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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그 무한한 감동

박수진 |2009.02.11 00:02
조회 110 |추천 0

 

 전쟁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를 이 영화에 푹 빠지게 만든 건 주인공 슈타펜버그 대령 역을 맡은

톰 크루즈 때문이었다.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마이너리포트>, <미션임파서블> 을 인상깊게 봤던 나는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란 사실 자체만으로도 <작전명 발키리>에 충분히 매료되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두 다 알 것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아돌프 히틀러. 톰크루즈가 맡은 슈타펜버그 대령을 포함하여 유태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히틀러에 반기를 든 정치계 인사들과 군인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모의를 한다. '발키리'라는 작전은 영화 속 장면에서 슈타펜버그 대령(톰크루즈)가 폭격 소리를 듣고 부인과 아이들을 지하실에 대피시키는 동안 윗층에서 들려온 바그너의 '발퀴레' 라는 곡을 듣고 영감을 얻어 생각해낸 작전이었다. 발키리 작전은 히틀러가 자신의 암살에 대비해 준비해둔 비상대책이었다. 히틀러가 축출당하면 이 작전이 발동되고, 독일 예비군이 정부기관을 장악해 나치 정권을 지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슈타펜버그 대령은 이 작전을 역이용한다.
 작전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히틀러를 암살하고 이를 친위대의 반역으로 꾸민 다음 비상계엄령을 내려 예비군을 총동원하여 베를린을 정복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것이 '히틀러의 암살' 이었다. 그가 죽은 것이 확실해야만이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암살 임무를 맡은 자가 바로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였고 그 과정을 보는 내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것과 같이 히틀러를 암살하려하는 시도가 총 15번이 있었는데 그 중 발키리가 마지막으로 시도된 작전이었다.

 

발키리 작전의 핵심 인물이었던 슈타펜버그 대령은 누구인가?

 

 

 위 사진이 <작전명 발키리>의 실제 주인공인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이다. 날카로우면서도 수려한 외모가 톰크루즈와 절묘하게 매치된다는 점에서 놀라울 뿐이다. 캐스팅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슈타펜버그 대령은 조국 독일을 사랑하는 히틀러의 추종자로도 알려져있던 인물이었는데, 점차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반인류적인 살인 행위를에 서슴치않는 히틀러를 증오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대령은 군인들의 무의미한 희생을 막고자 전쟁 작전 수행에 있어서도 브레이크를 많이 걸어 여기저기 미운 털이 박힌 인물이었다. 전쟁 도중 폭격으로 인해 한쪽 손을 모두 잃고 눈까지 잃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히틀러 암살 계획에 합류하게 되고 점차적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작전을 수행해 나간다.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불행해질 가족으로 인해 고뇌한다. 톰 크루즈는 그런 모습을 절제적이면서도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자신의 가정과 목숨을 희생해서 조국 독일과 유럽의 평화를 위해 과감하게 거대 세력에 도전장을 던진 그를 보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을 때 용기있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현대판 독재정권 치하에 있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 사회에도 슈타펜버그 대령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정부에 반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 순식간에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은 힘없고 약한 호랑이 앞의 토끼와 같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거대 정부 앞에서 국민들은 이제 발언권마저 위협당하고 있고 신변 보호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제는 우리가 슈타펜버그 대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먼저 슈타펜버그 대령이 되려는 용기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작전명 발키리> 속에서 본 언론의 힘

 

