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 탄탄하고 환율 비교적 안정
올해 들어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대신 이크(ICK:인도·중국·한국)가 세계 주식시장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ICK 국가들의 올해 기업 이익 증가폭이 여타 신흥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논리다. 실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치를 보더라도 상품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기 둔화 정도가 더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은 수시로 변하고 투자 매력도 역시 따라 변한다. 따라서 수시로 떠오르는 용어들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경제상황인 만큼 충분히 경기 회복을 기다리면서 주요 투자 지표들이 제 방향을 잡기까지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단적인 예를 보자. 올 초 국제 유가가 강하게 반등하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던 ‘상품 공급 부족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 중국 핫코일 철강 가격과 내수 철근 가격이 빠르게 반등했다.
이 품목들은 원유·구리처럼 투기적 수요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실제로 쓰이는 만큼 팔린다는 얘기다. 즉 중국 정부가 내놓은 건설수요 촉진책으로 수요가 늘면서 가격 상승과 공급부족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낙폭이 컸던 원자재·인프라(설비) 관련주들도 반등했다.
이처럼 중국 내에서 장기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건재하고, 공급이 제한돼 있는 상품의 가격이 높은 선에서 자리 잡을 경우, 낙폭이 오히려 컸던 브라질·러시아의 매력이 유지될 수도 있다.
한편 현 중국 정부의 강한 재정·통화 확장정책이 중국을 순식간에 다시 성장세로 이끌 가능성을 항상 열어둬야 한다. 이는 브라질과 러시아에도 좋은 흐름이 될 수 있다. 세계 경제와 증시의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급격히 하강하면서 기업이익 예상치 전망이 많이 빗나가고 있다. 전망이 어려운 만큼 예상치도 아직 충분히 신뢰할 만한 수준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돼, 이를 기반으로 한 투자 판단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우, 올해 예상 기업이익은 지난해 예상됐던 최고 낙관치보다 각각 30%와 43%씩 하향 조정됐다. 중국과 인도는 그보다 낮아 각각 24%, 20% 하향된 수준이다. 네 국가의 에너지·원자재·산업재 부문은 하향조정률이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탄탄한 중국과 인도 내수산업 부문의 하향폭이 작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처럼 이익 예상치를 30~40%씩 대폭 하향조정하는 상황에서는 수치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따라서 전망이 안정적으로 정리될 때까지 기업이익 수치를 잠시 쳐다보지 않는 여유가 필요하다.
굳이 지표를 보자면 이익률보다는 기업 자산가치를 따지는 게 낫다.
특정 지표에 따른 국가별 투자 의미 없어
주가수익비율(PER)보다는 주당순자산비율(PBR)이 그나마 더 믿을 만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PBR 지표를 볼 때도 주의해야 한다. 각종 대내외 악재가 주가에 크게 반영된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우 PBR 수준이 다른 신흥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 간 평가 차이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점을 생각하면 싸다고만 볼 수도 없다.
결국 특정 지표에 의존한 국가별 단순 투자조합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세계 금융시장은 커다란 전환점에 있고 세계 경제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신뢰할 만한 장단기 핵심 변수에 초점을 맞추면서 균형 있게 접근하는 전략이 유효할 듯싶다.
단기적으로, 국가별 투자 매력도는 각국이 펼치고 있는 통화·재정 정책 성공여부와 환율 안정성에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눈여겨볼 점은 두 가지다. 첫째, 현재와 같은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의 탄력성이 좋아야 한다. 둘째, 국외 유동성이 조금이나마 유입되기 위해서는 환율 안정과 추가 통화 강세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유럽과 미국 금융기관의 지속적 디레버리징(자산매각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것)과 달러의 기축통화 영향력 약화 조짐이 있는 환경에서 외국인들이 다시 신흥시장으로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도의 경우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고는 있지만, 정부 부채가 상대적으로 높아 재정정책 실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가별 정책·환율 안정성 살펴야
유가 하락으로 상품수지 개선이 예상되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금 유출이 루피화에 일시적 부담 요인이다. 그간 지속적인 국외 투자자금 유입으로 국제수지를 맞춰왔기 때문이다.
반면 브라질은 아직 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으나 재정정책의 여유가 다소 있다. 재정적자는 GDP의 5%, 정부 부채는 56% 수준이다. 아울러 금리가 높아 국외 자금 유출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상품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9%인 반면, 주식시장에서 관련 종목 비율은 40%에 달해 상품가격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면 주가 상승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다.
러시아의 경우, 루블화가 안정되지 못하고 있고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아직 시기가 일러 보인다. 한국은 환율 하락 가능성과 중장기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들이 장기적 관심을 가질 것이다.
중국은 장단기 관점 모두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 BRICs든 ICK든 모두 개념상 여전히 전 세계 투자의 핵심 고리가 아닌가 한다.
단기적으로는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재정정책의 여지도 가장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환율이 안정됐다는 점도 좋다.
주목할 사실은 중국의 대외 의존도가 생각보다는 낮다는 점이다. 즉 수출 감소를 내수부양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흥시장 중 중국 가장 매력적
실제로 1980년 이후 2004년까지 순수출(수출-수입)의 GDP 성장 기여도는 평균 7%에 불과했다. 최근 3년간 중국의 대외 수출이 급증하면서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20%에 달했는데, 이는 원자재 부국들의 수입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자재국들의 수입수요를 불렀던 중국 고정투자는 2006년 이후 이미 둔화돼왔고 주택시장 역시 일정부분 조정을 겪었기 때문에 기저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재정·통화 정책에 의한 중국 인프라 고정투자 증가는 세계 상품가격을 안정시켜 원자재 보유국의 성장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기적으로 세계 증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국이 가야 브라질, 러시아도 가고 한국도 운신의 폭이 생길 수 있다.
세계 신흥시장은 고점 대비 60%의 조정을 이미 겪었고 밸류에이션(PBR 기준)은 2003년 저점마저도 밑돌고 있다. 미국 중심의 금융질서 재편과 세계 경제 축 이동이라는 대세 흐름 속에서 장기적 투자의 기회는 결국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신흥시장에 있을 것이라는 데 여전히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용어
·BRICs와 ICK:BRICs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말하며 ICK는 인도, 중국, 한국을 뜻한다.
출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