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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김윤호 |2009.01.17 01:39
조회 62 |추천 0

김수영 저.

 

  인간이 저지르는 짓 중에 대부분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지만, 나는 가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적지 않은 돈을 갖다 바치고 『김수영 전집』을 지른 행위가 아주 대표적인데, 나는 김수영을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아하는 시인도 아니었다. 비싼 책을 굳이 지른 이유는 비싸고 예뻤기 때문이고, 여기에 나를 위한 변명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제부터 알아가보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또 하나 더 있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그의 시 「구슬픈 육체」에서 지루한 고독을 느꼈고, 최근에 김수영을 조사하면서 접하게 된 「반시론」에서의 그의 말발에 반했기 때문이다. 나열할 만한 핑계거리가 은근히 많은 것을 보니, 어쩌면 김수영과는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흔히 '김수영'이라고 하면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시인, 그 정도가 끝이다. 그 예로 따라오는 것이 「눈」과 「풀」이다. 앞뒤가 꽉 막힌, 딱 우리나라 교육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지. 나는 『김수영 전집』을 읽으면서 내가 여태까지 한 사람에 대해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은 사회참여적 시인의 상징성을 넘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내면의 일렁임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이해했다. 그에 대한 이러한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들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설움'일 것이다. 한 번은 어느 시인이 썼다는 김수영의 시 해설집을 스치듯 훑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설움을 현실에 대한 것으로만 해석했던 것을 보고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의 해석이 떠올라 새삼 분기가 치밀어오른다. '설움'은 고독과 생활의 최종적 산물에 가깝다. 현실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그는, 치열하게 고민했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 세계에도, 생활에도 끝없이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설움'은 반드시 현실적인 고뇌 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곳에도 들어갈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어의 폭을 단정지어 버리다니,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시가 한 쪽으로 굳어지는 것을 꺼려할텐데, 시인이라는 작자가 직접 나서서 다른 시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니 그게 화가 나는 것이다. 우리가 문인들에 대한 오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면에는 문인들을 평면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수영은 사회참여적인 시인이 맞다. 문학의 사회참여에 대해 이어령과 수 차례에 걸쳐서 논쟁을 벌인 적도 있고, 독재 사회 속에서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거듭 논평을 한 바도 있다. 이는 그의 산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4.19 혁명에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4.19 혁명은 학생들이 시를 실천한 순간이며, 하늘이 열린 때였으니 말이다. 그의 글 중 절반에 달하는 글에서 '4월'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4.19 혁명은 그의 생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고 그의 전부를 알게 됐다고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치열한 고민과 비루한 생활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것 같다. 타고르나 고은 등의 훌륭한 시를 보면서 감탄과 시샘을 하기도 하고, 어려운 생활에 고민을 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생활에 발벗고 뛰어들다가도, 문인으로서는 당연한, 어려운 생활을 해 나가는 것 같이 느껴져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자학하는 습관 같은 것도 있어서,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처럼 큰 일에는 함구하고 작은 일에만 분통을 터뜨리는 자신을 보고 무력해지는 모습이라든지, 누군가에게 보내기 시작한 비난을 결국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겁도 많고 소심한 구석도 있어서, 취중에 경찰에게 '내가 공산주의자올시다'라고 말했던 것을 술이 깬 후에 떠올리며 벌벌 떨었는가 하면, 억울한 일이 있으면 신문이나 잡지에 기어이 기고하고야 말았다. 주로 아내 욕이 많은데, 나는 왠지 다른 글들보다는 아내 욕을 하는 글이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여편네가 머리를 말리고 나면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어서 자신이 직접 줍고 다닌다, 돈도 없는데 피아노를 사서 밤낮 가리지 않고 쳐댄다, 미주알고주알 독자들에게 다 일러바치지만, 어떤 글에서는 그가 닭띠이고 아내가 토끼띠인 것을 의식해서인지 닭과 토끼가 의좋게 노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러나 이런 소감을 아내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다고, 낯간지러운 고백도 하는 것을 보면, 시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 참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그는, 1968년의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귀가하다가 후진하는 버스의 바퀴에 깔려 머리통이 박살나서 죽게 된다. 한 지인이 그 죽음을 두고, 그야말로 김수영다운 죽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결코 동조할 수가 없다. 어떤 면에서 김수영을 추종하는 그는 우리네답지 않은 드라마틱한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김수영의 죽음을 평했겠지만, 그 말은 곧 김수영은 우리네와 다른, 저 외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과 같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젊은 시인들에게 많은 시적 영감을 주었다는 난해시를 지은 시인 김수영의 저변에 인간 김수영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다만 나는 김수영의 죽음이 다행스럽다. 그는 철저하게 20세기에 맞춰진 인물이지, 결코 21세기에 어울릴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가 없는 지금, 21세기에는 그 시절의 가난과 독재와 부정축재보다도 더 무서운 생활과 세상이 도래했다. 자본은 철저한 합리성으로 무장했고,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심각한 병증에 무감각하도록 길들여졌다. 가난과 독재와 부정축재의 20세기가 누구나 알아챌 만한 투박하고 순진한 독재의 시절이었다면, 자본주의와 합리의 21세기는 알지도 못한 채 스며드는 치밀하고 영악한 독재의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그가 어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조차도 경멸한 그가, 경쟁이 유행이 된 이 시절을 기꺼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의 죽음이 다행스러운 것이다.

 

  김수영과 나를 하나로 묶는 하나의 큰 테마가 있다면 바로 '오해'일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 대전에 일이 있어서 들렀는데, 그곳에서 크게 앓았다. 감기였는데, 나는 이것이 깊은 오해가 불식되는, 무슨 마법과도 같은 순간처럼 여겨졌다. 김수영에 대한 오해, 김수영의 고독에 대한 오해, 김수영의 고독이 담긴 시에 대한 오해, 그 어느 것이든 관계 없겠다. 중요한 것은 나는 비로소 어떤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졌고, 그의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47년의 생을 살다간 그의 생의 흔적을 접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진짜 사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고독한 사람의 냄새. 20세기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냄새. 참 흠이 많은 사람의 냄새. 이게 진짜 사람의 냄새구나. 이 기묘한 체험을,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비싸고 예뻐보이기 때문에, 혹은 배고픈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지른 이 책을 통해서야 간신히 할 수 있었다. 때는 2009년, 디지털과 자본과 영악한 독재의 물결이 범람하는 지금, 사랑하는 마음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이때에, 진작에 했어야 할 체험이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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