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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이 9세.. 온 책방을 뒤지다

곽정민 |2009.05.06 08:32
조회 72 |추천 0


예전에는 작은 동네서점도 많았고 헌책방도 동네마다 한 두군데씩은 있었는데 요즘은 작은 서점이나 헌책방을 찾아보기가 힘들지요.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집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작은 서점이 두군데나 있었고 헌책방도 두군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작은 서점들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헌책방도 한군데는 없어진지 오래고 한군데는 그나마 겨우 간판을 달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 메이저 서점들이 들어섰기 때문이겠지요. 조금만 나가면 대형서점들을 찾을 수 있고 또 거기서는 다양한 책을 구할 수 있으니 동네서점은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닫은게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아홉살때 일 입니다. 헌책방을 그때 처음 가게 된 것이지요. 그 이유가 참 어이없고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다급하고 진지했었던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마치고 집에와서 점심을 급하게 먹은 뒤 바로 뛰쳐나가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때 컴퓨터는 매우 귀한것중에 하나였고 게임기가 있는 친구들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우리의 놀이도구는 공, 팽이, 제기, 구슬, 딱지, 비비탄총, 레고....같은 것들 이었습니다. 아마 밖에서 놀았던거 같은데 뭘하고 놀았는지는 가물가물하네요. 그렇게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와서 한쪽 구석에 던져놓은 가방을 정리했습니다.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셔서 할머니가 주로 저를 키우셨죠. 그래서 전 가방이나 준비물을 제가 혼자서 다 챙겼었습니다. 그렇게 가방을 정리하면서 오늘 숙제도 꺼내놓고 내일 가져갈 준비물과 책을 챙기는데... 아뿔싸... 다음날 있는 수업이 있는 과목의 교과서가 없어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충격이었죠. 지금이야 뭐 없으면 빌려보면 되고 못빌리면 옆에 친구랑 같이보면 되지...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일단 선생님한테 혼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부끄럽기도하고 왠지 선생님한테 미움받을것만 같았기 때문이죠. 그때 마침 생각해낸 것이 헌책방이었습니다.

다시 친구하나를 불러내서 저녁먹을때까지 헌책방을 돌아다녔습니다. 우선 집 바로 밑에 있던 헌책방을 들렀습니다. 꼬맹이 둘이서 쫄래쫄래 책방으로 들어가 교과서 있는 쪽을 열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찾을수가 없었죠. 아저씨한테 부탁을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근처에 있는 헌책방으로 갔습니다. 역시 없었습니다. 다른 교과서들은 다 있는데 유독 제가 찾는 교과서만 없더군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때 세상의 쓴맛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웃기지만 전 그때 정말 좌절이라는 걸 경험했을지도 모를일이죠. 옆동네까지 가서 찾아보았지만 아무데서도 그녀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부모님이 돌아오실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였으니까요. 부모님이 오시자마자 저는 책이 없으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때까지 쓰면서 매달렸지만 없는 책이 나올리가 있나요.. 사촌형 집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저는 학교에 갔습니다. 그때는 책을 빌려보는게 가능한지도 몰랐던 철없던 나이여서 그냥 없는체로 가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짝꿍이랑 책을 같이 봤던거 같아요. 고학년만 되더라도 책을 빌려봤겠지만 그땐 나의 책이 아니면 안된다.라는 이상한 신념 같은것도 가지고 있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루종일 그 책 때문에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그날따라 피구를 하면서도 재미가 없었어요. 그냥 멍~ 한 상태였죠. 저학년이라서 오전수업으로 학교를 마치기에 집으로 돌아와 그냥 멍하니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 아버지께서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오시더군요. 바로 그 교과서 였습니다. 새책이 아닌 걸로 보아서 다른 헌책방에서 구한신듯 했습니다. 지금은 교과서들이 컬러풀하고 종이도 아주 부드럽고 반반한 종이더군요. 그때는 컬러가 들어있기는 했지만 몇장없었고 종이도 그리 좋은게 아니라서 몇년만 지나도 누렇게 떠버렸죠. 그 책도 그랬습니다. 약간은 누렇게 떠버린 교과서.. 하지만 전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날따라 아버지가 더욱 멋있어 보이더군요. 그렇게 저는 그 책으로 1년을 버텨내었습니다.


아마도 그 책은 보수동에서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생각해내기 위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지만 아버지는 생각이 안난다고 하시는군요. 제가 생각하기론 그때 아버지께서 엄청나게 생색내셨는데 말이죠. 뽀뽀를 한 열번은 넘게 한 것 같은데... 어쨋든 아버지 고향이 영도이십니다. 보수동이 남포동 바로 옆에 있으니 영도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요. 아마도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나이와 아버지의 연세는 비슷하지 싶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선물을 자주 사오셨습니다. 바로 책이지요. 생일선물은 책이 아닐때도 많았지만 그냥 아무날도 아니지만 아버지는 책을 많이 사다주셨습니다. 제가 열심히 읽어나가는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생각나네요.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책을 많이 권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읽고나서 괜찮다 싶은건 저에게 주시면서 말입니다. 이제는 제가 아버지께 책을 추천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우리 부자는 책으로도 아주 끈끈한 정을 만든 것 같네요. 요즘 서점에 가면 낚시잡지를 꼭 산답니다. 아버지께서 낚시광이시거든요.

어렸을때는 보수동이 멀어서 갈 수 없었지만 중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부터는 문제집이나 참고서같은걸 많이 사러갔습니다. 어머니한테서는 새책값을 받아서 보수동에가서 헌책을 사는 것이었죠. 그렇게 남은돈은 남포동에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것도 사먹었습니다. 워낙 집에서는 공부에 신경을 안쓰는 가정이라 그렇게 해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 그래서 더 좋았던거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집에서 책보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듣는데 저는 그렇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책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어요. 중학교때부터 1년에 서너번씩은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들른답니다. 일부러 가진 않지만 남포동이 부산에서도 꽤나 중심가에 속하기 때문에 아무리 안가도 1년에 서너번은 가게 되지요. 그때마다 조금 일찍 나가 보수동을 한바퀴 돌다보면 제 손에는 항상 몇권의 책이 쥐어져 있지요. 그중 한권 정도는 친구에게 권하기도 합니다. 일부러 다른 친구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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