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당신의 십자가 외에는 내가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으로써
나로 하여금
헛된 것을 바라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 머무르시는 동안
당신께서는 세상살이의 헛됨을 소멸시키셨고
죽었다가 다시 사심으로써 나에게 모든 영원한 것을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가난하셨는데 내가 어찌 부자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거짓 예언자를 높이고 참 예언자를 돌로 쳐 죽인 자들의 후손들이
당신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내가 어찌 사람들 눈에
유명하고 권세있는 자 되기를
애써 바라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겠다는 희망을,
그 희망이 결국은 절망을 가져다 줄 뿐인데,
내가 어찌 그런 희망을 가슴 속에
품어 기르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눈에 보이는 보상을 믿지 않게 하소서.
나의 희망은 사람의 가슴으로 느낄 수 없는 것에 있습니다 .
그러하오니,
내 가슴의 느낌을 믿지 않게 하소서.
나의 희망은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에 있습니다.
내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믿지 않게 하소서.
죽음이 나로 하여금 잡은 것을 놓게 하고,
그리하여 나의헛된 희망은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자비를 믿되 나 자신을 믿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을 믿되
건강이나 힘이나 재능이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들을 믿지 않게 하소서.
만일 내가 당신을 맏으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힘이 되고 건강이 되고
나를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나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을 믿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나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 토머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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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이 불쌍한 바보야, 모든 건 네 안에 있는데…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토머스 머튼 지음|오지영 옮김|바오로딸|545쪽|1만3000원청빈 · 정결 · 순명(順命) · 정주(定住) · 행동양식의 변화 등 다섯 가지를 서원하고 자신을 하느님에게 온전히 바친 가톨릭 수도자의 자기 성찰과 내적 변화를 진솔하게 담은 일기가 번역 출간됐다. 평화방송 · 평화신문 사장 오지영 신부가 번역한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다.
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머튼은 20세기의 대표적 영성가로 손꼽히는 트라피스트회 수도자.컬럼비아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26세에 켄터키주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대표작 《칠층산》 《가장 완전한 기도》 등 70여권의 책을 출간해 종교의 벽을 넘어 영성가로 존경받았다.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영적 일기》는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 지 5년이 되는 1946년부터 5년간의 삶과 영적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것.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기도와 묵상의 시간에 매 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며 그때마다 함께 하는 하느님을 발견한다. 햇볕이 따뜻한 날 풀밭에서 노니는 양들을 보며 '내 양들을 돌보라'는 말씀을 떠올리고,개인적 시간이 거의 없는 수도원 생활의 현실을 불평하기보다 그 시간마저 하느님과 함께 하도록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948년 10월 수도원장의 지시로 출간한 《칠층산》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뜻밖에 직면한 커다란 변화도 그에겐 영적 성장의 계기였다. 그는 "하느님이 섭리하시는 계획에는 패배같은 것은 없으며 단계마다 광야로 들어가는 길이어야 하고 명성마저도 겸손을 살찌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고 적고 있다.
《칠층산》은 머튼이 영적 체험을 겪고 수도회에 입회하기까지의 정신적 여정(旅程)을 유려한 문장에 담은 자서전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출판사 측은 1976년 정진석 추기경이 번역한 책을 원서 개정판을 토대로 새로 다듬어 함께 내놓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