 영화 속에선 끊임없이 타자기 소리가 나온다. 각 군대로 전령을 보내는 타자기 소리가 영화를 보는 내내 청각을 자극한다. 상부의 명령을 하달하기 위한 중개 역할을 하는 타이퍼들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특히 이들을 관리하는 통신 교환 실장의 말에서 나는 언론이 지녀야할 자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상황인 즉슨, 슈타펜버그 대령 측의 서신과 히틀러의 서신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하관의 말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정보만 전달하면 된다" 라고 했다. 그렇다. 단지 영화 속에서는 군 내부 간 서신을 전달하는 일에 그칠지 몰라도 넓게 보면 이는 언론의 한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하는 것이 정석이다. 원칙적으로 언론은 편파적이지 않아야 하며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교환실장은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전달했다. 그러나 교환실장도 현실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하관이 히틀러 혹은 슈타펜버그 중 누구를 택할 것이냐고 다그치자 그는 히틀러를 택했다. 개혁이 아닌 안정, 거대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만약 교환실장이 히틀러의 서신을 무시하고 슈타펜버그 대령의 편에 서서 그의 서신만을 전달했다면 발키리 작전이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교환실장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슈타펜버그 대령의 편에 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를 택했다. 그리고 슈타펜버그의 발키리 작전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는 앞서 언론의 공정성을 말했다. 그와 동시에 교환실장이 슈타펜버그 대령의 편에 서기를 바랬다. 모순된 두 생각이 공존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좀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언론의 선의의 거짓말이 용인될 수 있느냐 는 것이다. 정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독일의 수장 히틀러가 흉악한 독재자임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누군가에겐 존경스러운 지도자였고, 누군가에게는 없어져야 할 살인마였다. 즉, 언론의 왜곡이 선의적 의도인지 악의적 의도인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엔 A라는 선택이 언론의 선의의 거짓말이었지만, 오랜시간이 흘러을 때 악의적인 거짓말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슈타벤버그 대령의 발키리 작전에는 방송국을 접수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송국을 접수해 히틀러의 서거를 공포하고 작전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려 했다. 히틀러의 죽음을 듣게 된 국민들은 물론 정치계 인사들까지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단합이 흐트러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군을 통해 베를린을 장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언론의 힘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히틀러에게도 힘을 실어줬다. 히틀러의 재기가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가 라디오방송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론은 국가의 존속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국은 오래전부터 언론을 장악한 독재정권 시절을 오랜 기간 겪어왔다.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편리하게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이 언론임을 깨달은 독재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잡자마자 방송국들을 장악했다.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이 그 적절한 예일 것이다. Sex, Screen, Sports 이 3가지를 통한 우민화 정책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겪으면서 언론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고, 반정부 시위는 방송에서 반역 행위로 표현되었고 국민들은 사실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이처럼 정부의 지배 하에 놓인 언론은 정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언론 통제에서 해방된지 채 20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미디어 개정법'을 주장하는 여당과 정부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

 

 

이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들이 손에 들려있는 노란색 종이. 발키리 작전에 동참한다는, 아니 조국을 위해 거대 권력과 맞서는 슈타펜버그 대령을 지지한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가정도, 부도, 명예도..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도...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들은 독일, 그리고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히틀러와 맞섰다. 그들은 말했다. 독일이 히틀러의 제국으로 기억되어선 안된다고. 우리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그들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작전에 동참했던 거슨 독일,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었다.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기 위해 피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독일을 만들어야 할 사명의식을 가진 것이다. 진정으로 조국을 위한 길이 어느 길인지 그들은 훤희 알고 있었다. 이제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불의에 대항할 수 있는가.

 

 

발키리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가담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형당했다.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기 약 9개월 전이었다. 그 오랜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을까. 영화 마지막에서 슈타펜버그 대령이 총살당하기 직전 그는 " 독일이여 영원하라 ! " 라고 외쳤다.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을 지켜보던 나는 울 수 밖에 없었다.  4.19 혁명, 6월 민주 항쟁 등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외친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정부가 겨눈 총 앞에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싸웠을 뿐인데 그렇게 희생될 이유가 없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독일 국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정의한 정부에 맞선 슈타펜버그 대령은 물론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지금 우리 한국의 정부는 선조들의 목숨과 맞바꿔 얻은 민주주의를 또다시 폐기처분하려한다. 미네르바 체포, 미디어 개정법은 이미 정부가 언론 통제 야욕을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집회시위법 다시 말해 복면금지법은 아예 대놓고 반정부적 성향을 지닌 국민을 체포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것과 다름없으며,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 사용을 허용하려하는 말도 안되는 법안까지 내놓고 있다. 결국 현 정부는 국민의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하며,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독재자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선조들께서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를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지켜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대해 지루하고 액션이 없어 재미가 없다는 의견들이 많다. 물론 그 의견에도 어느정도 동의를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그것을 중점으로 본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보면서 하도 긴장을 했던 터라 영화가 끝난 후 어깨가 결릴 정도였다. 비록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없지만, 탄탄한 구성과 정의감, 그리고 복잡미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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