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과 일본의 WBC 4강 진출전에 가려서
공중파에서는 방송조차 되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개최된
조계종 대법회에 참석하여 오찬을 함께 한 것,
그리고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성철의 딸 불필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간담회를 한 것.
격년으로 개최되는 대법회는 유명 사찰이 아닌,
서울 그랜드호텔의 대형 연회장을 빌려 진행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의 옆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앉았다.
이 법회는 1980년부터 개최되었는데,
역대 대통령들 모두가 이 법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취임 초기, 특정 종교인에 대한 편중인사와
불교계를 무시하는 언행과 정책으로 인해
불교계의 분노와 반감을 샀던 이명박 대통령이
불심 달래기와 국민 대통합이라는 실리를 위해,
혹은 단순하게 이전 정권에서 해 왔던 전통을 답습하기 위해,
혹은 이후의 더 강력한 불교계 탄압을 위한
즉,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교묘한 작전을 위해
이 법회에 참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 참석한 대통령의 발언을 토대로 추측만 가능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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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경유착보다 더 은밀하고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관계는 정종유착이었다.
부(富)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극소수의 가진 자들의 특권이지만
종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종교는 부(富)를 초월하여 그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는 죽음보다 강한 신념으로 화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정치세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 정부의 종교편향적 인사와 정책은
불교계의 강력한 반발 앞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산사에서 고즈넉한 삶을 살아가던 승려들이
서울 광화문, 시청 앞으로 몰려들었고
전통적으로 불교색이 강한 대구 경북지역의 사찰들은
연합세력을 형성하여 평화집회의 명목으로 정부를 규탄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불교계에 사과하며 그들을 달랬으나,
현실정치에서의 가시적인 변화 없이는
성난 불심을 돌리기 힘들다는 냉담한 반응만 돌아왔다.
안그래도 대운하 건설 및 미국산 소고기 수입,
내각 인선과정에서의 특정 출신 편중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와 원성을 샀던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더욱 곤란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
삽시간에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는 대통령이 취임 전 섬긴 교회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이 탄 차량을 검문검색한 사건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만든 지도에서 사찰 정보가 누락된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처한 불리한 상황에 카운터 펀치가 됐다.
소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건설을 찬성하는 세력에는
공교롭게도 보수 기독교단체나, 대통령의 종교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터라
불교세력은 단지 불교계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규탄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대한 규탄으로까지 공격범위를 넓혔다.
물론, 대의명분 자체는 불교 억압에 따른 반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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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통틀어 전쟁의 발발 원인 중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광범위하다.
비잔틴 제국 및 헬라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
중세 유럽의 십자군과 투르크 사이의 십자군 전쟁,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전쟁,
티벳과 중국, 파키스탄과 인도, 네팔과 인도 사이의 분쟁,
미국과 중동 국가간의 전쟁 등.
(물론 석유전쟁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지만, 그렇다면 굳이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을 택할 이유가 있겠는가?
차라리 무력이 없다시피한 아프리카의 산유국을 치는 게 낫다.
오래 전부터 미국과 중동 국가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다)
이 모든 전쟁과 분쟁은 비정상적인 정치세력이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종교세력과 결탁하여 벌어진 비극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 역사적 사건들에서
'누가 옳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대립하는 두 세력들은 제 논에 물을 댈 뿐,
상대와 타협할 의사는 애시당초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제 3자가 개입하여 타협점을 만들어 쌍방을 중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략적 타협일 뿐,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즉,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
웃는 얼굴로 가슴에 비수를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는 종교의 힘을 빌어
정치의 영향력과 영속성을 보장받기 원하며
종교는 정치의 비호를 받아
종교의 영향력과 영속성을 보장받기 원한다.
애시당초 종교와 결탁하는 정치는 종교성이 없으며
정치와 결탁하는 종교는 순수성이 없다.
정치는 엄격히 종교와 분리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정치는 대립과 대립 속에서 타협점을 찾는다.
하지만 종교적 중립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있다.
종교는 종교 자체로 이미 중립성을 지닌다.
이 말은 종교가 어떠한 정치적 색깔도 띠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종교는 그것이 섬기는 신의 계시 혹은 그의 가르침,
혹은 그것에 가장 근접한 것을 나름의 신념과 동기로 삼는다.
혹시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바가 이러한 신념과 동기에 부합한다면
종교는 중립의 장막을 걷어내고 얼마든지 종교와 타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종교는 평화와 행복과 안녕과 질서를 추구한다.
때문에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국민의 행복과 사회 질서 보장은
큰 틀에서 보면 종교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의 결합은,
그것의 분모가 혹 다를지언정 가시적인 분자의 모양은 같기에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종교가 추구하는 방향성 형이하학이 아니다.
