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을 추억하며
" 쪽 팔려요. 프로라는 거는…. 남이 하지 못하는 걸 하는 게 정말 최고의 프로이고, 남들이 잘 때, 운동연습 하는 게 진짜 프로거든요?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된다 라는 게 진정한 프로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마음에서, 한 달에 6천만 원씩 받아가면서 이깟 마음 자세로 던진다는 게 내 자신에게 쪽 팔렸어요. " - 2006년 딴지일보와의 인터뷰 중 2004년 6월, 돌연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투수 이상훈이 밝힌 은퇴의 변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창피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공을 던지는 것은 남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상훈은 보장된 연봉 6억원을 포기하고 그렇게 훌쩍 야구판을 떠나갔다.
'14타자 연속 탈삼진' 괴물 신인의 등장

▲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공을 던진 '야생마'이상훈
1992년 봄 고려대학교 좌완투수 한 명이 9시 뉴스에 소개되었다. 프로야구 선수도 아닌 대학야구선수가 정규 뉴스에 등장하는 것은 야구 붐이 일었던 당시에도 꽤 이례적인 일이였다.
투수의 이름은 이상훈. 춘계리그에서 성균관대를 상대로 14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어 낸 이상훈은 그렇게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50㎞를 던지는 강속구 좌완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서울고 출신인 이상훈의 연고권을 보유하고 있던 LG 트윈스와 OB 베어스의 스카우터들에게 지상과제가 떨어졌다. 그러나 당시 서울지역 두 팀의 1차 지명 우선권은 주사위를 던져 결정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사위라는 것이 연습을 한다고 잘 던져질 리가 만무하겠지만 두 팀의 스카우트 관계자들이 별도로 주사위를 던지는 연습을 했을 정도로 이상훈 쟁탈전은 뜨거웠다. 수학적 확률보다는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속담에 승부수를 건 것은 스카우터들만이 아니었다. 당시 LG의 강정환 사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설악산 산사로 올라가 기왓장을 시주하고 치성을 드리곤 했는데 기왓장에 써놓은 글귀가 'LG의 이상훈'이었을 정도였다.
피 말리는 주사위 승부 끝에 우선지명권을 따낸 팀은 LG 트윈스였다. 그해 가을 이상훈은 2억원(계약금 1억8800만원)을 받고 프로에 입성을 하게 된다. 선동열과 박동희, 정민태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금액이었다.
야구단을 무단이탈하고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한 품삯을 모아 어머님께 갖다 드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지독히도 가난하게 야구를 했던 이상훈이 처음으로 돈 걱정 없이 야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발 20승을 따낸 마지막 투수 이상훈
데뷔 첫해인 1993년, 9승 9패(평균자책점 3.76)를 거둔 이상훈은 2년차인 1994년 18승을 따내며 일약 팀의 에이스로 급성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맞이한 1995년, 이상훈은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95년 이상훈은 30경기에 등판을 해 20승 5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하며 다승 1위, 평균자책점 2위, 승률 1위에 올랐다. 그해 228 2/3이닝(1위)을 던진 이상훈은 12번의 완투(2위)와 3번의 완봉(2위)을 기록했으며, 안타 150개, 볼넷 48개, 사구 3개를 허용하며 피안타율 0.219,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0.8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일궈냈다.
아직까지 이상훈은 선발로만 20승을 따낸 프로야구 마지막 투수로 남아있다. 20승 투수가 다시 등장한 것도 90년 선동열 이후 처음이었다. 1995년 이상훈은 LG의 에이스를 넘어 프로야구 에이스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95년 무리한 투구를 한 이상훈은 습관성 어깨탈구와 손가락 혈행장애라는 고질적 질환으로 인해 1996년 거의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재활로 시즌을 보내게 된다. 1년을 건너뛰고 다시 돌아온 1997년, 이상훈은 마무리 투수로 변신을 했다.
