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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한재근 |2009.04.10 12:40
조회 1,302 |추천 17

남자는 자고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쿠테타로 정권을 탈환하여 헌법까지 고쳐가며 7년이란 시간동안 유례없는 정치를 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대통령이 된뒤는 항상근엄한 표정을 유지했으며 헛대이 웃지않고 벌레씹은 표정으로 일관하셨다.
칭호를 전대에 쿠테타를 일으켜서 장기간 집권을 하다가 총마져 되진 박정희 대통령을 본받아 각하라는 칭호를 즐겨썼다.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솔선수범해야한다는 각오로 직접 총을 들고 광주사태를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전두환대통령의 명성을 위협하고자 북한은 아웅산 폭발테러, KAL기 폭발등.. 많은 테러에 작금의 부시처럼 당황하지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이분은 살생을 싫어하셔서 우리 국민의 목숨을 파리처럼 귀하게 여기셨다.

또한 우리민족이 부족한점 바로 전문 후계자를 키우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치잘하는 육사출신인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자신이 대통령에서 물러간 뒤에도 나라의 비상시 온국민이 식량걱정을 안해도 될만큼의 비자금을 노태우에게도 계속 모으게 함으로써 국민이 전란이나 재해시 혼란과 기아에 허덕이지 않게 하려는 계획도 세우셨다. (전두환대통령 또한 정치잘하기로 소문난 육사출신임은 이미 눈치챘을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은 후에 전두환대통령의 은혜에 보답코자 김현희라는 전두환이 차마 죽일수 없었던 미모의 kal기 폭파범을 특사로 살려줌으로써 전두환을 잊지못하고 그리워 하는것을 보여줬다. 그 당시 국민들은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허황됨을 알고 성형수술은 불티나게 함으로써 현재 우리나라는 미인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현재 이렇게 미인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우리의 위대하신 전두환 각하께서 김현희를 바로 죽이시지 않은것에도 커다란 영향이 있다 아니할수 없다. 감사해라..

전두환대통령은 못배우고 가난한 자들의 교육에도 신경을 쓰셔서 산세좋고 주위에 민가가 없는 강원도의 산기슭에 공부하기 좋은 장소를 개발하여 대학을 세웠으니 바로 삼청교육대 이다. 여러곳에 분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군대의 신교대로 쓰이거나 없어진 상태이다. 초기 설립이념은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제대로 공부를 못한 조폭들을 대폭수용하여 교육시킬예정이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막상 문을 열자.. 운동권 학생들을 필두로 하여 가게앞 느티나무아래서 잠자던 백수 정부에 불만이 많던 옆집아저씨등 예상치 못한 인원을 수용함으로써 더욱더 넓은 교육의 길을 넓혔다.
특히 자신의 선행이 사회에 알려지는것을 싫어하셨던 각하께서는 이런 교육시설에 더많은 사람들이 지원할까봐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하셨다.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셨던 대통령은 공부를 안하고 운동을 즐겨하던 대학생들을 데려다가 부모대신 콩밥도 주셨고 엄격한 훈계와 말로는 안되는 학생들에게는 부모보다 더한 회초리질을 가하셨다.
이런 회초리에 맞고 집에 돌아온 일부 학생들은 나라는 군인이 지키고 우리집은 내가 지킨다는 강한 신념으로 밤에 개처럼 엎드려 멍~~멍~멍~~ 짖고, 마치 개처럼 행동하기도 하였다. 부모들은 멀쩡한 자식넘이 늠름한 개모습으로 변한것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한다.

이상으로 위대한 대통령 전두환의 간략한 영웅담을 마치고자한다.

자고로 이분은 존경받는 친일파보다 더 우리 민족을 파리나 개처럼 사랑하셨고, 김영삼 대통령시절에 친히 하얀고무신을 신고 청문회라는 초청강연회에서 많은 후배정치인들의 질문에 응답하셨다. 그당시에도 이분은 특유의 벌레씹은 표정과 당당함으로 많은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피셨다. 가끔씩은 이분이 통치하던 시대의 기억을 버리지 못하고 청문회장앞에 찾아와 오열과 통곡으로 쓰러진 아줌마 아저씨 팬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찌 서태지와 비교가 될꼬?? 그뒤 이분은 사형이라는 법정최고형을 선고 받았으나 호텔같은 감옥에서 몇개월 계시다가 다쉬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아직도 떳떳하게 잘 살고 있다.

추천수17
반대수1
베플김성덕|2009.04.10 14:18
뒤를 이을 사람이 존재하니 그사람은 쥐 이분도 이제 한물간사람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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