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고로 불교신자에 가깝지만 천주교와 기독교명상의 가르침도
제 명상생활에 참고하기도 한답니다. 다음은 한 기독교명상과 관련된 명상수행법입니다.
병아리들 속의 독수리는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는 다시 모이를 먹습니다.
날아갈 생각도 못 합니다. 왜?
자신이 병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설거지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오."(참고로 틱낫한스님의 만드신 명상중에 설거지명상도 있지요. ^^)
경기도 안성 산속의 사랑의교회 수양관 강당. 우리나라 '치유 목회'의 개척자인 크리스찬이유상담연구원장 정태기 목사가 이끄는 2박3일 '영성수련'에 참가한 200여 명이 정 교수의 첫마디에 웃음을 터뜨린다.
"여기 오기 전에도 설거지를 했어요. 설거지를 할 때마다 우리 가정에 은총이 쏟아져요."
중년의 주부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정목사의 말은 농담 같지만 실은 삶의 아픈 고백이기도 하다. 그는 성격차이 때문에 부인과 잘 지내지 못하다가 결혼한 지 5년 만에 가족을 남겨두고 도망치듯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는 그 뒤에도 7년 동안이나 남남처럼 살다가 상처를 극복하고 가정을 회복했다. 남편이나 아내를 원수처럼 여기며 성직자나 어른들의 '공자 왈, 맹자 왈'에 진절머리를 내던 중년들이 정 목사의 말에 귀를 여는 것도 '그만은 내 속을 알아줄 것'이라는 동질감 때문이다. 정 목사가 섬마을에서 두집살이를 하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로지 들일만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사랑에 목말라했던 울보의 얘기를 들려준다. 사랑에 굶주려 어머니 몰래 광 속의 목화를 퍼다가 엿을 바꿔먹곤 했던 꼬마 도둑, 아버지와 마주한 밥상에서 생선을 집어먹다가 두들겨 맞은 이후 말도 제대로 못했던 말더듬이 소년..... 아내와 친구 등 성격이 다른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성격이 형성되었던 '소년 태기'의 삶이었다.
"제가 여기에 나온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서른일곱 살까지 정말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신학대학에서 공부도 했고 전도사도 지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했습니다.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습니다. 또 다른 별명이 있었는데 '재봉틀'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눈에 확연히 띌 정도로 후들후들 떨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이"ㅆ다는 것을요. 내가 주인이 아니라 나하고는 상관없는, 엉뚱한 어떤 주인이 내 마음속에서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나무꾼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나무 밑에 있는 새알을 보았습니다. 그 새알을 먹으려고 가지고 왔다가 자기 집의 닭이 계란을 낳고 부화하는 닭장 속에 새알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알이 부화되고 보니 독수리 알이었습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병아리와 함께 컸습니다. 7~8개월이 지나니 완연한 독수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아리들 틈에 낌 독수리는 자기가 독수리인 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병아리들과 모이를 쪼고 있는데 하늘에서 독수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병아리들 속의 독수리는 창ㄱ4ㅗㅇ을 나는 독수리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는 다시 모이를 먹습니다. 날아갈 생각도 못 합니다. 왜? 자신이 병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서 있는 이유는 분명히 하나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창공을 날고 있는 독수리를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날면 좋겠다'라고 생각만 하면서 한 번도 날아오를 시도를 안 해본, 한 번도 날개를 쳐보지 않은 분들이 많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서른일곱 살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어둠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산 것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도 엄청난 상처를 받았고, 어머니로부터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희 집은 꽤 괜찮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도 느껴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보다 세 살 많은 우리 어머니 말고 우리 집엔 아버지보다 열여섯 적고 예쁜 작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낳은 4남매와 작은어머니가 낳은 5남매가 있었습니다. 어린 저는 집에 아버지가 있으면 캄캄할 때까지 함께 놀 친구도 없는데 동네를 빙빙 돌았습니다. 왜냐하면 집엔 무서운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일에 푹 빠져서 자식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그 자식에게는 분명 훗날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상처가 자리를 잡고 그 상처가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상처가 주인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유 없이 불안합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리고 만만한 사람들에게 그 분노를 분출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의 아들인 삼식이와 우리 집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 막둥이, 그리고 얼룩소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제가 받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입힌 것입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결혼한 뒤 제 아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저를 보고 싱긋 웃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웃는 아내를 보면서 '왜 나를 비웃어?' 왜 남편을 비웃어?'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 비웃은 거 아니야' 하는데도 저에겐 그 모습이 비웃는 걸로 보였던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 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누구에게 또 버림 받을까봐, 또 무시당할까봐 겁이 난 겁니다.
