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대한민국 사육장

서용원 |2009.03.08 13:53
조회 112 |추천 0
순응? 적응? 사육? 어느 표현이 나을까? 한국의 전통적인 습성(?)중에 비굴모드가 있다. 어감의 껄끄러움이 있을지 모르나 이보다 적당한 단어는 없을 것이고 한국에서는 적어도 나쁜 단어가 아니다. 비굴모드가 발휘되는 곳은 여러 곳이다. 금전적인 관계, 계급적인 관계, 나이순의 관계, 권력의 관계 등 한국 사회 전반적인 곳에서 이 비굴모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기분 나쁘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오히려 즐긴다고 본다. 왜.. 아랫사람인 줄 알고 하대하다가 알고보니 자기보다 윗사람이라 당장 굽신거리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통쾌해 하지 않은가? 물론, 그 속엔 상황의 역전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만, 그 사람의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일련의 동질감과 그것을 부정하는 반감에 웃기도 한다. 예전의 한 TV 프로에서 본 기억이 난다. J그룹의 가수 S양이 가수 H양을 바닷가에서 보면서 자기 보다 대선배라고 달려가 인사 드리는 장면을 보이면서 웃음을 준 적이 있다. 이는 계급을 따지는 남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 역시 비굴모드를 받아들이는.. 한 마디로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른다고 생각한다. 웃기지 않나? 웃기다.

 

우리는 비굴함을 즐긴다. 윗사람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들 밑으로 들어가 자신을 밟아주고 강요하길 바란다. 밀란 쿤데라류의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기 싫어서 일까?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그들의 일원이 된 듯하고, 자신의 자리를 안정시켰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한민족 문화 속에서생존하려면 이 방법뿐일까? 유전자 보존을 하려면 이 방법뿐일까? 우리의 유전적 우성은 비굴함인가? 어떻게 이런 문화들이 생겨 났을까?

 

 나는 논어를 좋아한다. 보면 볼 수록 인간관계의 핵심을 꿰뚫는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근데 이것이 한반도에 들어와 희한하게 작용한다.

 

君君군군 臣臣신신 父父부부 子子자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

 

논어의 핵심 중 하나인 이 정명론은 우리나라에서 절대적이다. 아니, 절대적으로 변질되었다. 윗사람이 君으로서 아랫사람을 臣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머슴으로 대한다. 臣(신)은 윗사람을 神(신)으로 대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식 유교요, 정명론이다. 본인이 논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 정명론다운 것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 속에 비굴모드는 없다고 본다.

 

 여기다 소스를 하나 뿌리자면 '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 사람사이의 정 때문이라며,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아하! 그렇구나!' 라고 감탄사를 치게 하는 단어가 정이다. '정'이란 아름답다. 본인도 '정'(이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때문에 가슴뭉클한 적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정말 냉소적으로 관찰해 본다면, '정' 때문에 사회에서 비굴모드를 허용한다. 어디까지 적용할지 모르는 이 놈의 '정' 때문에 학연, 지연이 생기고 그 속에 비굴모드에 기반한 계급이 생긴다.

 

 

 

 이렇게 쓰고나니 결론을 어찌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대한민국의 이런 풍습에 상당히 적응하지 못 했다고 자부(?) 하지만 (그래도 군대가서 많이 길들여진 편이다.) 이런 한 것들을 부정한다는 것은 내 자신을 부정한다는 역설적인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만큼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애매모호한 문제일 것이다. 내 지혜의 부족 때문에 박노자씨의 글을 밑에 달면서 이 글을

마친다.

 

 

 

 아래는 박노자씨 블로그에서 퍼옴.

 

 며칠 전인가 인터넷 어디에선가 중앙대 총장 박모의 "감칠맛" 발언에 대해 읽었습니다. 정확하게 이

야기하자면 읽다가 말았던 것입니다. 너무 역겨워서 관련 기사를 끝까지 읽을 수 없었던 것이고, 굳

이 읽지 않아도 모든 게 불보듯 뻔하니까 읽을 필요도 못느꼈습니다. "권력에의 도취", 그리고 밑엣사

람을 짓밟으면서 그걸 "멋'이라고 부르는 것...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풍경입니다. 사실, 권력의

