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왕 루이 14세
Louis XIV 1661 by Charles le Brun (베르사유에 있는 것은 copy이고 원본은 루브르에 있음)
베르사유 궁전은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왕실 사냥터 별장에서 시작되었다. 후에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1638-1715)는 파리 외곽의 이 땅을 마음에 들어 했다. 5살에 왕위를 계승한 이후 실제로 정권을 장악할 때 까지 겪은 전쟁과 무질서에 이력이 난 루이 14세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프랑스를 통치하기 원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강력한 왕에 의한 정권의 집결, 바로 그런 의도로 지어졌다. 루이 14세가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이주한 1682년부터 프랑스 혁명군이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를 끌어낸 1789년 까지, 베르사유는 절대 왕정의 상징이었다.
루이 14세가 본격적으로 궁전을 건설하기 직전인 1662년 베르사유의 모습
궁전 건축은 인부 2만 2천명과 말 3천마리가 동원되어 1662년부터 1710년까지 50년에 걸쳐 이루어 졌다. 궁전은 2개의 층으로 되어 있지만 예배당(chapelle)과 그 앞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뜨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오페라 하우스 이외 주요한 방들은 모두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예배당 (Chapel Royal)
매일 미사를 드리는 것은 왕의 주요한 일정의 하나였다고.
개인적으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베르사유 궁전 2층은 리셉션 장소로 쓰이던 대 접견실 (Grands Appartements)을 기준으로 왕과 왕비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왕의 외실(Appartement du roi)과 왕비의 외실(grand appartement de la reine)은 공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며 내부에는 왕과 왕비의 사적인 공간(Petit appartement du roi, Petit appartement de la reine)이 위치하고 있다. 이렇게 왕과 왕비의 구역이 대등하게 나뉜 것은 루이 14세가 자신의 부인인 Marie-Thérèse을 스페인의 여왕으로 세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란다. 결국 이중 군주국(dual monarchy)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이스 제스쳐임에는 틀림없다. Women need their space, too.
왕의 외실은 이름부터가 거창하다. 루이 14세가 태양왕이었으니까 행성들이 왕을 중심으로 도는건가? (뭔소리래) 물론 이들 행성들이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땄으니 신들의 방이라고 해도 되겠다.
헤라클레스 방
풍요의 방 : 루이 14세의 게임방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이곳에 있는 값비싼 것들은 루이 14세가 모은 것이다. 왕은 이곳에서 음식과 차를 즐겼으며, 월, 수, 목요일 저녁에는 6시부터 10시까지 이곳에서 여가를 즐겼다.
비너스의 방 : 이곳에서 왕들은 간단한 간식을 즐겼는데, 천장에는 ‘여신의 사랑’이 그려져 있다.
다이애나의 방 : 이 방은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서 루이 14세는 당구를 즐겼다
마르스의 방 : 왕의 경호원들이 대기하던 곳. 벽난로 위에 결려있는 그림은 다윗으로, 왕이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었으며, 본래 왕의 침실에 걸려있었다. 파티때는 ballroom으로도 쓰였다고.
머큐리의 방 : 왕의 공식적인 침실이었다. 이곳에서 왕이 침소에 들고 일어나는 의식이 행해졌다고.
아폴로의 방 : 군주의 방(Salle du Trône)으로도 불리며 일상적인 접견이 이루어졌다. 베르사유에서 가장 호사스런 방으로 계절이 바뀔때마다 벽지를 교체했다고 한다. 루이 14세의 초상화(copy)가 걸려 있다.
전쟁의 방 : 원래 주피터의 방이었다. 거울의 방을 중심으로 맞은편에는 평화의 방이 위치한다.프랑스 역사박물관으로 지어졌으나 나폴레옹의 측근들이 전투 화랑으로 바꾸었다. 이 방에 있는 그림들은 역사상 프랑스가 승리한 내용으로, 나폴레옹 1세까지의 전쟁 모습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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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메헨 평화조약(Peace of Nijmegen,1679)을 통해 프랑스가 유럽의 막강한 세력임을 확인시킨 루이 14세는 그에 고무되어 거울의 방(Galerie des Glaces)을 만들었다. 왕의 외실에 있는 전쟁의 방과 왕비의 외실에 있는 평화의 방을 양 끝에 둔 이 긴 홀은 베르사유 궁에 화려함을 더하고 전쟁과 평화의 지배자로서의 왕을 기리는 역할을 한다. 여기 천장화는 나미메헨 평화조약 시기까지 루이 14세의 통치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가로 75m, 세로 10m, 높이 12m의 방에는 17개의 큰 거울이 각 벽을 마주보고 걸려있으며 17개의 큰 거울은 다시 578개의 작은 거울로 구성되어 있다. 17개의 거울의 의미는 루이 14세 초기 통치 17년 동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이곳에서는 외국 귀빈을 맞이하였다. 관광객으로서는 낮의 모습밖에 볼 수 없지만 밤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켜지고 파티가 열리면 정말 환상적일거란 상상을 해본다.
베르사유 궁전 건축은 루이 14세의 사재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비용이 더이상 왕실의 돈으로 충당이 되지 않자 국가 예산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재무장관 Jean-Baptiste Colbert는 베르사유 궁전을 프랑스의 showcase로 만들기 원하여 모든 건축 자재와 장식물들을 프랑스에서 제작하도록 했다. 문제는 17세기 무렵 거울이 베니스에서 독점 생산되었다는 점이다. Colbert는 베니스의 장인들을 설득해 베르사유에서 거울을 생산하도록 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베네치아 정부는 거울 생산 기술이 유출될까 두려워 장인들을 암살할것을 명했다고 한다. 은근히 섬뜩하다.
어찌했거나... 오늘의 독일이 태어난 배경이 된 이 방은
프러시아의 왕이 빌헬름 1세라는 이름으로 대관식을 하고 독일제국 선포식을 한 곳이기도 하다.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곳도 바로 이 방이다.
루이 14세의 통치 기간(1643–1715)은 72년으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긴 것이었다. 이 기간동안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는 오랬동안 여러 지방들에 분권되었던 정권을 수도에 중앙 집결함으로써 근대적인 국가의 초석을 닦았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그 유명한 "짐이 곧 국가이다 (L'État, c'est moi; I am the State)"라는 발언이 실제로 루이 14세에게서 나왔을 리는 없으며 아마도 절대주의적인 군주제에 반발했던 반대파들이 퍼트렸을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임종 무렵에 루이 14세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가지만 국가는 언제나 남을 것이다"
("Je m'en vais, mais l'État demeurera toujours";
"I am going away, but the State will always remain")
와우... 안그래도 대단한 루이 14세가 더 멋져보인다. 로마로 치면 카이사르 격이다. 그러나 공통점은 거기에서 그친다. 카이사르는 제국을 통치할 통찰력을 가진 아우구스투스를 양아들로 삼아 대로마 제국을 이루었고, 혈연 관계와 상관없이 능력있는 후계자가 제국을 이어받는 전통이 적어도 로마 쇠퇴기 전까지는 이어졌다. 그에 반해... 루이 15세 (루이 14세의 증손자, 통치기간 1715–1774)를 거쳐 루이 16세 (루이15세의 손자, 통치기간 1774–1792)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 났으니, 루이 14세가 생각했던 국가는 100년도 가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건재하니 "왕들은 가지만 국가는 남는다"가 맞는 말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