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멕시코의 국보급 여류화가,
프리다 칼루가 그린
'원숭이와 함께한 자화상'이라는 작품이다.
프리다 칼루가
페미니스트로 유명하고,
피카소와 칸딘스키가 그렇게도 극찬한
초 현실주의 화가였으며,
삶 자체가 말그대로 영화같은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라고 하지만
오늘 이그림을 올린 까닭은
그런 연유로 올린 것이 아니다
다름아닌
우리 연서가 학교에 제출해야 할 숙제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서 기본 골격이 인쇄된 도화지를 주었고
단지 그 밑그림에 스스로 색칠만 해보는 그런 숙제지만 말이다.
나무잎사귀 가느다란 선을 세심하게 색칠해가는 연서를 따라
짙은데다 미간이 붙어버린,
아주 고집쎄보이는 특이한 눈썹에
여자의 자화상에서는 보기 드문 희미한 수염자국,,
뭐랄까
"어쩔건데?" 라고 묻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도 이게 맞는건지 의문을 던지는 듯한
아니 하여튼
묘한 인상을 던져주는
저 그림에서
독특하고도 굉장히 특별할 것 같은
그녀의 인생여정을 짐작해본다.
그녀의 사진만 보아도 미인이다
실제로도 미인이었다고 한다
단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얇고
엄청난 교통사고때문에
평생을 병과 싸워야 했던,
결국에는 철제 코르셋을 차야만
등을 세울 수가 있었고
다리 한쪽은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만 했던,,
더더구나
선천적인 자궁 기형으로
세번의 유산끝에도
그렇게도 가지고 싶어 했던 아이를
결국에는 낳아 보지도 못했던,
화가라서는 천재이었을 지언정
여인으로서는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다 갔던
아주 슬픈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슬픈 인생을 지배했던건
병마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녀의 정신세계는
그녀의 남편이 지배했던게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일대기를 몇번이고 읽어보았지만
육신은 병마와 사고에 시달렸으나
그녀의 정신은
내내 그녀의 남편에게서 떠나가질 못한것 같다
물론 도저히 참지 못해 헤어지기도 하지만
이미 정해진 인연만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천재적 재능이야 타고야 났겠지만
진정한 그녀의 예술혼은
그녀의 남편에게서,
그녀의 남편때문에
활짝 핀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지독한 애증의 결과이든,
벗어나지 못한, 그러나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결산이든
예술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언가에 대한 지독함이
위대한 작품을 낳는 것이 아닐런지 ?
나의 탄생 1932년작
프리다 자신의 탄생을 그린 것이다
덩그런 침대에
산모에게서
머리만 나와 있는 모습이
어찌보면 기괴하다 할만하다
모친의 얼굴을 침대보로 가린것이
그녀를 부정하는 듯 보이고,
침상위 벽면 그림속 여인의 모습에서
탄생이 그렇게 환영받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이 그림은 가수 마돈나가 거액을 주고 구입,
현재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사진사로 일하던 아버지와
억센 어머니 사이에서 세째딸로 태어났다
잦은 임신으로 어머니는 그녀에게 거의 신경을 써지 못하고
대부분의 유년기를
유모와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후일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정감있는 편지와
초상화를 남겼지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렇게 정을 못느낀것 같다..
위 그림도 '유모와 나'라는 그림으로
그녀의 어릴적 정신세계를 조금은 엿볼수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6세때 소아마비로
한쪽다리에 장애를 입었지만
그래도 꽤나 영리했던 모양이다.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의학도를 꿈꾸며
나름 화려한 사춘기를 보내게 된다.
멋진 남자친구도 사귀고 말이다
그러나
불행은 가장 행복 할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인지
그녀가 18살때
최악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수업을 마치고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중
그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사고는
그녀에게 파이프가 골반을 관통해버리는
엄청난 부상을 안겨줬다
그로 인해
이후 그녀의 인생 전체가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병마와 싸우는 세월이 되버린 것이다.
그러나
잃는게 있으면 얻는것도 있게 마련,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고가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꽃봉오리지게 한다
예민한 나이때, 병원에서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대단히 힘들었을테고,
그 고통을 이길려면 다른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은
주변사람들 뿐만 아니라 본인도 충분히 그 필요성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림이다.
19살때 첫 그녀의 자화상을 그리고
그 그림을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첫사랑이고
평생의 친구로 남는
알레한드로에게 선물을 하게 되는데
그 선물이 위 저 그림이다.
리베라의 초상(1937년 작)
디에고 리베라..
그녀의 인생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인물이다
그녀의 남편이기도 한데다,
그 스스로도 대단한 화가로서
현재에도 멕시코 3대 벽화화가중 일인으로 불려지고 있다
인민복 같은 복장에서 조금은 느낄수 있듯
혁명가요 철저한 공산당원이기도 하다
프리다가 그를 처음 본것은
그녀가 16세때, 아직 사고전으로
리베라가
그녀가 다니던 학교에 벽화를 그리러 왔었다고 한다
당시에 리베라는 화가로서는 거물급 인사,
그래도 작은 소녀는 그리는 장면을 보고싶다며
그의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의 만남은 그냥 스쳐가는 만남,
진정한 만남은
그녀가 21세때
첫사랑과 헤어진 후,
좌익활동가의 소개로 공산당에 가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두번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그 다음해, 22세때
20살 이상 연상인 42세의 리베라와 결혼까지 하게 되고 말이다
나이차이를 극복할만큼 결혼에 이르게 된데는
그녀의 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앞으로의 결혼생활에서
그녀에게 돌아오는건
그의 방탕함에서 오는 상처 뿐이다..
리베라에게서 외도는
그저 한끼의 식사와 매일 자는 잠처럼
일상적인 아주 평범한 일과중 하나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 범위는
그녀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동생까지 포함되니
아무리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더라도
힘이 들수 밖에..
그녀의 정신세계가 겪고 있는
양면의 모습을 비쳐주는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아도
노여움속에 간절함이 묻어 있는 눈동자와
그녀의 이마에서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리베라의 무정한 표정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어쩔수 없는 한계를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
얼마나 아팠으면
저렇게 온몸에 못을 박을 정도일까
특수한 코르셋과 철제인 듯한 척추,
그리고 무감각한 옷에까지도
못이 꽂혀 있는것을 볼때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조금은 알 것같다
우아한 모습의 자화상,
그녀는 늘 악세사리를 꼼꼼히 챙기고
옷이나 외양에 특별한 신경을 썼다고 한다.
아마도 신체적 요인때문이리라..
많이 접해본 그림일 것이다.
온몸에 화살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저 사슴의 모습에서
그녀의 인생 자체가 보인다..
그녀의 일기장이다..
그녀는,
47세 때 폐렴이 겹쳐, 결국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인생 후반기를 잠깐 요약하면,
27세때 그녀의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알고
그녀도 방황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녀도 자유연애를 시작한것 같다
그러다 32세때 남편과 이혼하고,
3년 정도를 독신으로 지내다가
35세때 재결합을 한다.
물론 다시 결합했다고 해서
남편의 바람기가 어디 가겠냐 만은..
그녀가 죽기 바로 전날
그녀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게 아직도 시일이 남았음에도
결혼 25주년 반지를 건넨다
의문을 묻는 남편에게
'머지 않아 당신 곁을 떠날 것 같아서 그래요'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남편같지 않을 남편을
그녀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녀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내게 그는 아들이자 어머니이며, 배우자이고, 그리고 내 전부이다." 라고 표현했다.
그렇듯 자신의 전부인 그런 그의 옆에서
마지막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묘한 여운이 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