형이하학(形而下學)적 정치와 형이상학(形而上學)적 종교는
추구하는 방향의 온전한 합일이 불가능하다.
정치가 종교가 추구하는 정신적, 영적 이상(理相)을 강요한다면
이는 밥 달라는 사람에게 경전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다.
하지만 종교는 현실세계에서의 평화와 번영보다 더 궁극적인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안식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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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말처럼 종교가 아편이 되어
혹세무민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정치다.
정치가 종교에 잠식당해 정치의 권한과 통치의 범위를
위협 당하게 되는 날에는, 다시금 교황의 아비뇽 유수와 같은
종교탄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치를 눈에 보이는 힘, 유식한 말로 권력에 대한
인간들의 탐욕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아비뇽 유수를 빗대어 정치를 비꼬곤 한다.
정치가 종교와 일정한 선을 긋고,
즉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경계선에 서서
서로 그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가 형이상학으로 건너가
신비와 불가시적 세계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종교가 형이하학으로 건너가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쉽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종교세력이
형이상학의 천계에서 형이하학의 속세로 발을 내딛었다.
중세 카톨릭의 교황은 정치권력을 위협하기도 했고,
정치세력은 눈에 보이는 가장 화려한 성당을 지어
정치를 위협하려는 교황의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둘 사이에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순간,
종교는 날개 옷을 잃은 천사처럼
다시금 천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돌아가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천박하고 부패하다 생각했던 세상의 달콤함은
인간의 부패성, 그리고 욕망과 융합하여
기형적인 종교를 탄생시켰다.
정치는 종교가 버려둔 날개옷을 걸쳐 입고
권력이 신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제창했다.
이는 중세 유럽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의 절대군주론에서 왕, 혹은 황제의 말은 곧 어명이라 하여
국가의 법과 동일시됐다.
이 권력이 강해지면 질수록 종교는 정치의 하위개념으로써
정치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그것의 이념적 토대가 됐다.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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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는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사모하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다.
태생적 한계가 과정의 한계를 수반하며,
결국 이는 결과론적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종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군상들의 이상심리(異常心理)가
정치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정치세력 전복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의 극단적 정치세력이 집권 초기에
종교를 강력하게 탄압하는 현상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혹은 종교가 정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정치세력이 자신의 본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종교세력을 전복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에
종교세력과 인정하고 그것과 타협하여 상생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
정치세력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이득이다.
현실세계에서의 경제원리를 기반에 둔 정치로서는,
굳이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종교를 발 아래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반대로 종교가 정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교가 본래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하며 심지어 믿으라고 하는데
그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온전하다 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종교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갈망과 염원의 산물이다.
그것이 진리냐 진리가 아니냐는 이후의 문제다.
종교심은 인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일,
예컨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로부터 기인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내면
얼마든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뺏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을 뺏는 것에 한계가 있다. 정치 때문이다.
현실의 사람들은 정치세력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통제 당하며
특히 절대왕정, 절대 군주 시대에서는
보호받을 권리 이전에 군주를 섬기고 복종해야하는 의무가 앞섰다.
이러한 정치세력의 존재는
종교의 현실감각 결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종교는 어느 선까지 현실세계를 인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현실정치와 마찬가지로
이것 저것 제도와 법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에 현실정치의 방향성과 어느 정도 노선을 같이 하는
이념적 공통분모를 삽입했다.
정치와 종교는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간과한 치명적인 것 한 가지가 있는데,
앞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인간의 부패성이다.
정치와 종교의 상생 의지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의 부패성은
그 제곱에 비례하여 부풀어올랐다.
종교는 정치와 결탁하여 정치에 손을 내밀었다.
혹은 정치 자체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가 되어 종정합일의 기형적 국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혹은 종교가 경제를 애무하기도 했다.
부패한 종교는 수전노(守錢奴)가 되어
금전적 이익이 없는 포교활동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정치는 종교의 부패성을 틈타 종교를 권력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재주는 종교가 부리고 돈은 정치가 먹는 식이었다.
정치 또한 자기 배만 불리며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질됐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제국주의, 독재, 혹은 타락한 공산주의다.
이에 대해서는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제국주의와 독재와 공산주의의에 의해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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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정치와 종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었다.
정치와 종교는 그것들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하여
애시당초 상관관계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이 둘이 서로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가
과거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또 현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과
앞으로 보여줄 것들을 떠올렸을 때,
이 둘의 관계를 마냥 수수방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도달한 결론은
인간 본성의 부패함 뿐이다.
내가 믿는바 진리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혹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임도 아닌데,
이렇게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부패했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가 스스로 증명했으며
지금도 증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피흘리지 않는 전쟁, 전쟁은 피흘리는 정치."
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종교는 피흘리지 않는 정치, 정치는 피흘리는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