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그저 짙은 오렌지빛 하나로만 물든 곳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사람사는 땅 위의 그 황혼과도 같은 빛깔이라고 믿으면 좋습니다. 무슨 머언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숨막히는 하늘에 새로 오는 사람만이 기다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여기에도 태양은 있습니다. 태양은 검은 태양, 빛을 위해서가 아니라 차라리 어둠을 위해서 있습니다. 죽어서 낙엽처럼 떨어지는 생명도 이 하늘에 이르러서는 눈부신 빛을 뿌리는 것, 허나 그것은 유성과 같이 이내 스러지고 마는 빛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곳에 오는 생명은 모두 다 파초잎같이 커다란 잎새 위에 잠이 드는 한 마리 새올습니다. 머리를 비틀어 날개쭉지 속에 박고 눈을 치올려 감은 채로 고요히 잠이 든 새올습니다. 모든 세포가 다 죽고도 기도를 위해 남아 있는 한 가닥 혈관만이 가슴 속에 촛불을 켠다고 믿으십시오.
여기에도 검은 꽃은 없습니다. 검은 태양빛 땅 위에 오렌지 하늘빛 해바라기만이 피어 있습니다. 스스로의 기도를 못 가지면 이 하늘에는 한 송이 꽃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으십시오.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첫사랑이 없으면 구원의 길이 막힙니다. 누구든지 올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갈 수는 없는 곳, 여기엔 단지 오렌지빛 하늘을 우러르며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기도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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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에 쓰여진 조지훈의 지옥기. 산문시에 지독히 가슴이 절절해지기는 오랜만인듯하다. 말이 많을수록 욕심만 늘 뿐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찾아오는 우연은 이렇게 사람의 생각도 바꿔놓는가보다. 당시의 허무주의를 온 마음으로 치고 받았던 그의 아픔. 당대의 아픔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군.
머언 생각에 숨이 막히는 곳. 어둠을 위해 있는 태양, 유성처럼 이내 스러지는 빛, 머리를 비틀고 눈을 치올려 감은 역설적인 고요한 잠에 빠진 새들. 모든 세포는 죽고 이제 남은 한가닥 혈관, 검은 태양,
이 허무의 공간에서 인간은 첫사랑을 기억하며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기도만이 인간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지옥. 현실의 또다른 이름.
지식인의 고달픔이 배어 있는 감동적인 시다.
그리고..
왜.. 지금 이 2009년 5월 26일에 이 시에 마음이 절절히 아파오는 걸까?
달라진 게..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