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7월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의 성과는 친일 청산의 의미있는 지표다. 지난 2년간 451명의 친일 재산을 추적해 45명의 토지 474만1584㎡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이 중에는 대표적 친일파 이완용의 땅도 있다. 역사 속에 묻혀졌던 친일 재산을 찾아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방대한 자료의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데도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친일 재산 환수가 가능했던 것은 조선총독부 관보(官報) 덕분이다.
조선총독부 관보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된 공고 기관지다. 일제하 36년간 거의 매일 발행됐다. 총 1만여호, 13만여쪽, 2억여자의 방대한 규모다. 당시 모든 관청의 행정행위와 경제기관, 단체, 기업 등의 영업 내용, 각종 통계조사결과, 당시 개인의 인·허가와 증명, 등기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적 기록이 망라돼 있다. 1929년 3월 6일자 관보를 보자. 당시 전국 형무소에 조선인이 1만3052명, 일본인 560명, 외국인이 148명 수감돼 있다는 사실과 전국의 각 형무소 수용 인원을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철저했던 통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조선총독부 관보는 일제 식민 통치의 총체적 실상을 밝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일본의 끊이지 않는 과거사 왜곡에 대응해 재정리하고 연구해 활용해야 할 역사의 기록이다. 다행히 그동안 수공업적 정리에 머물렀던 조선총독부 관보는 지난해부터 진행된 DB화 작업을 통해 누구나 쉽게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조상 땅을 찾으려는 이들에게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관보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사항을 편찬해 간행하는 국가의 공고 기관지다. 우리나라의 관보는 조선왕조의 조보(朝報)가 효시다. 근대적 의미의 관보는 구 한국 정부가 1894년 6월 21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4768회를 발행했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에도 쉬지 않고 발행됐다. 6.25전쟁 기간에는 드문드문 호외가 발행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매일 발행되고 있다.
관보는 살아있는 역사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매유 유효한 수단이자 공문서로서의 효력도 지닌다.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관보 고시를 강행한 것은 공식 효력으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행정도시 이전계획의 변경 고시가 늦어지는 것은 난센스다. 관보 고시가 안되고 있지만 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다. 하겠다는 것인지, 안하겠다는 것인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이용<정치부 충남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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