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우가 헤어졌다고 한다.
뭐 다들 연애하고 헤어지는게,
학창시절 풀어재끼던 수학의 답처럼 머리 속에 정해져 있지만,
막상 그의 실제에선 연애의 정답이 쓰여있는 페이지 따윈
찾기 힘들었다고..
승우가 그녀를 처음 만난건 학창시절이라고 했다.
뭐 뻔한 스토리.
난 그가 좋아하는 곱창집에서 연기를 몸에 마셔가며,
그의 빈 잔을 채우고 넘치는 입담을 받았다.
"그 후, 정확히 7년만에 다시 봤어"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 그냥 우리가 같은 학교 나온것만 알아"
그의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거다.
작년에 대학에서 처음 그녀를 알게되었는데, 알고보니
승우와 그녀가 동창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가까워졌다고..
더 정확히 내가 알긴 승우와 그녀는 오래 사귀질 못했다.
지구 중의 사랑중 80%라는 일방통행 짝사랑이었지, 아마.
결국 그는 해가 바뀌고 나에게 지난 날을 풀었다.
"별거 없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고.." 그가 한잔 들이켰다.
함께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고,
같이 여기저기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그녀는 그에게 결국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들의 연애는 순탄치 못했다.
초반부터..
"에너지 낭비야."
-어?
"에너지 낭비라고"
-무슨 말이지? 데려다 주는거?
"그것도 그렇고, 난 너랑 이럴 마음 없는데 너가 이렇게 하는거
그거 시간 버리고 너 힘든거 넌 아니?"
-....
"에너지 낭비라고"
데려다주는게 그렇게 싫었던걸까?
그녀의 집에서 승우의 집은 내가 듣긴 도보로 10분인걸로 안다.
승우가 그때 마지못해 한 대답이, "나 에너지 넘쳐" 였다고 한다.
나보고 노량진 화술학원 3개월 속성으로 다니라고 하더니만,
같이 다니자 승우야.
하루는 그들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원채 말이 없는 그녀이기에 우리 승우 얼마나 괴로웠을까.
항상 같이 방과후 집에가는 버스에서 그들은 대화가 없었다.
"내가 걔한테 들은 얘기가 뭔지 알아?"
항상 그렇지만, 난 그가 뜸들여 이야기하는게 제일 싫다.
그러더니 승우가 한톤 높여 볼멘 목소리로,
그녀의 성대묘사를 하며,
"너는 어떻게 된게, 나만 나면 중학교 이야기, 성당 이야기
군대 이야기, 학교이야기 밖에 안하니?"
아- 그녀도 승우와 처럼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아무튼 그럼 무슨 대화를 하나..
그럼 다른 연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토론하나..
같이 나란히 버스에 앉아 집에 도착하는 그 시간내내
말 못하고 쭈볏쭈볏 앉아 있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기도 하고, 안쓰러웠다.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열거나, 얻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거겠지.
그녀는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을 살다싶이 한다고 했다.
방학인 지금에도, 그들이 헤어진 지금에도,
그는 아직도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녀를 지켜본다.
안타까운 자식.
아무튼 조금씩 얼굴이 벌게지며 그가 말을 이었다.
"걘, 공부를 참 좋아해. 한번은 시험기간에 같이 도서관 자리잡고
앉아서 공부하는데..."
뒷얘긴 이렇다.
그녀는 4시간에 한번씩만 자리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고 온다. 허리를 곧게 펴고 자신의 얼굴보다 큰 검은
뿔테를 끼고..
그녀는 아주 작은 키에 (여자 중에 가장 작은 키라고 했다)
꽁지 머리를 위로 틀었는데, 교내에서 인기가 제법 있어서,
남학생들이 와서 음료수와 쪽지를 많이 놓고 간다.
"걔가 하루중에 유일하게 날 보고 웃을때가..
[피크닉]을 사줄때 였어. 도서관 자판기의 피크닉은 아마
다 빼먹을 정도로 좋아하니깐."
그래서 그녀의 도서관 자리에는 다른 남학생들이 주고 간
피크닉만 5개씩 된다고 한다.
"그녀는 마치 남들에게 자랑하듯이 항상, 먹고 남은 피크닉을
일렬로 진열했는데, 내가 매일 하나씩 준 피크닉이 그 5개중
1개였다는게 .. 넌 무슨 기분인지 아니?"
이렇게 그가 사뭇 진지하게 물어보면, 난 고개를 이내 돌릴 수
밖에 없다. 승우의 눈빛이 너무 슬퍼보이기에.
아마도, "여럿 중의 한 명"이라는 그런 느낌이겠지.
5/5의 남자친구가 아닌 1/5라는 그런 마음.
사귄것도 참 특이했다.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고 그렇게 뿌리쳐도,
(그 당시 난 그에게 열번찍으면 언젠가 받아주지 않겠냐라고
상담 했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녀는 다이아몬드로된 나무였다)
계속 다가오는 승우를 그녀는 못내 그냥 연애를 받아들였고,
결코 마음을 열진 않았다.
아마 알아서 스스로 정리하길 바라는 거였겠지.
그들의 연애 초반..
그녀의 허락을 받고 나에게 전화해서 미친듯이 기쁨의
비명을 질러댓던 승우의 지난 모습이 내 머리에 떠오르자,
참 마음이 안쓰러웠다.
