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부산편 밖에 없지만 언젠간 전국을 돌고 말테다.
여행. 단 두글자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설레게 만드는 단어도 많지 않을것이다.
사랑, 우정, 새해, 명절, 소풍, 합격, 당첨... 그리고 여행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저런 단어들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사전적 의미외 필자가 생각하는 여행은 이렇다.
여행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행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탈의 행위를 함으로써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때 좀더 힘찬 생활을 하게 해주는 힘이 만들어 진다.
책을 읽는 것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책에 취미를 붙인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년전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보면서 부터니까 말이다.
책을 읽는 그 순간 부터는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된다. 책을 잡으면 난 책속의 또 다른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나는 주인공들의 행동과 감정변화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 된다.
그것은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그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될때도 있으며, 이웃사촌이나 친척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소설속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난 누구라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곳은 내가 살던 고향이고, 나의 안식처인 집이고, 나의 문화생활 공간 그 자체가 된다.
여행을 갈때는 일상의 "나"의 모습을 철저히 배제할수록 그 여행은 흥미진진해 진다.
여행 역시 그 순간에는 "나"는 내가 아닌게 되는 것이다. 평소의 "나"를 가지고 떠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여행을 가서 직장일을 걱정하고, 나라경제사정을 걱정하고, 여행 후의 일상에 대해 걱정한다면
여행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시간만 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도 만들어진 것이 없다.
우리는 그 곳에서 마음가는대로 나를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가 내가 아닌게 되는것. 여행과 소설의 같은점이자 장점일것이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세상에 어떤일이라고 장점만 가진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 두가지를 잘 조율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을뿐이다.
언제나 떠나고 싶을때 떠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도 참 좋겠지만 평범한 우리들이 그런 여유를 부리며 살기란 쉽지않다.
그렇기에 한번 갈때 계획도 세우고 준비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또 여행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먼곳에 있는 유명 관광지를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주위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하루정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매일 같은 길을 지나치지만 오늘은 그 길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 길로 통하는 또 하나의 길을 발견했다.
바로 소설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장소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이다. 멀리 가는 것도 좋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근현대사에서 부산의 위치는 서울 못지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6.25가 터지자마자 3일만에 서울이 함락당하고 부산까지 밀려왔을때가 있다.
그 후 1.4후퇴가 있었다. 유엔군의 힘을 입고 압록강까지 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부산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피난 문인들로는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 김동리등을 들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지역의 명칭이 매우 정확하기로 알려져있는 황순원님의 작품 [곡예사]를,
또 하나는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천운영님의 [눈보라콘]을 선택했다.
이 두작품의 공통점은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부산, 그 중에서도 언덕배기 산자락 아래에 펼쳐진 부민동과 그 아래에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
거기서 또 영도다리를 건너 남항, 신선동, 봉래산까지 이어진다.

1952년 문예지에 실린 [곡예사]의 주인공 황순원은 서울에서 대구로 다시 부산으로 피난을 온 한 가정의 가장이다.
(소설속의 이야기는 실제 그의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다. 주인공의 이름도 황순원으로 자기와 동일시 한다.)
그렇게 피난을 오면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몸을 뉘일 수 있는 거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초반부터 그의 가족은 신세를 지는 처지로 나온다. 그 신세를 지는 곳이 바로 부민동일대이다.
지금도 그 명칭이 변하지 않아 부민동이 그대로 남아있다.
부민동에서 머지 않은 곳에 보수동이 있다. 이곳은 실제 그가 교직에 있었던 서울고등학교가 1.4후퇴때 옮겨왔던 장소이다.
소설속 황순원도 바로 이 보수동에 있는 임시교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내는 국제시장에서 옷장사를, 두 아들은 서면일대에서 미군물품을 팔아 생활을 하지만 그것이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황순원은 남포동의 부모님집으로, 두 아들은 친척이 있는 곳으로, 딸 둘과 아내는 그대로 부민동에 남게된다.
