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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정씨 이야기 (실화입니다)

손성은 |2009.05.12 23:32
조회 924 |추천 2

오늘은 자살 예방교육이 있었어요
오후에 야대 학과장에 모여서 들었는데
우리 사무실 사람 얼마간, 라인쪽 사람들 얼마간 해서
한 마흔 명쯤 되려나
강사는 야대 장구반에서 낙하산 꼬매는 일을 하시는 기능 8급의 권순정씨
시시하게 생각했죠
또 그저 그런 교육 이겠거니 조금 듣다가 졸아야 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평범한 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되었어요
권순정씨는 자살예방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으신 분이 아니죠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아줌마 이상 이하도 아니예요
하지만 그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녀의 삶 그 자체인걸요
그녀의 아버지는 육이오 참전 용사셨죠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의 폭행으로 참담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술만 마시면 어머니고 어린 두 딸이건 아들이건 가리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팼었대요
전쟁의 상처는 전쟁을 겪은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
또한 대를 이어 전해지는 것
그녀의 나이가 겨우 열두 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셨대요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은
심지어 그녀의 어린 여동생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아침 일찍 찐빵을 찌고 계셨죠
등교하면서 그것을 보았던 그녀는
'우와 찐빵이다 !오늘은 학교 마치면 바로 달려와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대요
학교가 파하고 동네로 들어섰는데
이웃 어른들이 그녀를 보고 얼른 집으로 가보라 했대요
그래요 어머니는 이미 그곳에 안 계셨던 거죠
마당에 들어섰던 순간 진동했던 그날의 냄새를 지금도 잊을 수 없대요
그 지독한 농약 냄새를 말이죠
부엌에 들어선 그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찐빵을 바라보며
머리가 아려올 정도로 지독한 농약 냄새를 맡으며
엄마를 원망하며 그렇게도 울었대요
어떻게 엄마가 이럴 수 있어
오늘은 동생 생일인데
우리가 맞아온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이렇게 갑자기 죽으면 우리는 어떻하라고
하지만 그런 비극 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술을 마시셨고 무능력했고 자녀들을 때리셨죠
큰 오빠는 중증 소아마비라 변변찮은 소일거리도 할 수 없었고
이제 열세 살 어리디 어린 그녀에게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었대요
'이제 너도 공장을 다녀야겠다. 너도 알겠지만 오빠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작은 오빠는 공부를 해야 하고, 네 여동생은 국민학교라도 보내야 하잖겠니
미안하다'
그래서 그녀는 낮에는 공장엘 다니고 밤에는 야간 중학교를 다녔대요
그녀도 많이 원망하고 불평했대요
'왜!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 나만 이렇게 희생해야 하는 거야!'라구요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대요 그녀도 그걸 알았던 거예요
그래도 그녀는 잘해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비록 이번에도 야간이었지만요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어요 수학여행을 간대요
아버지께 말씀 드렸죠
아니 근데 이상도 하죠 그날 따라 아버지는
순순히 자기 주머니를 털어 딸래미에게 이천 원짜리를 쥐어주면서
'잘 다녀 오거라'라고 하셨대요
그녀는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대요
평소처럼 욕지거리 하고 때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는 것에 화가 났대요
그래서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대요
그 돈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면서
'언제부터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잘해줬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라고 하면서
집을 나가 수학여행을 가버렸대요
몇 일 간의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집엘 갔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전깃줄에 목을 매 자살을 한 거였죠
그녀는 펑펑 울었죠 자기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죽도록 미웠던 아빤데도 그렇게 눈물이 흘렀대요
그녀는 또 그렇게 자살로 가족을 잃었죠
하지만 그녀는 버텼어요
아직 남은 가족이 있으니까요
이를 악물고 살기로 했죠
그렇게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제 대학까지 갔어요
혼자 힘으로 돈 벌고 공부하면서 말예요
열심히 공부했던 작은 오빠가 드디어
대한 주택공사에 취직까지 했어요
작은 오빠가 말했어요
'이렇게 오빠가 직장에 들어간 건 모두 니 뒷바라지 덕분이야.
그러니 이제는 오빠가 네 구두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공부도 시킬테야'라고요
그녀는 기뻤어요
이제 그녀에게도 좋은 날이 온거예요
'아 오빠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새 구두에 새 옷 입고 맘껏 공부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겠죠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작은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그리고 현장에서 사망했대요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죠
그녀도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어요
스스로 제 손목을 그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어요
이 일로 그녀는 깨달았죠
죽는 게 쉬운 것은 아니구나
그리고 지독하게 아프구나
시간이 얼마 지나고
그녀에게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대요
그리고 스물 한 살에 결혼을 했죠
결혼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결혼 생활은 또 다른 어려움의 연속이었죠
아무리 노력해도 시부모님의 턱 없이 높은 기대는
언제나 자신을 지치게 했죠
'애미, 애비 없이 자란 애들은 다 저렇다니까.
어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기나 했겠어.
그러니 저 모양이지.'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다시 한 번 죽고 싶은 맘이 들었지만
선물로 받은 자신의 작은 딸 아이를 보면서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 살기로 했죠
그렇게 힘겨운 하지만 그나마 작은 안식들을 누리며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방안 곳곳의 가구나 가전제품에 적찰이 나 붙었어요
그 때 그녀는 빨간 딱지가 붉은 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라는 사실 첨으로 알게 됐대요
서산시 외각의 꼬딱지만한 월셋방으로 세 가족이 이사를 하였고
빚쟁이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협박을 했고
그녀도 돈을 벌기 위해 공군부대에 기능공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찢어진 낙하산을 깁는 일이었죠