나오는 시기만 바뀌었을 뿐 이상훈의 위력은 1995년 20승 투수의 위력 그대로였다. 이상훈은 그해 57경기에 등판해 10승 6패 37세이브, 평균자책점 2.11을 기록하며 구원부문 1위에 올랐다.
이상훈이 기록한 47세이브포인트는 당시 프로야구 신기록이었다. 85 3/2이닝을 던지며 103개의 탈삼진을 뽑아냈을 정도로 구위 또한 위력적이었다. 최고의 선발 투수 이상훈은 다시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프로야구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일본과 미국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선발로 20승, 마무리로 47세이브 포인트를 기록한 이상훈은 1997년 시즌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300만 달러의 계약이 성사를 앞두고 틀어지게 되자 이상훈은 트라이 아웃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상훈이 제시받은 금액은 보스턴에 제시한 300만 달러의 10분의 1에 불과한 30만 달러였다.
단지 돈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상훈은 " 25만 달러에 계약해 달라. LG가 20만 달러를 가져가라 난 5만 달러만 받겠다 " 라며 의지를 나타냈지만 LG는 이상훈을 30만 달러만 받고 넘길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상훈은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을 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뒤로 미뤄야 했다.
일본 프로야구 2년째인 1999년 이상훈은 선동렬과 함께 주니치가 센트럴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성공적으로 일본 프로야구에 적응을 한 이상훈은 주니치와의 2년 계약이 끝나자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을 한다.
재계약을 원했던 주니치는 " 꿈만 생각하지 말고 현실도 생각해 보라 " 며 만류를 했지만 이상훈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00년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을 한 이상훈은 주로 마이너리그 트리틀A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뛰었다. 이상훈은 이적 첫해 포터킷에서 5승2패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했으며 메이저리그 9경기에서 승패 없이 3.09의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후 중간계투로 나와서 일정한 역할을 해주긴 했지만 보스턴이나 팬들이 결코 만족할 수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상훈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서 간 것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어쩌면 실패란 것은 이상훈에게 애당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실패라고 믿는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보스턴에서 방출당한 이상훈은 오클랜드 산하 트리플A 팀인 새크라멘토 리버캐츠에 입단을 했으나 시즌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생활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한국 프로야구 LG 트윈스로 돌아왔다.
이상훈은 2002년 7승 2패 18세이브(평균자책점 1.68), 2003년 4승 4패 30세이브(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하며 LG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을 했으며, 2004년 LG에 몰아닥친 팀 개선 작업의 날카로운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SK 와이번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그해 6월, 스스로 자신에게 창피하다며 은퇴를 선언하고 마운드를 떠나갔다. " LG에서 트레이드되던 날, 그날 야구를 그만두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 는 말을 남긴 채….
야생마 이상훈, 그의 길을 걸어가다
이상훈은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선수였다. 자신이 던지고 싶지 않다고 은퇴를 해버렸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다. 뛸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면 팬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하는 것이 '프로의 정신'이라고 한다면 이상훈은 프로의 자격이 없는 선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이상훈을 야생마라고 불렀을 것이다. 매력적인 갈기를 휘날리고 달려가지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그렇게 마운드를 떠난 지 2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8월 15일, 이상훈은 잠실 야구장에 다시 섰다. 그러나 이상훈이 오른 건 마운드가 아니라 응원석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글러브가 아니라 기타가 들려있었다.
가수 이상훈의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어느 해 봄, 바로 이곳에서 힘차게 강속구를 던지던 신인투수 이상훈을 마운드로 불러내고 있었다. 짧았지만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추억을 던진 '야생마' 이상훈은 또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어쩌면 모든 걸 다 버렸다. 알고 있다.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이런 소리는 여기 올 때부터 많이 들었다. 미쳤단 소리까지….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게 되어있다. 난 그저 내 손으로 나의 배를 노를 저어서 가고 싶을 뿐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언젠가는 폭풍을 만나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힘이 든다는 이유로 육지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다. "
- 보스턴에서 방출되던 날 이상훈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