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정치인의 남녀문제와 관련된 스캔들에 관대하다. 사석에서 공직자의 사생활을 화젯거리로 삼기는 해도 '정치문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정·관가를 둘러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직일 때 이혼하고 곧 떠들썩한 연애를 하다 재혼했다.다. 2007년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르와얄은 25년 동안 동거하면서 아이 넷을 낳았다. 국방장관 미셸 알리오-마리는 20년 넘게 동거 중이고 미혼의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은 최근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아기를 낳았다.
사르코지의 사생활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90% 가까이가 "사적인 문제이므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혼과 연애로 인해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응답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돈 문제엔 극도로 민감하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 총리는 1993년 무이자로 빌린 돈 100만 프랑(당시 환율로 약 1억5000만원)이 문제가 돼 자살했다. 베레고부아는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살 때 세금도 제대로 냈고 나중에 돈도 다 갚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자살하는 길을 택했다.
돈 문제엔 이토록 까다로운데 사생활, 특히 남녀관계에는 왜 너그러운 것일까. 우선 타인의 사생활엔 간섭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다. 이준 필립 한불상공회의소장은 "프랑스에선 다른 사람이 결혼하든 연애하든 원칙적으로는 타인이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친밀함은 법이나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것이다.
다티 법무장관은 작년 임신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언론에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궁금해하자 "내 사생활이 복잡하긴 하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성을 중시하고 위선을 싫어하는 태도가 남녀 또는 성 문제에 관대한 분위기를 만든다. 프랑스에선 연애나 결혼을 업무능력과 연결시키는 것은 비(非)이성적이라고 본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 추문으로 미국이 발칵 뒤집혔을 때도 프랑스에선 "유치하다"며 냉담하게 바라봤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는 "프랑스인들은 누구와 어떻게 연애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안을 보는 시각이나 업무능력과 연결된다고 보진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프랑스인들은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 별 볼 일 없고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청교도적 전통이 강한 미국이나 유교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에선 인간이 도덕적인 존재라는 전제에서 생각하지만, 프랑스에선 그런 전제를 위선적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여러 형태일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가톨릭 교회의 영향이 줄어들고 젊은이들이 일찍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유롭게 살면서 결혼율이 30년 전에 비해 3분의 1 가까이 떨어졌다. 프랑스인에게 결혼은 개인적인 일일 뿐 사회가 간여할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