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를 으깨 끄집어내는 경우도 ....
하지만 그 순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끄집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게 사실이다.
막상 끄집어낸 태아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물질이 들어오면 살기 위해 자궁 안을 필사적으로 헤집고 다니기 때문에 여기 저기 충격이 가해져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특히 다리 부분은 시커멓게 죽어있다.
그런 태아들을 보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측은함이나 생명의 존엄성 따위보다는 몹시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병원 분만실에는 미혼에다 나이 어린 간호사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사(死)태아 처리를 모든 꺼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애들을 다그치기 보다 차라리 내가 처리 하는게 낫지 하는 생각으로 끝까지 일 처리를 담당했다.
그렇게 꺼낸 태아들은 바로 한지에 싸서 냉동창고에 넣어두면 死태아 처리를 하는 인부들이 와서 거두어 간다.
골프백과 함께 딸려 나온 태아는 대부분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쉽지만 손가락으로 끄집어내면 태아가 가끔 살아 있는 경우도 있다.
곧 죽을 것이 뻔한 그 태아들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잠시 숨을 쉰다.
그러나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한 채 곧 숨이 끊어지고 死태아 처리반으로 직행하게 된다.
골프 백으로도 처리가 안되고 손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발이 아니라 머리 쪽이 자궁을 향하고 있으면 잡아당기기가 힘들기 때문에 링펄셉을 이용해 끄집어 내야한다.
하지만 그것도 안되면 자궁 안에서 분쇄를 해야 한다.
특히 머리를 분쇄하여 흡입기로 빨아 당긴다.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아이를 끄집어 내놓고 보면 그 참혹함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나는 그런 수술이 있는 날 밤이면 꼭 기분 나쁜 꿈을 꾸곤 했다.
크고 검은 드럼통 옆에 서서 끝없이 아이들을 그 속으로 던지는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다가 벌떡 일어나 한 밤중에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분만실에 근무하는 조산사인 이상 그런 일을 피해 갈 수는 없는지라 나는 대부분 무감각하게 그 일을 하려고 애썼다.
좀 더 신속히, 좀 더 깨끗이 일 처리를 하는 것으로 나를 달랬다.
그리고 남을 대신해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6개월 이상 되어 유도 분만을 하는 경우 분만 때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제왕절개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20대 후반인 임신 8개월의 이혼녀는 이제 아이가 필요 없게 되었으니 낙태를 해달라고 망설임 없이 얘기했다.
그러면서 고통을 느끼기 싫으니 아예 제왕절개로 해달라는 것이다.
8개월인 경우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가 살아 있을 확률이 대부분이므로 마취를 심하게 하여 아이를 죽게 한 후 수술한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되는 아이들 ....
개인병원에 있을 때는 보통 이틀에 한 번은 이런 수술을 했다.
내가 5년 5개월 동안 산부인과에 근무하면서 평균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유도분만을 통한 낙태아 처리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아이가 무참하게 죽어 가는 일에 힘을 보탰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천벌을 받을찌도 모르겠다...
어느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다...
내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업자득이란 말을 믿는 나로썬 그들의 악행이
어떤 식으로 그들에 돌아가는지 궁금해진다..
단지 힘없이 죽은자만 불쌍하다 한다면...
이 세상 참... 부조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