찢어지게 어려운 삶이 이어졌지만 한 땀 한 땀 낙하산을 깁듯
그녀도 그렇게 하기로 했대요
지독하게 힘들었지만 딸아이가 있었으니까요
직장 생활은 힘들었어요
낯설디 낯선 군대라는 곳
동료가 아닌 아줌마라고 불리는 곳
구석진 곳에서 혼자 서럽게 울고 지냈던 날을 다 셀 수가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녀에게도 힘을 주는 고마운 한 사람이 있었대요
그녀가 울거나 힘들어할 때 조용히 찾아와서
초코파이 하나 건네주며 힘내라고 해 주던 하사 분이 있었대요
그래서 그녀는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대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하사 분이 출근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녀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대요
군대에서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아, 제발 죽지만 말아요'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그 분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열흘이 지나 마침 그를 찾게 되었죠
싸늘한 시체로
그가 살던 곳 뒷동산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한 것이었죠
그녀는 또 다시 미칠 것만 같은 맘이 들었어요
'왜! 내가 아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죽는 걸까. 신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안겨줄까.'
그녀는 자신을 모질게 질책했어요
자신만 보느라 자신의 고통만 보느라 정작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돌아보지 못했다고요
그렇게 찢어진 가슴을 다시 싸매며 살아가던 그녀에게
또다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119에서 온 전화였죠
남편 분이 트럭에 깔렸으니 빨리 서산 의료원으로 오라고요
그녀는 울 새도 없이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한 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제발 죽지만 마! 죽지만 말아줘!'
다행이 남편은 살아있었지만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은 재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짓이겨져 있었죠
피투성이의 몸으로 참기 힘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말했어요
'고마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후에야 한말이지만 남편은 사실 그 말이 듣기 싫었대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현실의 냉정함에 그녀는 또 한 번의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빚쟁이들의 빚 독촉은 여전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무서에서 연락이 오기를
법을 어겼으니 출두해야 한다고요
그녀는 당황했어요
말할 수 없이 힘든 그녀의 삶이었지만 정직하게 살아온 그녀로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던 거였죠
남편을 인천의 백병원에 보낸 후
그녀는 서산의 세무서에 출두했어요
알고보니 남편이 사업에 망하고
그녀의 신용카드로 카드깡을 했었던 거였어요
유일한 희망인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절망하고 말았어요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지요
그 때 그녀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사진전시회에 대한 얘기였어요
그녀에게 사진은 마음속의 북극성과 같은 것이었죠
깜깜한 밤에도 방향을 알게 해주는 북극성 말이죠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맘을 먹었데요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전시회는 하고 죽자'
그렇게 그 죽음에 사로잡혔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어 지인의 도움으로 카드깡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고
비록 온전치 못한 몸이지만 남편의 수술은 잘 되었어요
시간이 삶에 치료제가 되었던 거였어요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이제는 더 없을 것 같던 슬픈 소식이 또 한번 들려 옵니다
야간중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죽었다고요
그녀의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리사였던 남편과 결혼을 했었대요
그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성실하게 일해서 꽤 많은 돈을 모았고
전주에 번듯한 식당도 차렸대요
감사하게도 식당이 잘 되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는데요
한우파동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 거였어요
그렇게 잘 되던 식당에 하나 둘 손님이 끊어지더니
결국엔 아예 끊어져 버렸어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빚은 빚을 만들어 모든 것을 날리게 되었죠
그녀의 남편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었나 봐요
그래서 보험사에 생명보험의 가입사항을 일일이 확인한 후
그날 밤 자신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사랑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동차를 몰고 나가 자살을 하고 말았대요
경찰조사에 의해 자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보험금은 하나도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왜, 대체 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은
이렇게도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지를요

 

그래요 그녀에게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지요
많은 빚이 남아 있고 계속해서 삶의 소망을 꺾을 만한 슬픈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녀는 새로이 그녀에게 주어진 삶을 용기 있게 그리고 꿋꿋이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직 그녀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딸아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남편도 살아있고 그녀의 북극성, 사진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여러분 잘 들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자살은 너무나 아픕니다. 당사자뿐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고통은 상상하기 힘든 것입니다.
오늘 제 얘기를 듣고 조금 놀라셨죠.

네 그래요. 저처럼 살아온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사세요.'

 

 

 

-실화입니다. 오늘(09.5.12) 부대에서 하는 '자살예방교육'에서 들은 것을 거의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수시로 식당에서 마주쳤던 분인데 이렇게 기구한 삶을 사셨다는 것이 듣는 내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자리에 있던 많은 분들이 눈시울이 붉어져서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이런 분의 사연을 좀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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