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2.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참으로 상대에게 용기내어 잘도 묻는데 나는 그대에게 묻지 못했다.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어리석다. 사랑한 대상을 미워할
대상으로 바꿀 오기는 있으면서.
3.
그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필요하다. 내가 아파야 남의 아픔을 알 수 있고, 패배해야 패배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4.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5.
내 앞의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뒤통수를 맞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지금처럼.
6.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하는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과 관찰은
실제의 시간보다 그 시간의 시간을 훨씬 느리고 길게 한다.
7.
가벼움을 깊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가벼움에 반대말은 무거움이요, 깊다의 반대말은 얕다인데.
8.
왜 어떤 관계의 한계를 넘어야 할 땐 반드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공유해야만 하는 걸까? 그냥 어떤 아픔은 묻어두고 깊은 관계를이어갈 수는 정말 없는 걸까?
9.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일할 때의 기쁨만한 것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10.
물론 여전히 입에 칼날을 물고 서로를 찌를 태세로, 그러나 서로가 뱉은 칼날에 누구도 다치진 않는다. 아니, 되레 칼날을 물고 말하길 즐겨 한다. 마치 독설의 강도가 우리의 우정을 가늠하는 척도나 되는 양 말이다.
11.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모든 게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세상인지 그 경계에 대한 분간이 불가능한 상태. 내가 가는 길이 길인지 낭떠러지인지 모르는 상태.
우리는 가끔 이런 화이트 아웃 현상을 곳곳에서 만난다.
절대 예상치 못하는 단 한 순간.
그렇게 화이트아웃을 인생에서 경험하게 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잠시 모든 하던 행동을 멈춰야만 한다.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도 이 울음을 멈춰야 한다. 근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12.
우리가 알고 있는 카오스는 혼돈, 혼란, 무질서를 의미하지만, 인문학적 의미의 카오스 이론은 그 혼돈, 혼란, 무질서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 지금의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마디로 정의할 만한 규칙은 무엇이 있을까?
13.
언제나 소수의 편에 서라.
너와 다른 사람을 인정해라.
소외된 사람을 등 돌리지 마라,
그리고 혹 네가 소수에 끼는 사람이 되더라도,
소외받는 사람이 되더라도 좌절하지마라.
14.
내 오랜 친구들이여.
내 안의 살벌함을
내 안의 이기심을
내 안의 모자람을
내 안의 이중성을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그러나, 이해했다고 해서 멈추라고는 말아주십시오.
한발 더 가라 해주십시오, 한 번 더 행동하라 해주십시오.
남에게 하던 말을 자신에게 돌리라 해주십시오.
15.
정말 길들여지지 않는 건 바로 이런 거다.
뻔히 그녀의 맘을 알면서도 하나도 모르는 척,
이렇게 끝까지 그녀의 속을 뒤집는,
뒤틀린 나 자신을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