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사]<신천지 추수밭>(추수밭)박해속에 뿌려진 복음, 초대교회사란?
[초대교회사]<신천지 추수밭>(추수밭)박해속에 뿌려진 복음, 초대교회사란?
신천지추수밭,신천지추수꾼
초대교회사의 연대 구분은 외형적인 기간을 중심으로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시점으로 AD 476년 서로마의 멸망까지이며, 내면적인 교회 역사 중심으로 할 때는 590년 그레고리 1세가 교황으로 즉위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초대교회사 시기는 로마제국의 박해 아래 기독교가 필사적인 투쟁을 하며 발전했던 때이다.
▶ 64년 로마대화재
처음 30년 동안 로마당국은 기독교를 당시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았던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흥종교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 기독교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로마당국을 부추겨 기독교를 박해하게 하려고 애썼다. 또한 기독교는 다신교를 받아들였던 로마의 종교적 관습과 정면으로 배치, 결국 로마가 기독교를 향해 박해의 포문을 열도록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노동자들이 살고 있던 로마의 한 주거지역에서 대화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네로황제는 이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에게 돌리며 많은 기독교인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게 된다.
로마의 제1차 박해는 화재직후부터 시작해 네로가 사망했던 68년까지 진행됐다.
네로황제 사망 후에도 박해는 250년간 지속되었으며, 2세기경 기독교 저술가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순교의 피가 곧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게시우스 플로루스가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를 다스리는 동안 유대인들의 종교를 존중해주지 않은 그는 세금 수입이 부족할 때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은을 빼앗았다.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항심이 커지자 66년에 예루살렘에 군대를 보내어 주민들을 학살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한 예루살렘 성전 공격이 계속 되었고 유대인들은 낮에는 온종일 로마 군대의 공격을 방어했고, 밤에는 무너진 성벽을 보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성전은 불에 타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유대인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유대인들은 학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갔다. 헤롯 성전의 파괴는 유대인의 예배의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을 회당예배에 더욱더 의존하게 만들었다.
유대 민족과 성전은 솔로몬 이후 다시 한 번 파괴당했던 것이다.
▶ 2세기 기독교 변증가 시대
당대의 이단들과 정부지도자들 및 지식인들에게 기독교는 이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윤리적이며, 어떤 철학보다도 가장 훌륭하고 진정한 철학임을 변호하면서 기독교를 수호하려는 저술가들을 변증가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대인과 이교도들을 동시에 공격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저스틴 마터는 이 시대의 뛰어난 변증가로 그는 기독교가 구약성경의 구체적인 실현이라고 주장했다.
변증가들은 성육신과 부활신앙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조직적으로 제시하여 이를 후대 교부들이 기독교의 핵심진리로 체계화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313년 밀라노 칙령
312년 ‘이교적 마술을 의지’하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로마의 권자에서 축출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행진하던 콘스탄틴이 전투 하루 전 대낮에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에서 승리의 십자가 표시를 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 이 표지로 정복하라’는 말이 쓰인 것을 보았고 전투에서 이긴 그는 태양신의 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관용의 칙령’으로 특징되는 ‘밀라노 칙령’이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 사이에서 정치조약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동방교회는 313년 6월 리키니우스에 의해 선포된 이 포고령에서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고 그리스도교도에게 법적 권리(교회를 조직할 권리도 포함)를 보장해주며, 몰수한 재산을 그리스도교도에게 신속히 돌려주도록 지시했다. 이전에 내렸던 여러 칙령들은 그것을 선포했던 역대 정권들만큼 단명했으나, 이 밀라노 칙령은 종교관용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4세기 초,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아리우스라는 이름의 한 성직자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일 수 있다는 사상을 내놓았다. 아리우스는 자신의 저서 ‘연서(thalia)'에서 예수는 신성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불멸의 존재이며, 성자는 창조된 존재라고 말했고 이 주장은 이교에서 개종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리우스의 사상을 논박할 근거를 찾으려고 했고 알렉산더는 아리우스 사상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회의에서 아리우스를 단죄했고 이 둘을 놓고 소요가 발생, 성직자들로 서로 양편으로 갈라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문제를 단순한 종교적 문제로 간주할 수 없다며,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거국적인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종교회의는 아리우스를 탄핵하고 그의 견해를 단죄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주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신조를 만들었다.
