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촌놈이
압구정에 일이 있어서 그 멀리까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압구정 나들이를 하였다
볼일을 보고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길.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싸락눈이었다..
추운 주변 공기에 옷깃을 여미고 황급히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압구정역에서 3호선을 타고 옥수역으로
가서 1호선(국철)을 타고 왕십리로.
그리고 왕십리에서 천호까지 가는 5호선 지하철을 탄다..
압구정 역에서 옥수역에 1호선 국철로 갈아 타는 길..
옥수역은 지상에 나와 있는데다 둥그런 천장 중간에 틈이 넓게
벌어져 있어서 하늘이 보인다.
그 틈 사이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10시가 넘은 밤. 어두컴컴한 하늘과 밝게 빛나는 천장의 불빛.
그 묘한 대비 속에 내리는 흰 눈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순간 혼자라는 생각도, 힘든 오늘 하루의 일과도 잊은 채 그렇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내리는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옥수역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왕십리까지 1호선을 타고 갔다가 5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왕십리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이번 열차는 마천 행입니다"
MP3를 귀에 꽂고 노래를 들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가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맞은 편 좌석에 한 여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자는 긴 생머리에 흰색 계통의 캐시미어 코트(?) 를 입고 검은 스타킹에 검은 하이힐을 신은 이쁜 여자였다.
그 여자의 손에는 폴더가 열려 있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한 손으로 그 핸드폰을 쥐고 그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울고 있었다..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눈물을 계속 닦고 있었다.
운 좋게도 자리가 나서 그 여자의 맞은 편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슨 일로 저리 서럽게 울까..
아마도 남자친구로부터 헤어짐을 통고 받았나 보다..
사람들이 많이 타는 늦은 퇴근 시간.
사람들의 예의없는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큰소리로 울고싶은 걸 참는다는듯 꺼억꺼억 소리를 가끔 내며..
그렇게 흐느끼고 있었다.
왕십리. 마장. 답십리 역을 지나는 동안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멈추지 않고 내리는 아름다운 흰 눈처럼,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때 마침 흘러 나오는 장혜진의 슬픈 노래를 들으며, 기분이 가라앉았다.
불쑥 가방의 옆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부스럭부스럭..."
겨울이 되어 추운 공기 때문에 평소에 약한 코에서 콧물이 흐를 때가 가끔 있어 지하철 편의점에서 샀던 500원짜리 휴지가 개봉만 된 채 들어있었다. (사실 한 번 썼다)
답십리역에서 군자역에 도착할 때까지 휴지를 손에 들고 앉아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쿵. 쿵.
울고 있는 그 여자의 앞에 가서 섰다. 바로 앞은 아니고 약간은 옆으로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왠일인지 그런 시선에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남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 순간 아무 생각도 없었다.
불쑥-
고개를 살짝 숙이고 울고 있는 그 여자의 앞에 휴지를 내밀었다. 그 때까지 계속 울고 있던 그 여자의 아래를 향한 시선 때문에 휴지는 보이지 않았다.
툭.툭. 그 여자의 한 쪽 어깨를 살짝 쳤다.
반응이 없다.
툭.툭. 다시 한 번 어깨를 쳤다. 처음보다는 약간 세게.
천천히 그 여자가 고개를 든다.
여전히 울고 있다.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코도 나오고, 얼굴은 눈물 범벅에 빨개져 있다.
무슨 말을 할까....
그냥 말 없이 다시 불쑥- 휴지를 내밀었다.
살짝 다물어져 있는 입술. 그리고 슬픈 눈을 한 채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던 그녀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 앞에 내밀어진 휴지를 바라본다.
잠시동안 휴지를 바라보던 그 여자는(여전히 울면서) 휴지를 받아들더니 눈물을 닦고 흐르던 콧물을 닦는다.
그 모습을 잠깐 보고 있다가 고개를 숙인 그 여자의 무릎 위에 휴지를 조금 더 꺼내 올려놓아주었다.
살짝 붕 떠 있던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 원래의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이미 그 자리는 토끼같은 자식들을 위해 오늘 하루 상사들에게 시달리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을게 분명한 아버지뻘 나이의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듯한 시선..
그제서야 민망함을 느끼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외투의 자크를 끝까지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쫄래쫄래 지하철 문 앞에 섰다.
군자. 아차산. 광나루.
3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문 앞에 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문의 유리를 통해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던 나는
힐끔힐끔 그 울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한 손에서는 여전히 열려져 있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그 여자가 처음 모습과는 다른게 있었다면, 그건 다른 손에 들려있던 휴지.
