버린 가족..
게다가 아무리 도쿄 외곽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주택가인데도 쌍둥이들이 하는 말만 믿고 부모 없는 아이들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웃들..
어쩌면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가족의 붕괴... 이웃의 부재... 뭐 그런것들..... ^^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다 섭렵한건 아니지만 그녀의 소설은 사회고발성 소설들이 많았었다..
미스테리에 그렇게 여러가지 사회적 병폐들을 자연스레 녹아내어 글을 써 내려가는 그녀의 탁월한 이야기 솜씨에 정말 홀딱 반했었다..
헌데 이 소설은 그리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적절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더불어 소설 중간중간 섞인 센스 만점인 문장들...
예를 들면..
어중간하게 열려 있고, 어중간하게 닫혀 있는 현관문은 나에게 십 분 빨리 건조기에서 꺼낸 팬티를 입은 듯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완전 뒤집어 주신다... ㅎㅎㅎㅎ
그래서 그랬을까..... 읽는 동안은 그저 너무 재밌다, 작가한테 이런 재주가 다 있었나 감탄 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쌍둥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더불어 아버지는 어찌 되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요소요소 툭툭 던져놓은 그녀(미야베 미유키)의 문제의식들..
교육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집단 이기주의, 혹은 개인주의 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읽는 내내 심심하지 않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심심치 않고 즐거웠던 것은 일곱편의 단편처럼 일곱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사건이 하나씩 터지고 쌍둥이와 아버지(나)와 아버지의 아버지(쌍둥이에겐 할아버지쯤 되는)가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의 형식이 너무 재밌었다..
역시 그녀의 천성(?)은 버리지 못하는가보다..
결국은 사건이 일어나고-살인사건까지는 아니지만- 그것을 해결해 가면서 조금씩 돈독해져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모순되게도 가족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언컨데 아버지(나)의 아버지 역시 혈연으로 맺어진 아버지가 아니라 일로 엮인 둘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형식(?)을 취한 변형적 가족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너무나 재밌게 읽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읽는 동안 아버지(나, 소설 끝까지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ㅋㅋ)의 그 느긋함과 비범함과 민첩함과 영민함에 홀딱 반해버렸다.. ^^
그리고 늘 무겁고 음습한 소설만 쓴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이렇게 가볍고 재밌고 즐거운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발견(?)이 무엇보다 신선했다.. ^^
조만간 또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흐흐흐~
인상깊은 구절
- 아, 너. 그 아이들의 글씨를 구분할 수 있는 거냐?
내 눈에는 똑같은 글씨로 보이는데.
- 돋보기 도수 안맞는거 아냐? 타다시 쪽이 각이 지고 삐침도 정확한
글씨를 써. 사토시는 대충 쓰지만. 봐, 바로 알 수 있잖아.
- 역시 아버지는 대단하군.
- 농담하지 마.
-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은 자라지만, 아이가 없으면 부모는 자라지 않아.
넌 훌륭히 성장하고 있는 것 같구나.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의 교과서에도 '설명하시오', '생각하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요즘 교과서는 좀 간사해져서, '함께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마지막에 '시험'이 기다리고 잇으니 출구는 하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해석하고 자유롭게 감동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시험에서 동그라미를 받을 만한 대답을 찾는다.
그리고 당연히 책 읽기가 싫어진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설프게 친절한 '생각해보자'라는 제안 투의 교과서가 훨씬 더 죄가 많은지도 모른다.
이런걸 교육망국이라고 한다.
각자 애인과 도망치면서 쌍둥이의 부모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 가정을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열세 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는 절절이 생각해본다. 인생이란 결코 드라마틱한 연애나 격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인생은, 기한이 지나지 않은 건강보험증이나 주택융자금 상환이 이달에 무사히 지불되었다는 은행의 통지서 같은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 아버지
- 왜?
- 우리가 싫어?
여자에게, 나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거짓말이건 장난이건, 응, 하고 대답해줄 수 있다.
처음부터 싫었어, 좋아한 적도 없어, 라고 말할 수도 있따.
그러나 어린애가 그렇게 질문을 하면, 설령 고문을 당한다 해도, 응, 하고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몸속에 피 대신에 절대 영도의 액체질소가 흐르고 있어야 한다.
- 감기란
- 빨리 안 나아
-걱정하게 만들려고
- 오래 끄는 게 아닐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코감기에 걸리는 것도 즐겁다.
그래,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