결국 그 마저도 내쫓기게 되는 바람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러는 와중에 황순원이 신세한탄을 하는 곳이 바로 자갈치가 보이는 목로주점이다.
아직도 자갈치 시장앞에 가면 시시때때로 배가 드나들며 상인들에게 갓잡아 올린 생선을 판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들은 남포동에서 함께 모여 다시 부민동 집으로 향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고 딸들은 춤을 추고 하는 모습을 보며 황순원은 꼭 황순원가족부대의 곡예단을 보는 것 같다며
단장인 척 이야기 해보지만 부민동 주인집 앞에 이르러서 노래는 끊어지고 소설도 끝이난다.
전쟁중 피난살이를 다룬 이 소설에는 전쟁으로 인한 슬픔과 격렬한 갈등같은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소소한 가족의 삶을 부드러운 문체로 그려나갔다는 점에서 전후소설 중에서는 특이한 편에 속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곡예사]는 한없이 힘들면서도 티내지 않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가장의 괴로움과 궁핍속에서도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는
천진함이 공존한다.
- 황순원님이 살았던 부민동일대

우선 지하철을 내려 소설속 인물들이 생활했던 곳을 찾았다.
1번은 소설속 가족들이 남포동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경남중학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42년도에 학교를 열었으니 소설보다도 10여년이 빠른셈이다. 2번이 예전의 부민동을 오르던 길이다.
소설상에 부민동에 개천가와 부성교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어디서도 그 자료는 얻을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소설상의 허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지명과 지역,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실제와 비슷한것을 생각하면
없는것이 좀 이상하지만 말이다.
- 부산의 문학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다음 코스는 바로 보수동. 보수공원에 있었던 서울고등학교 임시교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미리 사전조사도 했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자료를 찾지 못했다. 보수동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있다.
바로 헌책방 골목이다. 부산문화의 산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있은 후 많은 피난민이 부산에 오게되었고 실제로 많은 학교의 임시교사가 바로 보수동 뒤편에 있는 구덕산자락에
있었다고 한다. 그 곳을 통과하려면 지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보수동인것이다.
처음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나 각종 서적들을 박스하나 깔아놓고 장사하던 것이 지금에는 부산의 명물이 된것이다.
보수동에서 못찾는 책은 전국어딜가나 찾기 힘들정도로 책의 양이많다. 겉만보고 책방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수 없을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다.
아예 건물 자체가 책이 아닐까 라는 착각이 들게된다. 약 60여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는데 만화책부터 각종 외국잡지,
초판본이나 고서등을 취급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칠수는 없었다. 한 서점에 들어가 창고까지 안내받았다.
찾고자 한것은 창작과비평이라는 문학잡지였다. 1년에 4번 출판되는 이 잡지는 66년에 창간된 아주 오래되고 유명한
문예지이다. 이곳 사장님께서 안내를 해주시며 70년대 출판된 '창비'도 있다고 하며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고는
다시 옆건물에 있는 본 건물로 가는 것이었다. 그순간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럴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나오는 길에 공지영님의 소설과 신경림님의 시가 있는 97년 봄을 선택했다.
- 국제시장의 과거와 현재

좌측에 보이는 곳이 국제시장이다. 50년 6.25가 일어나기 직전인 5월에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국제시장은 6.25를 다룬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명이다. 재래시장이었지만 지금의 국제시장은 좀 다르다
천장에 아케이드가 쳐져 있는 곳은 아주 깔끔하고 소방시설 같은 것도 아주 잘되어 있다.
국제시장에 도착한때가 아직 정오를 넘긴 시각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산했다. 주말에 오게되면
붐비는 사람들로 시장 한가운데 있으면 끝까지 나오는데도 한참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이 곳에서 황순원의 아내는 옷을 만들어 팔았던 것이다.
우측에 보이는 모습이 바로 50년대초 국제시장의 모습이다. 뒤에 보이는 판자촌이 인상적이다.
가운데는 남포동에 있었던 동아극장의 전신인 소화관의 모습이다. 지금 실제 건물은 없는 것 같다.
