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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비교사입니다 - 자살한 교육학과 학우를 추모하며

전태욱 |2009.04.28 01:42
조회 246 |추천 0


며칠 전에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에 다니는 한 학우가 죽었습니다. 안 그래도 등록금 때문에 자살한 어느 대학생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한 마당에, 우리 학교에서도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학우가 속해 있던 교육학과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범대 전체가 그 학우가 죽은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몇몇 학우들은 극심한 자괴감과 분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학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천재지변도 아니었고 교통사고도 아니었습니다. 학점과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 사람 잡는 사회, 예비교사 잡는 교원양성체제

 


학점과 임용고시 준비가 꿈나무 한 그루를 그렇게 무참히 꺾어버릴 정도로 사범대 학우들을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그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러분들에게 더 놀라온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학우는 몇 번이고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고시생도 아니었고, 임용고시를 본격으로 준비해야 할 4학년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갓 2학년이 된 2008학번이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온 지 겨우 1년이 지났고 대학 생활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아갈 꿈 많은 스물한 살 아이(!)일 뿐이란 말입니다.


벚꽃이 피어오르는 교정을 바라보면서 나중에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만날 생각을 하면서 희망에 부풀어 있어야 할 사범대 학우가, 모진 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학우는 왜 그렇게 일찍부터 학점과 임용고시 준비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 학우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살리는 세상이 아닌 사람 잡는 세상이 된 지 꽤 오래 된 것 같습니다. 틈만 나면 신세를 비관하고 자기를 나락으로 철저하게 몰아넣는 세상을 원망하며 자살하는 이들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주위에서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쳐 죽어가는 이들을 단 몇 줄로 처리해 버리는 언론 기사와 그 기사를 읽고도 둔감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을 봅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게 넌덜머리가 납니다만, 그래도 그 괴물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미 김영삼 정권 때부터 '세계화'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들이닥친 신자유주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예전보다도 훨씬 더 메마른 피도 눈물도 없는 사막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좌파 신자유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등장한 '순수 신자유주의자' 이명박을 대통령에 앉히는 바람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교과서답게 이야기하자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 모든 분야가 썩어 들어가도록 만들고 있다 이겁니다.


특히 '백년지대계'라고 할 정도로 한 나라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인 교육을, 이명박 정부는 바로잡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악독한 정책을 시도때도 없이 내놓아 교육을 파탄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굳이 사례를 들자면 그 유명한 '어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가 외국인들에게는 '어륀지'나 '오렌지'나 똑같다고 원어민이 직접 밝혀 큰 망신을 당한 영어몰입교육 정책이나, 가장 최근 사례를 예로 들자면 교사인턴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 파탄에 이른다면, 아무리 나라가 부강하더라도 결국은 속이 모두 썩어 들어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2. 대한민국에서 예비교사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

 


교육 담당자들 가운데 최전선에 선 이들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교사입니다. 이번에 그 학우가 자살한 사건을 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앞에서 이야기한 교사들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에 따라 교육계 전체도 얼마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지 지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특별히 많이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범대학에서 학우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요즘 새로 임용되어 현장에 배치되는 교사들은, 예비교사일 때부터 척박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숱한 좌절을 맛봅니다.


멋진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사범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저 좋기만 하던 동기들이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경쟁자들임을 어렵지 않게 인식합니다, 선배들이 내쉬는 한숨을 지켜보면서 위기감은 더욱 빠르게 싹틉니다. 그렇기에 ‘학문과 진리의 상아탑’에 올라온 대학생으로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학점 관리와 임용고시 준비만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다 같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열심히 해서 임용고시에만 합격하면 그만입니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에 무엇을 할지조차도 생각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사범대생이라면 누구나 다 같이 할 수 있는 모임이 있기는 있습니다. 바로 임용고시 준비 모임입니다. 공부 같이 하자는 제안은 넘쳐나지만, 그것은 돈으로 맺어지는 계약과 마찬가지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정말 어려울 때도 같이 행동하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제안은 절대 아닙니다. 설사 다 같이 교사가 되어 보자면서 함께 공부하고 고생해 봤자 별다를 것 없습니다. 합격했느냐 못 했느냐에 따라 공중 분해되고 그 안에서 함께 고생했던 사람 대 사람 사이 인간관계도 대개 서먹해지고 끝이 나 버립니다.


