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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가 말하는 김범수, 솔플라워, 윤미래

김민진 |2009.01.05 07:45
조회 445 |추천 0
박선주
1989년 강변가요제에서 ‘귀로’로 수상하면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NYU에서 뮤직 퍼포먼스를 복수전공했고 일본 EYC에서 음악 연수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학 실용음악과에 출강하면서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중이다. 내년쯤 신보를 낼 예정이다.

나는 가수로 시작해서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해봤다. 지금은 보컬 트레이너, 혹은 보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건 내 음악 생활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얘기하는 것들이 어쩌면 방관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이 시대 대중음악계 보컬의 문제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한다.

많은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이 자기 목소리의 방향을 못 잡는다. 트레이너가 하는 일은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기 목소리를 찾게 해주는 것이다(그래서 보컬 트레이너보다 보컬 디렉터라는 용어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뮤지션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는 큰 방향을 가진 가수를 제대로 가르치는 편이다. 가끔 이런 저런 스타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받지만, 항상 내 방식대로 한다. 이 친구의 목소리로는 여기까지 가능하고, 이런 장점을 살리면 이런 색깔이 나온다는 걸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동의를 얻어야 일을 한다.

(김)범수와는 사연이 깊다. 96년에 내가 숭실대 사회교육원 실용음악과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만난 첫 제자이자, 가장 아끼는 제자다. 노래를 시켜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잘 안 믿지만 정말 박자도, 음정도, 리듬도 없었다. 박치인 데다 소리만 버럭버럭 질렀지, 음정도 거의 안 맞았다.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보기 드문, 오리지낼리티를 그대로 지닌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남자 가수 지망생의 절반은 휘성을 흉내낸다. 20%는 박효신, 10%는 김범수다. 여자는 대부분 거미나 빅마마, 아니면 박정현이나 박화요비다. 그에 비해서 범수는 오리지낼리티가 그대로 살아있는 보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한국에서 절대 안 나오는 톤’이라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나는 이 좋은 악기를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결심했다. 6개월 동안 내 연습실에 데려다 놓고 ‘무식하게’ 시켰다. 미국에서 뮤직 퍼포먼스(티칭 프로그램이 있었다)를 복수전공하면서 배운 것들과 DJ DOC의 (김)창렬이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들을 함께 가르쳤다.

다른 선생도 그럴테지만 나는 보컬을 다섯 가지로 나눠 가르친다. 리듬, 발성, 음정, 발음, 그리고 감정이다. 범수는 보컬 톤 빼고는 그 다섯 가지 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이 친구를 독하다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내가 보지 않아도 너무나 열심히 했다. 덕분에 6개월 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변했다. 스캣 애드립 몇 마디를 해보라고 시켰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나았다. 범수는 일단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골격을 가졌다. 키가 작기 때문에 소리의 공명이 짧고, 힘이 분산되고 모이는 속도가 빠르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얻기도 쉽다. 하악골과 광대뼈가 넓기 때문에 울림 자체가 다르다. 구강 구조 또한 노래를 하도록 타고났다. 소리를 표현하기에 정말 좋은 모양으로 생긴 악기인 셈이다.

범수를 지금의 소속사에 소개시켜주고, 나중에 범수 앨범이 나온 걸 알았다. 앨범을 듣고 나서는 조금 우울해졌다. 내가 가르친 것에 비하면 너무 대중적인 음악이 나와서 범수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거다. 지금은 컨셉트 같은 것들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다 드러내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조용필 이후 최고로 꼽히는 보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휘성, 빅마마, 거미 모두 뛰어나지만 배음이나 음정, 전체적인 톤에서 범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2년 전에 처음 솔 플라워를 만났을 때 그녀는 ‘노래 좀 하는’대학생일 뿐이었다. 음정 하나 괜찮은 정도. 그래서 한 달 동안 해보고 더 가르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하이는 이미 완성됐으니까 로나 미들 쪽을 도와주면 좋겠다 싶었다. 또 목소리가 심플하고 깔끔한 편이고, 네오 소울을 시도했기 때문에 메이시 그레이 같은 것들을 많이 들려줬다. 좀 놀래보라고 재즈 보컬리스트 게이코 리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이 친구는 성실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르칠 가치가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친구다.

T(윤미래)를 내 제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민금선 선생이 오래 가르쳤고, 나는 두 번째 앨범에서 마무리 리본만 맸을 뿐이다. T는 자기가 재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노래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T가 아주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범수처럼 톤과 이모션을 타고났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놀라운 건 범수와 솔 플라워가 6개월 만에 내 말을 알아들었는데, 이 친구는 두세 번 만에 끝냈다는 사실이다. 본인도 재미있어했고, 나도 타고난 아이를 가르치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행복했다.

춤추면서 노래하는 엔터테이너 쪽 가수들은 위에서 얘기한 다섯 가지 중에서 발성, 호흡, 리듬을 중점적으로 연습시킨다. ‘필’ 보다는 테크닉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요즘 내가 가르친 엔터테이너 가수 중에는 유진의 호흡이나 발성이 부쩍 좋아졌다. 나한테 한 세 달 정도 배웠는데 프로페셔널답게 한 번도 약속 어긴 적 없고, 시간 늦은 적 없다. 그렇게 알차게 레슨받아간 친구는 처음이다. (김)창렬이나 SG 워너비의 채동하, 디바의 민경, 그리고 유미 같은 친구들도 엔터테이너 쪽 제자들 중에 높은 레벨에 속한다.

요즘 젊은 가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있다. 연습을 안하는 게 너무 티가 난다.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예외적으로 거미는 나름대로 변화하는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보다 업 앤 다운도 상당히 좋아진 데다, 절제하거나 오버하는 기준점이 분명해졌다. 또 한 가지 바람은 대중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느끼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봤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게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시도가 보컬리스트에게 내려진 축복이자, 자기라는 악기를 가지고 노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가장 불만스러운 건 프로라고 불리기에 부끄러운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아주 많다는 거다. 너무 자존심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방송이 펑크날 것 같아도 노래를 못할 것 같은 상황이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술을 아무리 마셨어도 가수는 가수니까 노래는 부르겠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 거다. 옛날 스타일이 더 좋다는 게 아니라, 보컬리스트로 무대에 올라서 싸구려 미소나 몇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라이브에서 음이 가건 어쨌건, 비나 렉시 같은 친구들이 엔터테이너로서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보컬 트레이너나 보컬 디렉터 없이 녹음하는 가수들은 거의 없다. 슈퍼스타들도 쉴 때는 항상 트레이닝을 받는다. 투어 때도 보컬 트레이너, 심지어 어시스턴트 보컬 트레이너도 쫓아다닌다. 목 관리부터 시작해서, 거의 의사 수준이다.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그 정도까진 힘들겠지만, 가수들이 어느 정도 선에 오르면 자기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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