부산극장과 더불어 부산 남포동을 영화의 도시로 이끌었던 극장중에 하나이다.
황순원의 가족이 남포동을 거쳐 동아극장을 지나가는 대목이 나와서 한번 찾아보았다.
소화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이었던 부산근현대사 역사관이다.
부산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이곳 만큼 잘 정리되어 있는곳이 또 있으랴.
3층규모의 이 건물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던 시절의 자료와 각종 물건들 부터
6.25후에 피난으로 생겨난 많은 일들과 각종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전시하고 있다.
또한 1층에 도서관을 두어 관련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게 개방해 두었다.
그가 소설 속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경성대학교 조갑상 교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의 마지막 종착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기풍자와 무구함으로 밝히는 어둠의 생존공간]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그가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하며 나는 두번째 여행지로 향한다.
사실 눈보라콘에 주 무대는 지금의 영도대교 바로 건너서 있는 남항과 신선동이다.
광복동, 남포동, 자갈치는 [곡예사]의 배경과도 일치하며 그들의 주거지인 부민동과 신선동은
서민들이 지 한몸 뉘일곳 밖에 없는 판자촌을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눈보라콘]은 200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천운영의 소설로 시대는 80년대초반부터 후반까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용수가 사는 곳은 바로 봉래산 산자락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 신선동이다.
그리고 용수와 그의 친구 하봉의 작업장소는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이다..
눈보라콘은 부라보콘의 가짜제품으로 모양은 그럴싸 하지만 조금은 틀린 그런 아이스크림이다.
용수에게 있어 아이스크림은 성의 대상과도 동일시된다. 매일 부로보콘을 먹는 소녀의 모습도
여기에 겹치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후에 다시 만날때를 생각해보면 부라보콘에 대한 열망이
곧 소녀에 대한 열망이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용수와 그의 친구 하봉이 자갈치에서 놀다가 영도대교를 건너 신선동집에 오는 그 길.
그리고 비밀이 숨어있는 복천사까지 한번 돌아보았다.
-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자갈치 시장
자갈치 시장이다. 부산에서 수산물 시장중에서는 가장 크고 유명한 곳이다. 바로 배에서 잡아 올린 각종 신선한 해산물의 천국이다.
이곳에서 용수와 하봉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자갈치 아지매들이 생선 손질하는 것을 구경했을 것이다.
어딜 가나 들리는 구수한 사투리와 정겨운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곳이다.
자갈치에 왔으면 으레 생각하기 쉬운것이 해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놓아두어도 좋다. 해산물은 저녁에 먹어도 충분하다.
내가 먹은것은 선지국밥이다. 자갈치에 오면 절대 빠뜨리지 말고 가야하는 곳 중에 하나이다.
때마침 점심때라 할아버지들이 3테이블이나 점거하고 있는 손님 많은 집으로 갔다.
우리가 시킨것은 선지국과 돼지껍데기, 그리고 공기밥 2그릇이다.
아침부터 걸어온 길을 한번 점검도 해보고 찍은 사진도 한번 들여다 보면서 음식이 나오길 기렸다.
매뉴는 선지국밥과 돼지껍데기 밖에 없다. 감자탕도 있긴 하지만 주가 되는 것은 역시 선지국밥이다.
해산물을 구경하고 나오면 국밥집들이 줄을 이어 있다. 모두들 같은 메뉴를 고수하고 있어서
쉽게 어디로 들어가는게 꺼려지지만 어느 곳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란 걸 보증한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자갈치는 자주 오는 장소였다. 생선을 살때는 부모님께서 자갈치를 고수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젊은 시절 자갈치에서 생선장사를 하셨다. 강원도 출신인 할머니는 피난때 부산으로 내려와
그 이후로는 부산밖을 넘어 사신적이 없는 분이시다. 어렸을적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셨는데
하도 오랫동안 좁은 곳에 앉아서 생선을 팔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의 자갈치는 새로운 시설이 많이 들어왔고 자리도 넓어져 예전처럼 상인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진 않은거 같아서
괜시리 마음이 놓였다.
