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이지만,
많은 분들이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깨닫지 못했던
고인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각을 기대하는 분들을 위해..
페리클레스를 보면, 노무현이 보인다.
― 새로운 황금시대를 꿈꾸며
길고 긴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온 뒤 사막에 피는 선인장 꽃처럼, 인간의 창의력이 활짝 피어난 황금시대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관의 치'라고 불리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 시대 장안이 그랬고, 그 당시 모든 천재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던 15세기 피렌체가 그렇습니다. 또 18세기 프랑스 대 혁명전, 백과사전파들이 활동했던 파리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글을 쓰고 역사를 기록한 3000년의 시간 동안, 가장 눈부신 황금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일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서양 문화의 원형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기를 고전시대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의 원형이 완성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고 인간의 영혼과 이성을 강조하는 서양 철학의 기초가 완성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아테네의 고전 시대를 이끈 사람이 바로 페리클레스입니다. 사실 고대 아테네의 영광은 페리클레스의 삶과 일치합니다. 그의 지도 아래, 아테네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고 그가 죽은 후부터, 아테네는 몰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대 아테네의 최전성기를 그의 이름을 따서, 페리클레스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번영시켰고 문화적으로 발달시켰지만 뛰어난 상인도 아니었고 천재적인 예술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소수의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다수의 시민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낫다고 믿은 정치가였고 그래서 권력을 귀족들에게서 빼앗아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불교에는 법통이 이어지고 도가에서는 선맥(仙脈)이 이어지듯, 민주주의에서도 이념적 계승이 이어지나 봅니다. 사실 페리클레스의 정치적 신념은 그의 집안 내력이기도 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어머니는 그 유명한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였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완성시킨 사람이 페리클레스라면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사람입니다.
본격적으로 페리클레스의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클레이스테네스의 이야기부터 해볼까합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지역 구도를 바꾸어놓은 사람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 이전까지, 아테네의 행정 단위는 4개의 씨족이었습니다. 아테네 행정이 4개의 씨족 단위로 이루어지다 보니, 당연히 4개의 씨족의 우두머리들(다시 말해서 귀족들)이 아테네의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클레이스테네스는 4개의 씨족 단위를 10개의 행정구역으로 바꿉니다. 이 10개의 행정 구역을 데모스(demos)라고 합니다. 데모스는 행정구역을 뜻하는 동시에 그 행정구역에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데모스는 시민, 민중, 인민이라는 말로 번역됩니다. 민주주의(democracy)는 바로 이러한 데모스에 의한 지배를 뜻합니다.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이후, 자기 이름과 아버지 이름 그리고 소속된 데모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테네 시민의 정식 이름이 됩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알로페케 데모스의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가 됩니다. 이로써 소속된 가문이나 씨족을 나타내는 명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 개혁의 결과, 행정구역이 씨족 단위였을 때와 달리, 귀족들이 아닌 시민들이 데모스의 대표가 될 수 있게 됩니다. 각각의 데모스는 자신의 데모스를 대표하는 50명의 시민을 뽑았습니다. 10개의 데모스를 대표하는 500명의 시민들이 모이는 회의가 바로 500인 평의회입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모이는 민회와 더불어 이 500인 평의회가 정치의 중심이 됩니다.)
과거에는 군대가 4개의 씨족에 따라서 조직되었던 것처럼 클레이스테네스 개혁 이후에 군대는 10개의 데모스 단위로 편성됩니다. 과거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들은 무기를 대고, 자기 씨족 속한 사람들을 군인으로 징집했습니다. 그러나 행정단위가 10개의 데모스로 변한 다음부터는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각각의 데모스의 속한 시민들이 자신의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징집에 응하게 됩니다. 자신의 돈으로 무장한 이러한 시민병들을 중장보병이라고 합니다. 이 중장보병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 놀라운 활약을 보입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군 1만 5000명이 아테네 북동 해안에 있는 마라톤 평야에 쳐들어왔습니다. 이에 1만 명의 아테네 중장보병이 페르시아군에 맞서서 싸웠습니다. 결과는 페르시아군의 참패였습니다. 페르시아군의 전사자는 6,400명인 반면 아테네 쪽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전투를 통해서,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을 얻게 됩니다. 아테네를 지킨 것은 귀족들이 아니라, 평범한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페리클레스가 클레이스테네스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페리클레스가 좋던 싫던 클레이스테네스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페리클레스는 클레이스테네스의 정치적 이념을 물려받았으며 동시에 그의 정적들도 물려받았습니다. 시민들에게 권력을 빼앗긴 아테네의 귀족들은 클레이스테네스를 미워했던 것처럼 페리클레스를 미워했습니다. 페리클레스와 민주주의를 혐오했던 아테네의 귀족들은 아테네를 배신하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 이제, 페리클레스가 어떻게 권력을 귀족들에게 빼앗아 시민들에게 돌려주었는지 살펴볼까요?
