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스파이를 꼽으라면 1순위는 중국 4대미인 중 첫 번째인 서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시는 월나라 장군 범려에 의해 미인계로 오왕 부차에게 보내진 후, 그를 주색에 빠지게 만들어 정사를 소홀히 하게끔 은밀히 주도한다. 또한 오왕 부차와 오나라 대장군 오자서의 사이까지 이간질해 월나라의 부흥과 전쟁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서시는 월나라 사람으로 춘추시대 말엽인 기원전 506년 저라산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시, 이름은 이광이다. 그의 아버지는 나무를 해 땔감을 팔았으며, 어머니는 길쌈을 매었다. 그가 살았던 저라산에는 동서로 두 마을에 시씨 일가가 살았는데, 시이광 일가가 살았던 곳이 서쪽 마을이었기 때문에 서쪽 마을에 사는 시씨 아이란 뜻으로 서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미모를 지녔던 서시는 중국 4대미인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미녀로, 북송 대의 시인 소동파도 시에서 서시의 미모를 기릴 정도였다.
서시는 아주 궁벽한 산간 마을에서 세상과 괴리된 삶을 살아가던 소녀였다. 그의 집안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와야 했지만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월나라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월왕 구천부부는 인질로 잡혀가 석실에서 살며 오왕 부차의 말을 돌보는 치욕을 당한다. 부차는 외출할 때마다 항상 구천이 말을 데려와 자신 앞에서 끌도록 해 그를 거리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구천은 모든 굴욕을 참고 부차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때를 기다렸다.
한 번은 부차가 병에 걸리자, 구천은 직접 그를 간호하며 그의 대소변까지 맛보았다고 한다. 구천의 행각을 이상하게 여긴 부차가 그 까닭을 묻자, 구천은 ‘신은 대소변의 냄새나 맛으로 병자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나이다. 맛이 달면 좋지 아니하고, 맛이 쓰면 점점 호전되고 있음을 뜻하는데, 지금 쓴 맛이 나는 것을 보니 대왕의 옥체에 이상이 없는 줄로 아뢰오.”라고 답하였다. 구천에게 감동한 부차는 자신의 아들을 시험해보고 싶어져 아들을 불러 똑같이 자신의 대소변을 맛보게 하였는데, 아들은 얼굴에 싫은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들의 충성심이 구천만큼도 못함을 확인한 부차는 더욱 구천을 신임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월나라로 풀어주었다.
그러나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던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간 후 당장 오나라를 칠 준비에 착수했다. 그는 군대를 훈련시키고 농업을 양성하는 한편, 대신 번려와 문종과 함께 오를 칠 계략을 논의했다. 그러던 중 문종이 제시한 아이디어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로, 여자를 좋아하는 부차의 성품을 이용해 미녀를 바쳐 정사를 소홀히 하고 월나라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만들자는 작전이었다.
이에 구천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미인들을 모아 오왕 부차에게 바쳐 환심을 샀다. 범려는 구천의 명을 받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인들을 찾는데, 그러던 중 저라산에 이르러 서시를 발견하게 된다. 서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범려는 그 자리에서 서시를 미인계 스파이의 주인공으로 낙점하고 오왕에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는 서시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화려한 마차에 태워 구천에게 보냈는데, 서시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려는 백성들의 인파가 몰려 길이 막힐 지경이었다. 서시를 만난 구천은 직접 그에게 스승을 정해주어 서시가 춤과 노래, 치장, 예절, 남자를 유혹하는 기교 및 정보를 캐내는 방법 등 스파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갖추도록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특별훈련을 받은 서시는 손짓 하나만으로도 남자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구천은 마침내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다. 원래부터 여자를 좋아하였던 부차는 서시의 미모와 교태에 한눈에 반하여, 서시를 멀리해야 한다는 오자서의 충언을 귓전으로 흘린 채 그를 후궁으로 들인다.
