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식이는 원래 이장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옆동네 배밭주인이자,
감기에 걸려 병환에 시달리던 김영감이 보기에
다음의 이장을 농사일에 밝은 봉식이가 맡는 것만이
우리 마을의 발전을 위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장이 된 봉식이는 이장으로서 동네마을 주민과 구별이 될만큼의
인품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농사일에 익숙했던 봉식이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일을하면서도 그들 위에 군림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소로 밭을 갈고, 볏집을 모으는 등
몸소 농사일을 했다.
마을사람들은 봉식이를 이장이라기 보다
마을의 일꾼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봉식이에게 이장'님'이란 말을 하는 것도 어색해했다.
봉식이는 이장님으로서 마을사람들과
다른 인품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을의 일에 있어서는 남다른 식견을 갖추고 거침없이 일을 했다.
또한 말을 할때도 말과 글에 익숙하지 않은
마을사람들의 시각에서 말을 했다.
복잡하게 말하는 것을 싫어했고,
마을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때로는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말을 했다.
그렇게 봉식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을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하지만, 권위적이었던 이전의 이장들에게 익숙한
일부 읍내 쪽의 마을사람들과
주로 마을의 일들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마을회관의 바둑두던 노인들은 봉식이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들은 봉식이의 말투를 무식하다 했고,
농사일을 몸소하고, 마을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는 봉식이에게
이장으로서의 품위를 강요했다.
한번은 바둑두던 노인들이
봉식이가 마을에 들여온 농기계에 문제가 있다며,
마을회관 확성기 관리자인 철중이를 시켜
농기계를 쓰지 말라며 확성기로 마을사람들에게 알리게도 했다.
봉식이는 농사일에 밝은 이장으로서
농기계가 마을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항변했지만,
이전의 이장이었거나, 대부분 큰 농장의 소유주가 대부분인
마을회관의 바둑두던 노인들은
확성기 관리자 철중이에게 돈까지 쥐어주며 더욱 더
마을이장 봉식이에 관한 험담을 확성기로 틀게 했다.
봉식이와 일하는 것을 좋아하던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봉식이에 관한 험담을 듣고
그러한일을 철중이에게 시키는
바둑두던 노인들을 너무하다 마음속으로 나무랐다.
하지만, 계속되는 확성기 방송에 마을사람들은 봉식이에 관한
이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를 미워하고, 무능력하다 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봉식이는
다음 이장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장자리에 욕심이 없던 봉식이는
다시 농촌의 한 청년으로 돌아갔다.
그는 밭을 갈고, 모내기를 했다.
소똥을 퍼다나르고, 닭모이를 주는 일도 했다.
이장때나 청년으로 돌아왔을때나
그의 생활에 별차이는 없는 셈이었다.
마을사람들과 말도 이장때였을때 보다도 더 편하게 했다.
봉식이는 이런 보통 농촌총각의 삶이
오히려 자신과 더욱 맞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봉식이의 다음 이장자리는
바둑두던 노인들 중의 한명인 김영감네 아들에게 돌아갔다.
김영감네 아들은 봉식이와는 그저그런 사이였다.
서로 미워하거나 헐뜯는 사이도 아니었다.
단지 바둑두던 노인들이 봉식이를 미워했다.
그들(바둑두던 노인들)은
그들이 일구어놓은 마을을 봉식이같이 무식한 놈이
모두다 망쳐놓았다고 생각했다.
그 노인들은 농촌일만 잘하는 봉식이가
애당초 이장이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도 했다
그들은 봉식이의 거침없고 솔직한 면모가
마을의 농사정책을 실패로 몰고 갔다고 자주 논했다.
그런가하면, 바둑두던 노인들은
지금의 마을이 이렇게 피폐해진 모든 이유가
한번뿐인 이장생활을 한 봉식이 때문이라고 비하했다.
그들은 김영감네 아들편에서서
지금 김영감네 아들이 이장을 하는데 있어
힘들수 있는 부분들을 모두 다 봉식이의 탓으로 돌렸다.
정작 김영감네 아들은 이장일을 열심히 수행하려고 했으나,
부자인 김영감에게 염소한마리 포도즙하나라도 선물받았던
사람들은 김영감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봉식이를 깎아내리고 김영감네 아들을 추켜세우기 급급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서서히 외면당하면서도
봉식이는 말이 없었다.
이장이 된 김영감네 아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그냥 참고로 삼아듣되
자신의 이장일에 있어서는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러나,
아버지 친구들인 바둑두던 노인들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봉식이를 싫어하는 그들에게,
또한, 김영감네 아들인 자신이 이장이 되는데
큰 공헌을 한 그들에게 이장으로서 뭔가 보여줘야 했다.
김영감네 아들인 이장은 철중이를 시켜
봉식이가 농기계 업자에게 막걸리 한잔을 얻어먹은 사실을
확성기로 방송하게 했다.
농기계업자들이 원래 이장들에게 소 한마리를 선사하는 것이
새로 이장이 선출되고 난 다음에 그 마을의 관행이었지만
농기계업자마저 봉식이가 이장을 할 당시에는
이장인 봉식이를 무시했었다.
또한 봉식이 역시 그 농기계업자를 싫어했다.
솔직히 농기계업자를 싫어했다기 보다
마을의 그러한 관행이 봉식이같은
머슴출신 이장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봉식이는 소 한마리를 이유없이 선사받던
이전의 이장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봉식이가 이장이 되기 전부터의
오래된 생각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봉식이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일이
바로 이장들이 농기계업자들에게 소같은 것을 받는
그러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 이장이었던 봉식이는
마을의 관행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집요한 농기계업자들 또한 어떻게든 봉식이의 환심을 사기위해
달려들었다.
이장과의 끈을 놓는 것은
수년간 이 마을을 상대로 장사를 해온 이 농기계업자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봉식이는 농기계업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대접만을 받기로 했다.
관행을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봉식이는 농기계업자에게
"정 그러하다면 막걸리 한잔을 사주쇼.
농기계만 좋다면 내 마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리다."라고 했다.
사실은 이러한 것이었는데,
김영감네 아들인 지금의 이장은 봉식이의 '막걸리 사건'을
마을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다.
일부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너무하다 싶었다.
그들은 이전의 이장들이 소한마리를 선물로 받은 것에 비하면
막걸리 한사발로 사람을 저리 매도하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확성기 소리에 사람들은
봉식이의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양편모두에게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영감네 아들도 싫어했지만,
봉식이도 잘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봉식이는 외로웠다.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싫었다.
어찌보면 무식하고......
바둑두던 노인들중에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자신이 싫었다.
바둑두던 노인들은 이전의 이장들은 농기계업자에게 소한마리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봉식이는 막걸리 한사발도 얻어먹을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만큼 봉식이를 이장의 옷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무시했다.
봉식이는 더욱 외로워졌다.
봉식이의 얼굴은 날로 수척해졌다.
때로는 먼산을 바라보며 울기도 했다.
억울하고 외로웠다.
그렇게 억울하고 외로운 날을 맞으며......봉식이는.....
두눈의 뜨거운 물을 먹으며
산으로 갔다.....
산으로 가는 도중에
바둑두던 노인들 중의 한명은
산을 오르던 중 봉식이와 마주쳐 한마디를 했다.
"네가 이 마을의 이장이 되도록 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실수였다."
봉식이는 그 노인의 말을 웃음과 인사로 삼켰다.
그리고 말없이 또 산을 올랐다......
http://blog.naver.com/gagtog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