▶ 529년 수도원제도의 창시자 베네딕투스
기독교가 공인되자 참 신앙을 소유한 이들과 단지 공인된 종교의 신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진지한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은둔생활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고자 했고, 수도원 공동체를 시작했다. 유럽의 수도원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로 경건한 영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라고 규정했으며, 베네딕트 수도원은 사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고결한 영적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 590년 그레고리우스 1세
그레고리우스 1세는 교황권을 가장 크게 강화했던 인물로 고위직을 넘보지 않았던 겸손한 수도자였으며,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할 수 없이 교황이 된 사람이었다.
정치적 야욕이 없던 그의 관심은 영적인 데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목회적 관심이 컸던 그는 동료 성직자들에게 그들이 양떼를 섬기는 종이자 목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회 규율(Pastoral Rule)’이란 저서에서 신자들의 영적 문제를 소상히 밝히는 한편 그런 문제를 다루는 목회적 방법을 제시, 뛰어난 통찰력이 담긴 이 책은 중세 시대의 목회교본이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그레고리오 성가가 편찬되었으며, 켄트족에게 공식 선교단을 파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 용어 알아두기 ※
【 몬타니즘 】
몬타누스에게서 출발한 운동으로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초반에 프리지아에서 융성했던 이단적 기독교 운동이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은 계시와 예언을 강조했기 때문에 계시록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겼으며, 계시록이 교회의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일조했다.
몬타니즘은 당시 진원지에서는 이단적인 사상으로 정죄되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정통적이고 순수한 성령운동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 말시온 】
세르돈의 영향을 받아 율법과 선지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봄. 반유대적인 기독교 사상을 가르치기 시작. 말시온 신학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고 또한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점.
사도바울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 반면, 말시온은 율법은 이미 폐지되었으며, 복음은 일체 율법에 대한 언급 없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해석을 내림.
【 영지주의 】
그들만의 그리스도와 구원에 관한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자신들만이 악의 기원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것처럼 과장함. 교리나 가르침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와 유사한 점이 많았으나 계시관, 신론과 구원론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임. 이들은 성경 외에 특별계시가 있다고 믿으며, 성육신을 부인하고 영혼만의 구원을 말함. 아돌프 하르낙(Adolf Harnack)의 교리사에 의하면 영지주의는 기독교와 헬라 철학을 혼합시킨 종교적 잡록집(Potpourri).
【 신조, 신경(Creed) 】
신앙개조(信仰箇條)의 준말로 교의(敎義) ·교헌(敎憲) ·교규(敎規) ·교범(敎範) 등의 말로 표시되는 모든 종교의 교리의 요체(要諦)를 가리킨다. ‘나는 믿습니다’를 뜻하는 라틴어 크레도(credo)에서 유래된 말로 이단들이 발호하면서 신앙을 구체적인 고백 형태로 표현하기를 원한 교회에 의해 생겨났다. 성서가 제1차적인 신앙규준인 데 비하여 신조는 제2차적인 규준이 된다. 신조를 뜻하는 말에는 크리드(creed)와 심벌(symbol)의 두 가지가 있다. 크리드는 가장 오랜, 또 현대교회의 공통적 신조인 사도신경(使徒信經) 첫머리에 나오는 라틴어 크레도(credo:우리는 믿는다)에서 나온 말이며, 심벌은 ‘결합시키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전화(轉化)한 말이다.
【 70인역(the Septuagint) 】
구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기원전 250∼2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완성됐다.이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의 수가 늘어나고 전통적인 히브리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당시의 일반적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구약성서’를 번역한 것이다. 72명의 학자가 번역에 참가했다는 전설에 따라 이 이름이 붙었으나, 대부분은 소수집단에 의해 번역되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요구로 먼저 ‘율법’이 BC3세기 중엽에 번역되고 그 뒤 100년 사이에 현행 정전(正典)의 대부분이 번역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