어누 순위에 올라간 뒤에 술김에 한 번이라도 자기 부하를 짓밟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게 성추행이라는 범죄의 수준이 되면 사회적 이슈라도 되지만, 지도 교수가 술

을 듬뿍 마신 뒤에 여제자에게 "아니, 결혼을 언제 하려는 것이야? 꽃을 보기만 하면 뭐하냐, 누군가

가 꺾어야 향기나지"라고 횡설수설하는 정도는 아마도 "문제" 될 것도 없을 듯합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인네"들이 겁도 없이 "감칠맛" 운운할 수 있는 이유는, "밑엣사람"이 아첨

을 떨고 "윗사람"이 부하의 자존심을 적당히 밟아주는 데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입니

다. "합의"라고 하면 어폐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걸 읽고 "나는 이런 데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

다"고 외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요, 모든 개인들이 개별적으로 인격 모독이라는 사회적 "통

과의례"에 대해서 합의한 일이야 없지요. 그러나 사회의 일체 위계적 관계들이 독립적 인격의 원색적

부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알게 모르게 "통념"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제도권만을

탓할 것도 없지요. 노조나 학생운동권의 분위기가 획기적으로 다르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사람이

있겠어요? 규모/형태는 다르지만 노조나 학생조직도 일종의 "권력"인데 대한민국에서 독립적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권력이 부재한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박모 총장의 개인적 몰상식이 무서

운 게 아니고 대한민국 (특히 남성) 인구 대다수가 박모 총장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게 문제

입니다.
 

 인간이란 모방을 하면서 크는 동물입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학부모와 선배들이 담임교사에게, 그리

고 담임교사가 교장, 교감에게 '잘해주는' 걸 보면서 크는 아이들은 "원만한 성격"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안배우겠어요? 특히 순응주의적 성격을 잘 심어주는 게 10대후반-20대초반  "국민"의 거의 90%가

싫든 좋든 가게 돼 있는 대학입니다. 군대에 여성을 위시한 수많은 "국민"들이 안가고 못가지만 대학

이란 이제 20데 초반들의 가장 보편적 사회화의 장이 됐어요. 그런데 대학이야말로 아부의 절대적 중

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 구성원들 중에서는 서로 동등한 두 사람

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철저하게 "위계화"돼 있어요. "선생님" (시간 강사)와 "교수님" (전임 이상)이

그 위치상 평등치 못한 것은 물론, "선생님"과 "교수님" 사이에서도 그 서열적 위치상 서로 동등한 사

람이란 거의 없지요. 마찬가지로 학생 사이에서도 선후배가 불평등한 것은 물론이고, 같은 학년 안에

서도 나이, 성차, 가정 배경, 성적 등등 여러 차원에서 다들 서로 서로 "위치"가 확실히 다르지요. 그

위치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란 적당한 (내지  적당하지도 않은) 아부인데, 대학에 제

대로 다녀본 사람이라면 "비굴 모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배움이란 한국적 환경에서 머

리를 잘 숙이는 걸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어차피 잘 숙여주는 사람보고 '감칠맛" 같은

류의 표현을 왜 못쓰겠어요?  음이 있으면 양도 있고, 준비된 백성이 있으면 그 위에 군림할 군주도

나타나게 돼 있지요.
 

 과연 만의 하나에 대한민국에서 혁명이라도 일어나면 이 비굴함의 일상화 분위기가 좀 없어질까요?

글쎄, 처음에는 좀 그렇겠지요. 러시아만 해도 1917년10월 직후의 분위기는 많이 좋아진 편이었어요.

한 때에 존대말 (Vy형) 안쓰기 운동과 같은 재미있는 현상도 일어났는데 말에요. 그런데 나중에는 스

탈린과 같은 형태의 반동이 어차피 혁명 정당 내부로부터 일어날 것이고, "세계 혁명"의 거창한 구호

는 "국가 개조"의 민족주의적 개발주의 지향으로 바뀔 것이고 과거의 모든 망령들이 다시 나타날 것

입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아는 혁명 중에서 그렇게 끝나지 않은 혁명이란 아직도 없었지요. 그러니까

저는 차라리 "촛불 항쟁"과 같은 밑으로부터의 대규모 집단 행동이나 청소년 인권 운동 등에 더 기대

를 많이 걸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민중적/개인적 "자존심 회복"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