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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디자이너, HEEME 대표 이연희의 두번째 이야기 [포커스 그 사람]

채명석 |2009.05.19 19:38
조회 209 |추천 0

[ 포커스 그 사람 ] 주얼리 디자이너, 히메 대표 이연희의 두번째 이야기

 

 

평생의 꿈, 그래 바로 이거였어! 

 

 

 

 

한국에서 메이크업을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화장품 가게에서의 알바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급은 1100엔으로 시작했지만 두 달 후에는 1300엔이 되었고 이는 나의 유학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비록 한국 손님이 많아 일본어를 사용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손님이 없을 때는 가게 안에서도 일본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유학생활 중의 알바 경험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레스토랑은 물론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하기도 했었다. 특히 레스토랑의 서빙 시급은 1500엔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이어졌기 떄문에 잠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일본 손님이라서 회화 실력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전문 학교 진학으로 3개월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

 

그 후의 알바는 지인의 소개로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프리랜서’였다. 따로 시급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1회당 2000엔 정도를 벌 수 있었다.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됐다. 마침 집이 신주쿠 근처에 있었기에 연락이 오면 미용실로 가는 형태였다.

 

낯선 외국 땅에서 열심히 알바를 해서 학비를 내 손으로 벌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자부심으로 남았고 이는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자신감도 주었다.

 

떄로는 알바 그 자체에 전념한 때도 있었지만 일본어 학교를 다닌지 1년 반이 지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전문학교 진학을 서둘렀다. 그러나 그 전에 필요했던 것은 과연 어떤 전문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한 신주쿠와 시부야 인근에서 알바를 하다보니 쇼핑과 관련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특히 그 중에서 주얼리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보다 다양한 제품군은 나를 주얼리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일본어 학교 선생님에게 부탁해 일본에서 유명한 주얼리 학교를 추천 받기로 했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이 바로 ‘히코미즈노’ 주얼리 학원이었다.

 

일본 전문학교의 장점은 ‘일일 체험입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하루 동안 학교를 체험해 보는 코스다. 여기서 나는 그간 눈으로만 보아 오던 주얼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 은반지!

 

그것은 바로 나의 전공을 결정할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다. 나의 손으로 만들어진 은반지를 보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고 더 아름답고 좋은 반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솟아났다.

 

결국 나는 내 평생의 꿈을 ‘주얼리 디자이너’로 정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디자인 하는 사람. 그것은 내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특별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히코미즈노 칼리지의 입학을 위해서는 간단한 필기시험이 있었지만 일본어를 1년 이상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주제는 ‘일본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문학교는 어학원이나 일반 대학교와는 달리 학비가 좀 비싼 편이다. 히코미즈노의 경우에는 1년에 150만엔. 하지만 6개월 동안 분납이 가능했다.

 

오전 9시 반에 시작된 수업은 오후 5시까지 이어졌고 일주일에 4일동안 학교를 갔다. 학교가는 길은 즐거웠다. 학교가 번화한 동네에 있었던 탓에 럭셔리하고 화려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 자체가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한 클래스는 25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엔 7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했으며 이외 대만, 중국 학생들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일본인과 어울릴 기회가 비교적 적어 일본 문화에 대한 공부가 다소 미흡했다는 점이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을 사용하며 실습을 할 수는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알바 때문에 그럴 기회가 적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히코미즈노 출신이라는 점은 장점이었다. 학생들이 전부 후배라는 점에서 선생님들은 세심하게 지도와 배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처음 입학 당시에는 한국 유학생에 대해서도 취업 서포트를 확실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정은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외국인을 주얼리 디자이너로 채용하는 일본 회사가 적어서 일본에서 취직을 할려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개 한국계열 회사나 작은 일본 주얼리 회사로의 취직이 대부분이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만약 본인이 원한다면 한국계열의 회사에는 입사를 할 수 있었고 초봉은 대략 200만엔. 일본 계열 기업은 230만엔 정도였다.

 

사실 히코미즈노는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학교였기 떄문에 많은 학생들은 이 학교만 나오면 일본 회사 어디에든지 취직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고 또한 설사 그렇게 취직을 한다고 해도 기대만큼의 대접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이 공부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본인 스스로만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월 5만엔의 장학금을 받은 것은 물론, 그 해 제작 과정에서 한국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2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일본계 회사에서도 ‘러브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유학 생활의 성공을 위한 키워드는 역시나 ‘노력’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내 인생의 나침반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세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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