총명할 뿐 아니라 월나라에 대한 애국심도 남달랐던 서시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부차가 자신을 총애하도록 전심전력하는 한편, 은밀히 그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기 시작한다. 부차는 서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부차는 서시를 위해 호화로운 궁궐과 누각을 지었고, 밤낮으로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 부차의 사치와 향략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왕실의 재산을 탕진했지만, 그는 조정 중신들의 충언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서시만을 끼고 돌았다. 결국 아무도 부차와 오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간언하지 않게 되었고, 조정과 온 나라에 쇠락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편, 서시는 부차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월나라의 전략에 발맞춘다. 월나라는 오나라의 재정 상태를 악화시키기 위해 기근이 들었다는 핑계로 양식 10만 석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부차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자, 그날 밤 서시는 적국에게 양식을 빌려준 진목공의 고사를 들며 부차를 충동질한다. 결국 부차는 서시의 말을 들어 월나라에 양식을 빌려주었다. 1년 후, 월나라는 크게 풍작을 맞아 빌려간 양식 전량을 오나라에 되돌려주었다. 되돌려받은 곡식의 질이 오나라의 곡식보다 월등함을 발견한 부차는 그 해 농사를 월나라에서 받은 씨앗으로 지으라고 명한다. 그러나 뜻밖에 월나라에서 온 작물들은 다음해에 전혀 수확을 맺지 못했고, 오나라는 심한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나라 사람들은 풍토가 맞지 않아 작물이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월나라 사람들이 이미 자라지 못하는 곡식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음모였던 것이다.
오왕의 실정으로 이미 오나라의 국력은 나약해 질 대로 나약해 진 상태. 그러나 월나라의 정복 계획을 가로막는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오나라의 충신 오자서이다. 오자서는 줄곧 월나라를 경계해왔으며, 오왕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월나라에 있어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를 눈치챈 서시는 태상 백비와 함께 오왕 부차와 오자서의 사이를 갈라놓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부차도 점점 강성해지는 월나라에게 위협을 느끼고 월을 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서시와 백비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월나라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대신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월나라 역시 부차에게 재물을 보내며 제나라를 치도록 삼천 병사를 원조하겠다고 약속한다. 오자서는 ‘제나라는 피부에 난 종기일 뿐이요, 월나라는 배 속의 질병’이라며 부차의 계획을 반대한다. 그러나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전혀 듣지 않고, 실망한 오자서는 ‘대왕께서 제 간언을 듣지 않으시면 오나라는 폐허로 변할 것’이라 말한다. 서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가 난 부차에게 오자서에 대한 험담을 하며 부차가 그를 의심하게 만든다. 백비도 오자서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모반하려 한다며 죄를 뒤집어씌운다.
두 사람의 말만을 믿고 더 이상 오자서를 신뢰하지 않게 된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가 죽은 후 부차는 모든 정사를 백비에게 맡겨 정국이 한층 더 악화되고 국력은 날로 쇠약해졌다. 이로서 서시는 자신의 임무를 모두 완수하였다.

전하는 바로, 오자서는 죽기 직전 오나라를 멸하러 오는 월나라 군대를 볼 수 있도록 자신이 죽은 후 두 눈을 뽑아 오나라의 성문에 걸어달라고 분부했다고 한다. 오자서의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기원전 482년, 부차는 제후들의 패자를 결정짓는 황지의 회맹에 참가하기 위하여 직접 오나라의 정예병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떠났다. 오나라의 도성은 텅 비고, 구천은 이를 틈타 오 도성을 공격해 오나라 태자를 불에 태워 죽였다. 4년 후 오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렸다. 구천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미 기세를 잃은 오의 군대 승리와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기원전 473년, 부차는 결국 월나라 군영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스스로 자결해 목숨을 끊는다.
오나라가 멸망하기까지는 내부에서 은밀히 오왕을 조종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한 서시의 역할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시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오왕을 암살할 수 있었음에도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왕 부차가 자결하자, 오나라 사람들은 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를 비단으로 꽁꽁 묶어 양자강에 빠뜨렸다고도 하고, 범려가 서시를 되찾아 도망쳤다고도 하나 전해지는 전설일 뿐 서시의 진짜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