페리클레스 이전에 아테네의 입법, 행정, 사법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바로 아르콘이었습니다. 귀족들만 가입할 수 있는 아르콘은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10 명의 아르콘들이 아테네의 행정과 사법을 맡아보았습니다. 아르콘은 아테네를 다스리는 최고 집정관이자,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기도 했습니다. 아르콘이 은퇴하게 되면, 귀족들 회의인 아레오파고스(원로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테네의 법을 제정하는 것은 바로 아레오파고스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그리고 귀족들의 회의인 아레오파고스를 약화시킵니다. 대신 500인 평의회와 민회를 강회 시킵니다. 500인 평의회는 각 데모스(지역구)에서 뽑힌 50명들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회의입니다. 민회는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입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에는 500인 평의회에서 법안을 만들면 민회에서 투표를 걸쳐 그 법안을 확정지었습니다.
또 페리클레스는 평민들도 아르콘이 될 수 있게 법률을 개정합니다. 이제 귀족인 아닌 가난한 시민들과 최고 집정관이 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아르콘이 가지고 있던 재판권의 일부를 민중 재판소에 넘깁니다. 민중 재판소에서는 시민들 중에서 뽑힌 500명의 배심원들이 재판관 대신 판결을 내립니다.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이 입법, 행정, 사법 모든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테네의 입법, 행정, 사법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민중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솔직히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를 보면, 노대통령이 하려는 일이 보입니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씨족 중심의 지역 구도를 타파하는 것이었고 페리클레스의 개혁은 입법, 사법, 행정 모두 분야의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역주의 극복과 참여는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정치적 이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5년이라는 임기 안에 지역주의극복과 참여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의 참여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이다 혹은 정부의 홍보가 미흡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잘못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낮은 호응도는 더 근원적인 곳에 있습니다. 지금의 지역 구도의 해체 없이는 참여민주주의라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데는 3세대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만약 클레에스테네스가 씨족 중심의 지역 구도를 해체하지 못했다면 아테네의 시민 계급은 형성되지 못했을 겁니다. 씨족으로 묶여지던 지역구도가 해체되고 나서야,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의 씨족이 아니라 아테네라는 공동체에 책임을 느끼는 시민으로 태어납니다. 아테네 시민들이 협력해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경험이 없었다면, 귀족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낫다는 자신감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눈부신 참여 민주주의는 앞선 두 세대에 걸친 준비 작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 구도의 해체가 필요합니다. 노대통령이 대연정이라는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선거제 개편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이 동과 서를 나누는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남과 북을 나누는 또 다른 지역주의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지역 출신의 누가 아니라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자각하는 그 때가 되면, 참여 민주주의가 꽃이 활짝 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역 구도를 해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페리클레스가 죽은 후, 아테네의 역사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페리클레스 말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 전쟁이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페리클레스는 이 전쟁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죽습니다. 그가 죽자, 아테네 정치는 혼란에 빠집니다.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참여하기 싫어합니다. 이제 그들은 권리는 없지만 책임도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시민들이 우왕좌좡하는 동안, 시민들에게 권력을 빼앗겠던 아테네 귀족들은 아테네를 배신하고 적국 스파르타의 편에 섭니다. 그렇게 아테네는 무너지고 맙니다.
사실 지금의 한국은 갈림길에 있습니다. 한 쪽은 참여민주주의를 통한, 황금시대로 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한쪽은, 과거 지역 구도로 돌아가 몰락하는 길입니다. 첫 번째 길은 많은 희생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반면 두 번째 길은 쉽고 안이한 길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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