그것이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울면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있었고(눈물말고 콧물도 흘렸을게 분명하다)
휴지로 계속 눈물과 콧물을 닦고 있었다.
"때르르릉. 이번 역은 천호 입니다. 내리실 분은 오른쪽에 서주세요"
광나루 역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여자는 계속 울고 있었다.
천호역에 도착하여 문이 스르륵 열리고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을 토해내고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토해진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던 나는 지하철 역을 올라가기 위해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투의 팔 한 쪽을 뒤에서 잡아당겼다.
"저.....저기요...."
'어라?'
영문을 모르고 뭔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였다.
"...예?"
같은 역에서 내린건지 아니면 설마 나를 따라 내린건지 살짝 헷갈리고 있었다.
살짝 당황한 모습으로 대답을 했지만 그 여자는 계속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그냥 외투의 팔 한 쪽을 계속 살짝
잡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와 함께..
다른 손에는 여전히 핸드폰이 열려진채 들려있었다....
"저기 왜....?"
말이 튀어나오다가 죽어버린다.
말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가방의 옆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말 없이 울면서 외투의 팔 한 쪽을 붙잡고 있던 그 여자는 휴지를 받아들고 눈물과 콧물을 닦는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가고 있던 매표소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그 여자와 둘이서 잠시동안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이제 그냥 가야되나? 뭘 어쩌지? '
사람들이 오가며 울고 있는 한 여자와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는 예의없는 시선들에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어찌해야 하나 행동을 정함에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가 주춤주춤 지하철을 기다리며 사람들이 앉아있는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정쩡하게 그 여자를 에스코트하는듯한 붕 뜬 손 짓으로 그 여자를 이끌었다.
약간 떨어져서 앉은 그 여자와 본인. 그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나는 약간 옆에 떨어져 앉아 이걸 뭘 어쩌나
뇌가 붕 뜬 상태로 다리를 살짝 떨며 초조하게 그 여자를 보았다.
좀 전부터 울음이 조금씩 그쳐가던 그 여자는 끄윽끄윽 거리더니 분명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감사합니다..흐흑"
안절부절 못하던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아..아니에요 제가 뭘;; "
다시 나의 침묵과 그 여자의 울음이 계속되고 난 후.
간헐적인 흐느낌과 함께 그 여자가 다시 말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죄송해요 흐흑"
뭐가 감사하다는건지 뭐가 죄송하다는건지 대충은 알아먹고
"아..아니요 괜찮아요...뭐.. 괜찮아요~"
그 여자는 울음은 거의 그치고 눈물만 흘리며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고맙다고 오늘은 진짜 평생동안 못 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다가 울컥하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는 다시 휴지를 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어느정도 진정을 한 그 여자는 밝게 웃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하고
왜 휴지를 준거냐고 물었다.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한채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술에 취한 것처럼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아...저기....그러니까...에 그러니까... 음... 저기 그게 뭐시냐..음... 일단은 울고 있는 거 계속 보고 있었는데
손수건이나 휴지도 없이 계속 손이랑 옷 소매로 눈물 닦고 있는 것 보고 휴지가 주고 싶어서......
평소 같으면 그냥 보고 에구...하고 좀 슬퍼하면서 차마 휴지 주지는 못하고 그냥 갔을텐데.. 오늘은 그냥..
뭐시냐..음... 미친듯이 아무 생각없이 일어나서 주게 되더라구요. 아 시선 창피한 것도 모르고 그냥....
오늘은 이상하게 그냥.. 그냥 그랬어요.."
창피하고 쑥쓰럽고 그래서 어물어물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주저하다가 오늘 날 잡았다는 듯이 입이 스스로의 의지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실은...."
하면서 내 이야기를 해버렸다. 뭐 길게는 아니고 대충...
그리고 위로인지 뭔지 모를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 여자도 거의 진정을 한 상태였고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어차피 집에 가면 또 슬픔이 몰려오겠지만..)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했기 때문에 벤치에서 일어나서 서로 고개를 숙이며 여러번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아니에요 제가 뭘..."
그리고 주저주저하다가 딱 한 마디를 더하고 그 여자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버스틀 타러 올라가기위해 계단으로, 그 여자는 8호선을 타러 갈아타는 곳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주저주저하며 남긴 말은....
"울지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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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벌써 3개월전인가.... 진짜 시간 빠르군.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었는데... 벌써 3월도 절반이나..
어디서 본 적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거 내가 쓴 거 맞다
몇 년만에 싸이질이나 가끔 할까 해서 열었는데 요즘에는 마땅히
해프닝이 없어서 소재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 쓴 글을 싸이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