- 부산시민의 영원한 고향, 영도다리
하봉이 영도다리는 담치(홍합)가 떠 받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던 그 곳이다. 소설의 배경이 80년대임을 생각해보면 이때는 영도다리가 개폐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도의 인구증가로 차량통행이 증가한 것이 그 이유였다.
영도다리에 바로옆에는 80년에 지어진 부산대교가 있다. 현재 영도다리에는 무거운 화물차량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그 차량들은 부산대교로 우회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래도 3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다리라서 그런가보다.
3번째 사진의 영도다리 밑은 모든 부산사람들의 고향이다. 영도다리 밑이 고향이 아닌 부산사람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어렸을적 어머니께 흔히 물어보곤 하는 질문이 있다.
"엄마,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라든지 "나 어디서 태어났어?"라는 질문을 하면
항상 이런식으로 대답하셨다.
"니는 영도다리 밑에서 쭈아왔다. 말 안들으믄 다시 가따 나삔다이.."
거짓말이라는걸 알면서도 혹시 설마 진짜 내가 거기서 나온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은 이런식으로 말씀하셨다. 주위만 둘러봐도 이런말 안들은 친구들이 없으니 말이다.
모든 부산사람들의 고향이 바로 여기 영도다리인 것이다.
- 배가 다시 태어나는 곳, 남항
영도다리를 건너서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남항이다. 수많은 배들과 배에 들어가는 각종장비와 그물들이 선착장 주위로 깔려있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배부터 한창 조업을 하는 배들도 있다.
우측으로 오징어잡이 배의 모습도 보인다.
[눈보라콘]의 용수 어머니는 남항에서 배의 녹을 제거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남항 뒤편으로 돌아가면 큰 배들의 녹을 떼어나고 다시 페인트칠을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닷물의 색갈이 초록빗깔이라기 보다는 녹으로 인해 붉은색에 가깝다.
가까이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높은 담과 회사이름이 적혀있고 입구에는 어른들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셔 찍지는 못했다.
남항에서 용수와 하봉의 어머니는 녹떼는 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장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곳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딱 3명인데 바로 용수와 하봉, 그리고 점집 딸인 소녀이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가 없다. 용수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하봉의 아버지는 범죄를 저지르고 일본으로 도주,
소녀의 아버지는 감옥에 가있는 상태이다. 이 시대의 가장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러한 부분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같은 것에서도 이 시대의 남자들은 술먹고 도박하는 설정이 많았기 때문일까..
- 신선이 사는 마을, 신선동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신선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민동 못지 않은 경사와 높이에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군대에서 산악행군을 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친구는 보수동에서 책을 10권이나 사서 그 고통이 심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날 따라 날씨도 다뜻해서 잠바도 훌훌 벗어버리고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랐다.
산복도로가 있는 길보다도 더 올라가야 신선동의 끝이 나온다. 이 높은 곳에도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윗마을까지 마을버스는 다니는 듯 했다.
용수와 소녀가 매일같이 마주하던 신선동. 용수는 위에서 소녀를 바라보고 소녀는 아래에서 용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면 용수는 산과 마을의 경계인 담에 올라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는데
바로 여섯번째 사진이 그쯤되는 장소가 아닐까.
또 어느날 소녀와 처음으로 대화하는 장소가 바로 "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언덕배기에 같이 앉아서 눈보라콘인지 부라보콘인지 모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소녀의 향기와 머릿켤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느낌을 받은 사춘기의 용수는 소녀에게서 어머니의 느낌을 받게 된다.
둘은 손을 꼭잡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며 별을 헤아리기도 한다.
신선동과 봉래산을 경계짓는 담. 그 곳에서는 남포동과 남항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랫마을들을 내려다보니 나도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신선동이 아닐까.
소녀의 어머니가 점쟁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또하나 있다. 바로 점집이다.
