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사간다 이 작은 원룸이 가득 찼거든
처음 이 집에 이사오던 날, 너는 한쪽 벽을
꼭 와인색으로 바르고 싶다고 떼를 썼고
나는 그런 집에는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했었지
결국 와인색 벽을 만들고 난 다음에
그 벽에 커다란 포스터를 붙였었어
근데 어느 날 잠을 자는데 머리 맡에서 '사각' 하는 소리가 나는거야
포스터가 떨어졌어 범인은 물론 중력이었지
근데 포스터를 붙였던 종이테이프가 같이 떨어지면서
고운 와인색에 최초로 흠이 생기고 말았던거야
사실은 너한테 미안해서 거기다가 비슷한색깔 크레파스로 칠했었어
조금 전에 슈퍼에 가서 100리터 짜리 쓰레기봉투 사가지고 왔어
근데 이거 하나론 부족하네 버릴게 많아
난 이제 이사가면 텅 빈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을거야
그냥 커다란 통판으로 짠 탁자 하나만 두고
거기서 밥 먹고, 책도 읽고, 레포트도 쓰고 하면서
너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기까지 사실 많이 망설였었어
한때는 조금 전에 니가 내 방에서 막 나간것처럼
일부러 니 흔적 꾸며놓기도 했었어
그래서 식탁 위에다가 다 마신 캔맥주를 딱 하나 놨었지
너 항상 캔맥주 하나 마시고 집에 돌아갔었으니까
이제야 버릴 용기가 생겼는데
근데 조금 전에 벽장문을 열어봤더니 풍선 하나가 나오는거야
내 생일 날 니가 풍선으로 집 안 장식했었잖아
난 풍성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중에 하나가 남아있더라
근데 그건 차마 버리지 못하겠어 새 집에 가지고 갈께
거긴 니 숨결이 들어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