시간이 지나, 흘러간 과거를 돌아본다는건..
마치 소설의 마지막을 알고 읽어나가는 것과도 같으니..
그녀는 자격지심이 참 강했다.
항상 자신의 못남을 분해하며, 곱씹으며 살았고,
그래서 매일 그렇게 곧죽어도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한다고 했다.
어쩐지, 그렇게 밥 먹자, 만나자 해도 보기 힘들었던
지난해에 승우는 내가 그렇게 불러낼때마다
"나 도서관이야, 담에 보자" 라고 말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닌 그의 그 말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야, 괴씸한 자식. 그래서 나 안만났었냐? 사랑에 우정을 팔아?
술 값 너가 내라!"
학고만 줄창 맞던 그가 갑자기 학점이 4.0을 넘은 비결이
바로 공부벌레 여자친구 덕분이었다니..
나도 순간 부러웠다ㅠ.ㅠ 아무튼..
"너는 나와 참 다르구나. 우린 할 말이 없겠어"
이 말은 승우에게 종종 그녀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낭만을 찾고 밤 분위기에 가슴 설레이는 승우 같은 남자와,
냉정하고 말이 별로 없는 그녀가 어울리기 힘들만도 하다.
"우리 주말에 롯데월드 갈까? 회전목마 타면 좋겠다"
승우가 데이트하자고 도서관에서 그녀에게 속삭이면,
그녀는 먼저..
"안되."
일단 냉정한 첫마디 후.
"싫어"
한번 더 부정해주고,
"그 돈으로 시험기간마다 복사하지 말고 전공책을 사지 그래"
확인사살까지-
짝-짝-짝 멋진 그녀!
오죽하면 과 내에서 그녀의 별명이 잔다르크 일까.
"우리 영화 보러갈까?"
가끔 그녀의 대화법은 간결하기도 했다.
"혼자 가"
그래도 좋아한다고, 아무리 그녀가 냉대하여도
다 참고, 웃으며 나란히 도서관에 앉아,
공부해서 학점을 올린 승우가 사뭇 대단해보였다.
"내가 얻고 싶은건 학점이 아니라. 마음이었어"
점점 더 그의 이야기 속의 그녀가 궁금해졌다.
잔다르크로 불리는 그녀는,
친구들이 모두 명문대에 공부를 하고,
오빠가 하나 있는데, 자신의 집에서는 의대다니는 그 장남만
위하고 챙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 계열로 전과를 하고 의치약대학원 편입준비를
했다고 했다.
결국은 합격 했다지?
잠이 올때마다, 자신의 친오빠 사진을 보면 잠이 달아난다며
그렇게 도서관 잔다르크는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승우가 그녀의 마음에 들어갈 공간은 없었을테지.
그걸 옆에서 가슴앓이 했을 승우도 참 대단해.
"그거 알아?"
- 또 뭐. 뭘 알아. 내가 아는건 너가 계산해줄 이 테이블 술값!
나는 항상 상담료는 확실히 챙기고 본다.
"그렇게 이 악물고 공부하는 걔가 가끔씩 옆에서 엎드려 졸때면,"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양 볼이 벌그레해져서 새근새근 숨을 쉰다고 했는데,
새근새근이 아니라 "쿨쿨" 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에 빠진 이에게는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
그것이 연애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또한 사랑은 참 모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마음을 얻고 싶어하고 이름이 불리길 원했지만.
끝내 그녀는 그의 이름 "승우"를 단 한번도 불러주지 않았다.
물론 먼저 그녀가 말을 꺼내는 경우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기껏 불러 봤자 "너"였다고 한다.
내가 실컷 승우야 승우야 하는건 니 이름 아니었었니..
푸른 소주잔이 바닥을 보여줄때쯤.
그의 애절했던 짝사랑 연애담도 파국으로 가까워져갔다.
"마지막 날에 그러더라-처음으로 미안하다고"
나는 이쁘지도 않아
나는 키가 크지도 않아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않아
나는 집이 잘 살지도 않아
나는 좋은 학교를 다니지도 않아
그래서 나는 공부해.
그리고 나는 너가 싫어.
미안해. 너를 받아줄 시간이 내게 없어.
.
.
이렇게 그녀는 마치 연설문 같은 말로 승우에게 이별을 고했다.
조금씩 연애기간 내내 지쳐갔던 1/5짜리 내 친구 승우는,
더이상 그 순간에 아무 말도 못했고,
그녀가 다시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뒷 모습만 지켜봤다고 했다.
"재밌는건 말야. 그녀가 한 마지막 말..
나는 너가 싫다는 이 말,말이야.
영어 문법상 정확히 주어 서술어 목적어를 넣어 이야기한게
그 순간에 머리에 팍!하고 꽂히더라구. 웃기지?"
결국 술에 그 날 하루치 영혼을 넘긴 승우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중얼거렸다.
"S+V+O 이거 문장의 3형식 이지? 나는. 너가. 싫어."
지금 우리 승우는 아직도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제 내일이면 호주로 도피겸 어학연수를 갈 그에게
그의 이야기를 글로 바친다.
p.s 잘다녀와! 아림이보다 좋은 사람 만날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