그렇게 피 터지게 공부해서 임용고시에 합격한 초임 교사들은, 임용고시 준비에만 몰두한 나머지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초 교양은 둘째로 치더라도,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 안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며 예비교사로서 지니고 있는 책무가 얼마나 막중한지마저도 깨닫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합격해 놓고 보니까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자기 교과 연구와는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고, 자기 적성에도 그다지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이 처한 현실 자체가 얼마나 암담한지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되었다고 한들, 자기에게 맞지 않으므로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나는 것이 첫 번째요, 갈수록 열악해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자 그에 걸맞게 독해지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교단에 선 뒤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근무 평정을 잘 받아야 하고 교원평가제에서 실적이 좋아야 하므로, 고등학교 3학년생과 임용 고시생 때와 마찬가지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교육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고 교원평가제가 도입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교사들이 열심히 경쟁하고 실력을 쌓아야 할 필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인터넷 토론방에서 매우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야 했습니다. 항상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를 욕하는 사람들이 비난할 때 쓰는 논리는 한 결 같았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거부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세계화'라는 대세를 거부하면서 철밥통(!)을 사수하려는 역겨운 작태를 그만두라고 소리칩니다. 학원 강사들보다 공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들이 더 잘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비난합니다.


사회 현상을 둘러싼 모든 토론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특정한 양상 가운데 가장 뚜렷한 한 가지는, 어떤 현상에 관한 개념마저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 제멋대로 자리 잡은 상식(?)과 편견에 따라 일관성과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논리를 마구 밀어붙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좀 더 오래 살고 경험을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깨달을 수 있게 되는 상식이며 지혜'라고 일갈하는 이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 희한한 주장에 일일이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이번 사건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화 덕분에 그럴 만한 힘이 생겼으니, 그동안 제가 생각해 오던 바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3. 신자유주의는 온 세상에 대재앙을 불러온 사기극이다

 


이미 몇 번이고 다른 글에서도 썼습니다만, 과연 신자유주의자들이 강변하는 '경쟁'이 과연 같은 공간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진정한 '선의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유감스럽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연 상태'에서 벌어지는 무한 경쟁이 가장 높은 효율을 낳는다고 주장하면서, 수 십 년 동안 쓸데없는 규제 철폐와 자유로운 시장 무역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밑도 끝도 없이 심각해지는 양극화, 탐욕스러운 국제 분쟁, 자본에 휩쓸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윤리 따위였습니다. 도덕성을 잃어버린 채 아무 규제 없이 폭주하는 자본을 밑도 끝도 없이 찬양한 신자유주의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명목 아래 온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저주가 걸린 고대 바빌로니아 동전처럼 같이, 규제와 차별 없는 무한 경쟁(?)으로써 시장 성공에 따른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주겠다고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는 그것을 나타내는 한 가지 상징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세계 경제 위기가 지금 세상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본질이므로, 경제 위기만 해결된다면 모든 것이 전부 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한 착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요했던 온갖 말도 안 되는 원칙과 개념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깊숙하게 파고들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면밀하게 비판하면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경제 위기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원칙과 개념들이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재앙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한, 다시 같은 재앙이 터질 확률은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온갖 것 가운데 핵심을 추려내자면, '경쟁이 효율을 낳는다', '모든 것은 상품으로 만들어 자본으로 거래할 수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명제들이 타당한 것일까요? 이 글에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논의를 다 담을 수는 없으므로, 애당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에 알맞게 교육 문제, 그 가운데에서도 ‘경쟁이 효율을 낳는다’는 명제에 관한 논의만 담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검증되어야 할 명제는 '교육에서도 경쟁이 효율을 낳는다'가 되겠습니다.

 


4. 교육에서도 경쟁이 과연 효율을 낳는가?

