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격앙 되어 있었다. 격정적인 연주 끝에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뼈와 피를 쏟아내듯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내 생애 이토록, 감동적인 무대를 본 적이 있던가. 어제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이 거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 실로 찬란한 삶이다.
2월 12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MBC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로 더욱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독주회장. 3층까지 꽉 들어찬 관객으로 객석은 붐볐다.
8시가 되자 바다빛을 닮은 드레스를 입고 서혜경이 나타났다. 도발적인 시선, 꼿꼿한 허리, 잰 듯한 걸음걸이를 보니 역시, 서혜경이 맞았다. 단정한 쇼커트와 화려한 이어링이 그녀의 샤프한 매력을 더했다.
서혜경의 연주는 생의 희노애락을 연상케 했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손가락은 나비를, 울분을 토해내듯 흐드러지던 건반은 연어의 생명력을, 용감무쌍한 건반의 놀림은 무사처럼 힘이 넘쳐났다.
건반 하나를 놓고 다투듯 엮이던 섬세한 손놀림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서혜경은 노련한 연장공처럼 피아노를 다뤘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녀의 손가락과 탄탄한 팔은 느릿한 포물선을 그리며 절제 있게 떨어졌다. 하나의 독주회라고 표현하기에 공연은 너무 거대했다. 탄생과 사랑, 이별과 죽음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를 통해 재현되는 느낌이었다.
2부의 드레스는 강렬했다. 드레스 곳곳에 수놓아진 장미는 마치, 생화처럼 보였다. 서혜경의 카리스마와 딱 떨어지는 훌륭한 드레스였다. 드디어, 본 연주 마지막 곡이자 2부의 첫곡인 프란츠 리스트의 의 연주가 시작됐다.
이 곡은 서혜경이 젊은 시절 즐겨 연주하던 곡으로,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장대한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건강을 우려하던 바이기에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우였다. 서혜경은 온 몸 아니 생의 모든 것을 건 사람처럼 간절히 연주했다.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그저 ‘감동’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때론 의자 위를 부유하며, 때론 공중을 휘저으며 그녀는 필사적으로 연주했다. 아이맥스 영화관이라도 온 듯, 연주를 보는 내내 몸을 떨며 긴장했다.
서혜경의 무대는 여느 연주회와 달리 편히 감상할 수 없는 격정 그 자체였다.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공연 내내 듣고,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 공연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 임신부와 태아가 함께 듣기 좋은 서정적인 소품으로 꾸며졌다. 관객의 상당수도 어린 아이들과 학부모로 이뤄졌다. 제2, 제3의 서혜경을 꿈꾸는 어린 피아니스트와 어머니들은 1초라도 놓칠 새라 무대에 집중했다.
본 연주 후, 객석은 환호와 박수로 들끓었다.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연신 터져나오는 앙코르에 건반의 여신은 4곡의 연주로 풍성하게 답했다. 이 중 슈만이 클라라에게 결혼 전날 선물한 ‘헌정’은 설명까지 곁들이는 다정함까지 보였다.
잊을 수 없는 ‘꿈’의 공연이었다. 예술의 전당을 빠져나오며 나는 생(生)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과의 사투가 아닐까. 죽음의 경계를 넘어 온 한 인간의 요동치는 생명력을 온 몸으로 느낀 밤이었다.
프레데릭 쇼핑 연습곡 작품 25번
로베르 슈만 피아노모음곡 작품 15번 중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 모음곡 중
자끄 오벤파흐 호프만의 뱃노래
존 필드 야상곡
프레데릭 쇼팽
헤이토르 빌라 로보스 어릿광대 중
요하네스 브람스 자장가
프란츠 피터 슈베르트 밤과 꿈
프란츠 리스트 탄식
INTERMISSION
프란츠 리스트
피아니스트 서혜경
카네기홀이 선정한 3대 피아니스트. 스무 살에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줄리어드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을 했다. 그의 손가락은 100만 달러(약 14여 억 원)의 보험이 들어 있다.
2006년 10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그녀는 8번의 항암치료와 절제수술, 33번의 방사선치료를 이겨내며 예술투혼을 불살랐다. 2008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컴백무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동시에 연주해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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