신선동을 오르는 길에 본 점집만 해도 네댓군데나 된다. 모두 용궁이니 용왕동자니하는 그런 이름들이다.
과거 6.25시절 영도다리에 점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헤어진 가족에 대한 열망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일까. 그래서 그 점집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후에 기를 많이 받는 봉래산 아래에 있는
신선동으로 옮겨온 것은 아닐까..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신선동 끝에 올라 부라보콘 대신에 롯데의 월드콘을 한게 먹는다. 지금도 부라보콘은 나오고 있는데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콘이라고는 월드콘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드콘을 눈보라콘이라 여기며 힘들게 올라온 정상에서 친구와 함께 월드콘을 먹었다.
나는 용수처럼 한입 크게 배어물고 마지막 초코부분까지 탐닉하듯이 먹었고
나의 친구는 소녀처럼 아이스크림의 과자부분이 눅눅해질때 까지 기다렸다가 입술로 핥아 먹었다.
차가운건 차가울때, 뜨거운건 뜨거울때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이 녹기를 기다리는 것은
억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인 것이다.
- 비밀을 간직한 복천사

소설속 복천사의 첫 이미지는 몸보시를 받는 중이 산다는 소문이 들릴만큼 허름하고 왠지 거부감 드는 느낌이었다.
물론 소설속 허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처음 복천사를 갔었던 용수는 능소화 꽃잎을 따다가 스님에게 그만 들키고 만다.
복천사의 스님의 성격은 소문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데 소설속 소문이기에 진짜 성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몸을 묘사하기에 뱃사람들보다 더 튼튼한 몸을 가진 노인이라기에
왜 그런 소문이 흘렀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 듯 했다.
또 소설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데려와 이사를 가려고 한다.
거기에 대한 모든 잘못을 복천사와 복천사 스님에게 떠넘기려 한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복천사를 찾아가 절에다가 헤꼬지를 해놓고 나온다.
그 복천사는 신선동 끝에서 산으로 또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있다. ①은 복천사 입구에 새겨진 이정표.
복 복자에 샘 천자를 쓴 복천사의 뜻은 복이 샘처럼 솟는 절이 아닐까. 입구에 들어서자 큰 건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절에 대해서는 아는게 거의 없지만 천왕문과 대웅전 만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천왕문②을 지나서 대웅전② 앞에 섰다.
대웅전은 경주의 불국사나 양산의 통도사같이 웅장하고 크고 화려지는 않았지만 대웅전의 모습답게
엄숙함이나 근엄함이 느껴졌다.
- 후기
이로써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복천사까지 오게 되었다.
토성동 지하철역에서 봉래산 입구까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거리였지만
복천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모든게 까마득히 멀어보였다.
차를 타면 20분남짓 걸릴 거리지만 이렇게 걸으며 하는 여행은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지리상으로 그리고 부산이라는 틀 내에서는 아주 친숙한 남포동과 영도지만
이렇게 두 다리로는 처음 걸어본 길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내가 처음겪거나 가본 곳은 남항을 바로 코앞에서 본일과
복천사에 갔던일. 그리고 신선동에서 방향을 잘못잡아 청학동근처까지 갔었던 미로같은 골목길등이다.
또 남포동에서 부산근현대사 역사관을 갔고 자주가던 보수동에서도 다른 책방에 들러서 책을 샀다.
나는 아주 먼 여행을 한 것 같다. 50년대 황순원이 되었다가 80년대 신선동에 사는 용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기도하고 그들이 있었던 곳 바로 옆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늘은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버렸다. 많이 걸어서 다리는 아플지 모르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어린아이들이 한창 뛰어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곤히자는 것처럼 여행자도 그러하다.
운동을 하면 힘들지만 개운하다. 하루종일 즐겁게 놀다보면 지치지만 즐겁다.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오랫동안 여행을 할때는 그 조절을 잘해야 하겠지만 오늘같이 하루에 돌아보는 여행에 그런게 어디 있겠는가.
오늘 밤은 아주 깊이,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