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시간이었다. 2006년 봄부터 대통령 직속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완전 시다)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잠시 일을 했다. 여러번 지방으로 지방자치단체 보고와 현황 파악을 위해 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노무현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 방식에 인상을 받았었다.
부산 출장때였을꺼다. 설마했다.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 정책자문위원 교수 등에게 주어진 숙소는 부산역 앞 하루밤 3만원짜리 모텔방이었다. 혹여나, 지자체 사람들과 쓸데없는 접촉을 하게 될까봐 열심히 그들을 피하면서, 곱창집에 들어가 소주잔을 기울이던 생각이 난다. 청주에서는, 개인적 친분 탓에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며 시장 안 골목 어딘가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에서 족발과 모주를 마시며 지방 공무원들 식비까지 뿜빠이 해서 미리 계산하는 그들이었다.
지자체로 출장 다니다보면, 청와대에서 내려온다 하여 난리가 나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사실 그런일을 겪다보면, 목에 힘도 들어갈만 한데, 내가 모시고 다녔던 그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조직에 의해 자신들의 가치를 결정되도록 하지 않았으며, 필요 없는 곳에 체면이나 위신을 세우거나 자신의 권력을 내새우지도 않았다. 그것이 바로, 바보같다 욕하던 '노무현식' 통치였다.
노무현이 바로 그랬다.
그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억누르지 않았고, 자신의 반대 세력을 탄압하지도 않았으며, 언제든 계급장 떼고 대화할 수 있는 신뢰를 가진 인물이었다.
나는 노무현을 아주 어려서부터 지지해왔다.
5공 청문회때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좋아했었다면 믿으실런지?
아홉살 짜리 꼬마의 눈에 그는 단호하고, 정의감 있고 소신있는 정치인이었으며, 나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꿈을 한때 갖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그 벅차오로던 감격을 기억한다.
나는 그 승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마이너리티 그룹과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천의 용-어떤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고, 소신과 비전과 올바름으로 신념을 유지하며 삶을 개척해갈때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이자 모범, 그것이 나에게는 노무현이었다.
물론 이라크 파병, 농민 두분의 산화, 그리고 사회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배제된 채 자본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국가적 이익이라는 명분 하에 맺어진 한-미 FTA까지. 그에게 실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나보다 더 대한민국의 국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나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이 거의 2/3의 의석을 얻었을때 나는 그가 권력을 휘두르기를 기대했다.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언론법도 개정하고, 더 나아가 개헌까지 이르기를 바랬다. 한나라당 따위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밟아버리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70%에 이르는 국민 지지도와 그 많은 의석을 가지고도 그는 겸손했으며, 민주적 절차를 존중했다.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다."라며 대통령을 손가락질 하고 욕했을 때도, 그는 웃을 뿐이었다. 국민들은 최대의 자유를 보장받았으며, 한국 사회의 군대 문화를 포함하는 권위주의 문화에 점철되어 무섭게만 느껴지던 "대통령"의 지위를,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과서적이라 할만한 위치로 그런 스스로 낮추었다. 권위주의 문화, 권력적 독재의 혁파-그것이 노무현이었다.
물론 공과는 있다. 그런 그를 "바보"라 칭하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그랬기에 그는 더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현실 정치인인 대통령이 너무 이상주의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기에-우리는 지금 이렇게 슬퍼하는 것이 아닐까.
'청개천에서 용은 나도, 개천에서 더이상 용은 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기억한다. 정부의 공식 통계자료에서조차도 사상 최악의 지니계수가 추계된 2009년, 사회 경제적인 지위 양극화가 나날이 격심해지는 오늘날 이후, 노무현과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 또한 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들에게 작은 행복을 전해주던 그였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아픈게 아닐까.
개천의 용-그런 그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기에 더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삶을 어리석다 칭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꼭 비극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보면, 그는 가장 "그"다운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는 언제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승부사였다. 자신이 옮다 생각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 곤 했다. 그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자신이 옮다는 신념-정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그는 약했다. 뻔뻔함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가 뻔뻔했다면 우리가 과연 그를 좋아했을까?
그의 자살이 그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마감하기 위해 삶을 마친 것이다. 자살을 미화할 수는 없지만,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는 그의 말로부터 나는, 그의 죽음이 실패 혹은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역사와 그리고, 자신이 믿는 정의를 이루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늘 약자의 편이었고, 진솔한 사람이었으며, 인간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존중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와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더 많은 "바보"들의 삶이 피어나기를,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 모두의 행복 번영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기를 기도한다.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당신이 편안하게 잠드실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고
그 이상들을 이루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