저는 미국 유학을 가서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치유그룹에 들어가 6개월 동안 서럽게 울고 또 울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픔과 상처를 보고, 그들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사랑스럽고 정다운 존재임을 발견했습니다. 눈을 뜨니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정 목사의 길고도 진솔한 간증에 '소년 태기'만큼이나 마음이 상했던 어린 영혼들의 아픔이 되살아난 듯, 참가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무의식 속에 감춰두었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렇게 엉망이 돼버린 '오늘의 나'가 만들어진 원인인 상처를 뚜렷이 보는 과정에 들어섰다. 10명씩 조를 이루어 '과거'를 탐사했다. 처음엔 누구도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들은 다시 강당에 모여 찬양을 하고, 찬양이 무르익으면 하나둘 일어나 율동에 나섰다. 회갑을 넘겨 머리가 희끗희끗한 정 목사 부부가 앞장서서 북을 치고 몸을 흔들면, 주춤주춤하던 이들도 용기를 내어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시 숨을 고르고 묵상기도를 하고, 조별 치유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은 늘 1등을 하지 못했다고 방에 갇혀 엄마 아빠에게 얼굴에서 피가 흐를 때까지 맞았다는 청년, 십대 때 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남자가 두려워 결혼생활마저 파경을 맞이한 삼십대 여성,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는 오십대 여성,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못난 놈"이란 핀잔을 들으면서 자란 뒤 사회에 진출해서도 자기주장을 펴지 못하는 사십대 남성....
4~5년 전 이 영성수련에 참가해 '현재의 나'를 발견한 뒤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며 살맛 나는 삶을 살기 시작한 선배들의 지도 아래, 이 방 저 방에서 어두운 과거의 상처들이 쏟아져 나온다. 늘 왕따를 당했던 이들은 리더들과 조원들의 조건 없는 응원 속에서 드디어 평생 자신을 억눌렀던 바윗돌 같은 상처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오를 채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좀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찬양을 하고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그런 사이 딱딱하기만 했던 몸이 풀리고 마음마저 덩달아 풀리면서 어느새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다른 치유 프로그램이 4~5일 이상 진행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인데도 참가자들이 이처럼 평생 굳게 닫아온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여는데는 정 목사의 진솔한 고백이 적잖은 구실을 한다.
정 목사는 미국에서 7년이나 치유목회를 공부하면서도 지도교수가 무서워 앞에 서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왜 그렇게 나를 무서워하느냐"는 지도교수의 질책을 드고, 자신의 과거를 울며 고백했다. 그 뒤 치유그룹에서 치유를 받으며 꽁꽁 묶어두었던 어둠의 실체를 발견하고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수백 명의 군중 앞에서 마음껏 울고 웃고 흔드는 '무대 체질'을 뽐낸다. 그와 더불어 춤을 추는 동안 참가자들의 가슴에도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래, 나도 더는 이렇게 살지 않겠어."
왜 남편, 아내, 자식을 못살게 굴었는지, 자신의 '상처'를 직시한 이들의 마음은 벌써 집으로 향했다.
"치유가 곧 구원이다."
정 목사의 말을 뒤로한 채 수양관 밖으로 나오니 성탄 트리로 장식된 십자가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홈페이지 : http://www.chci.or.kr
출처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31가지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한겨레출판)-달라이라마와 이해인수녀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