 


일단 '교육에서도 경쟁이 효율을 낳는다'라는 명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제가 이 글 전반에서 다루는 주제인 '교원양성체제'를 집어넣는다면 '교육에서도 경쟁을 유도하는 교원양성체제가 효율을 높이고 결국 교육 수준 전반을 높일 수 있다'라는 명제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효과(effectiveness)와 효율(efficiency)이라는 개념부터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효율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다'는 개념이며, 효과는 효율과는 다르게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 못 거두느냐', 곧 결과 그 자체에만 주목합니다. 곧 효과가 높다고 해서 효율이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음으로 흔히 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아보겠습니다. 대개 교육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가장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교육 목적은, '교육(敎育, 영어로는 education 또는 pedagogy)'이라는 단어 어원에서 드러나는 뜻입니다. 이 어원을 분석해 보면, 동양과 서양 모두 교육을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을 이끌고 가르쳐서 그 잠재력을 되도록 많이 이끌어내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재력을 이끌어 낸 사람은 자아실현이라는 사람이 지닌 욕구 가운데 가장 수준이 높은 욕구를 실현하고자 스스로 학습하는 지성인이 되고, 그 자율성을 갖춘 개성 있는 지성인들이야말로 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에서 효과를 측정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 결과라는 것이 측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교육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결과가 무엇인지야 겉으로는 반지르르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그 결과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 수치로 변환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람이 하는 모든 육체와 정신 활동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으로 나타낼 수 있는 훌륭한 지표는 개발되지도 못했습니다.


곧 교육 효과라는 게 사실은 명확하게 정의되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가장 많은 일치를 본 정의에 따르더라도 과연 그 정의가 교육 효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지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남습니다. 돈처럼 정확하게 얼마 투자해서 얼마 벌었다 이런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지니는 특징 가운데 가장 분명한 것이 '장기성'입니다. 이 특성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장 많이 얻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장기성'을 '비생산성'으로 줄곧 깎아내리는데, 이는 그들이 교육학 기본 지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으며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대중 앞에서 사기를 치거나 거창하게 보이고 싶을 때 필요한 인용구 가운데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입니다.


효과도 측정하기 이렇게 어려운데, 효율을 측정한다는 건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사실 효율을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건 거의 말도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효율을 측정하려면 어떤 효과를 거두는데 필요한 온갖 요소들과 그 요소들이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이루어지는 시간 따위를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런 것을 모두 제대로 측정할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신 활동이기 때문에,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설사 측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측정치를 둘러싸고 온갖 조건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교육 결과를 측정해서 효율을 정확하게 산출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그 결과를 함부로 해석해서 무리하게 활용하려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겁니다. 물론 어떻게든지 대략으로라도 산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출된 결과를 가지고 그 결과를 뽑아낸 대상 전체를 바라보는 척도로 삼으려는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인류 문명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이 불확실성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창한 논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사람이 고안해 낸 척도, 특히 정신 활동을 측정하는 척도는 따지고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교육에서도 이렇게 측정하기 어려운 효율을 객관 수치로 나타내 활용하겠다면서, 교육학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인 '교육행정' 하위 영역인 '조직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테일러가 주창한 '과학 관리론'에 주목합니다. 이는 그 유명한 포드주의를 낳은 이론입니다. 생산 현장에서는 효율을 높이는 데는 분명히 크게 기여했지만 인간 가치를 무시하고 사람을 일하는 기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맹렬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수많은 교육학 연구 결과가 과학 관리론을 인간을 과업 대상으로 하는 교육 현장에서는 굉장히 신중하게 적용해야 하는 이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사실을 무시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내놓는 결과를 토대로 효율을 객관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객관 측정 기준으로 시험 점수를 제시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쳤는데도 시험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조건 교사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그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조건 탓만 하며 철밥통을 지키려고 한다면서, 진정한 교육자라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기 개발에 앞장서라고 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기계 같은 인부들처럼 일일 작업량(?)을 정해 놓고, 모든 자원을 활용해 교원으로서 능률을 최대한 높이라고 합니다. 학생들 성적이 올라가면 성과급을 지급할 것이요, 학생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교육에 관해 어느 정도 소양이 쌓인 사람들이라면, 점수 하나로 교육이라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활동을 객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논리 기반이 취약한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교원평가제 자체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교원평가제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과 실제로 교원평가제를 밀어붙이는 정책 입안자들이 바라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는 실상을 파헤쳐 보면 전혀 다릅니다. 교사로서 적절하지 않은 무능력자들을 포함한 부적격 인원들을 솎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부적격 인원을 판별하는 기준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객관성이 있다고 강조하는 시험 성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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