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생각했지만
뒤통수에 눈이 달린 양, 여전히 돌아선 반대편이 보인다.
사실,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의 옛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전혀 새로워지지 못했고
나의 회개는 거창하고 기세 좋은 외침으로 시작하여
그 자체로 끝나고 만다.
아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권세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을
왜 아무런 값어치 없는 것으로 전락시키는가.
왜 아무렇게나 살면서 아무런 가책도 찔림도 고통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가.
죄를 많이 지으면 더욱 많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는,
더욱 많은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게 된다는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아직 나는 내 몸에 채워질 죄의 분량을 채우기 위한
병신 머저리같은 몸부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와 니느웨 땅이 멸망한 것을 보면서도
나는 동일한 전철을 밟으며 아브라함처럼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중보자를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자정능력을 상실한 강물처럼 이미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써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걸까?
이론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진정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의 상태임을
로마서 3장 말씀을 따라 인정하는 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의 비추심을 받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눈물 콧물을 흘리고 침을 튀겨가며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가슴을 두드리고 오도방정을 떨며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 때의 눈물은 말라버렸고 외침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눈물 흘렸으며 무엇을 위해
가슴을 치며 소리쳤는가.
무엇을 위해 두 손 들고 벌을 서는 모양으로 무릎을 꿇었는가.
지금 나는,
내 썩어질 육체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차지 않은 죄악의 분량을 충만케 한 연후에
거기에 더욱 차고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덮이기 바라는
유아기적 발상을 하며 자연인의 모습에 충실하여 살아가는가?
아아......
가슴이 아프고 쓰려도 한참 그래야 할 터인데
지금 나의 무감각은
불에 타들어가는 손과 발을 보면서도 눈 하나 꿈뻑 않고
살점이 예리한 칼날에 도려냄을 당함을 보면서도 태연자약함에
버금가고도 남는 상태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더욱 더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을 구해야 하겠다.
나의 무감각을 나의 본성으로 인정하고
거기에서 내가 왜 벗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광야생활이 남았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
피조물이 본디 그 지음 받은 상태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창조 이전, 성부 성자 성령의 아름다운 사귐을
인간과도 갖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그 마음을 깊이,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며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나에게 많은 은혜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하루 하루 은혜로 살아가게 하심에 만족하며 찬송과 감사를 드리자.
그리고 허락하신다면,
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도구로 나를 사용해 주십사
성령의 열매를 구하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사실 인정하기가 힘들다.
동시에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이 사실 인정하기도 힘들다.
그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죄인도 의인도 아닌 상태다.
여전히 죄 짓고 살아가며 여전히 기도하고 말씀도 본다.
나는,
더러운 그릇이라 생각하자.
계속 닦아내고 닦아내야 하는,
겉과 속이 더러운 그릇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속 시원하다.
그릇이 그릇을 스스로 닦을 수 없다.
그릇은 오직 제 3원인에 의해 깨끗해질 수 있다.
연후에, 그릇은 무엇인가를 담는 본연의 존재가치를 회복할수 있다.
그 가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
아멘. 내가 믿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의지하는 자,
그 사실 앞에 굴복하여 두 손 들고 그저 감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