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드리는 한 고교생의 편지
[인물] ˝대나무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았다˝
김용제 기자 takross@daum.net
거친 풍파와 흙탕비에, 폭풍우에 휘어질지언정 기어코 꺾어지고 말아버린 임이여. 그 높은 곳에서 이 어린 학생의 소리 없는 절규가 들릴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한 글자 올립니다.
나에겐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사진이 있습니다. 5공 청문회 때 40대의 젊은 나이로, 뭣도 없는 일개 변호사였던 그가 당시 절대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서슬이 퍼렇게 호통을 치던 사진. 주변 모두가 가만히 있는데 "이의 있습니다!"라며 혼자 손을 번쩍 들던 사진. 강자에게 강했고 약자에게 한없이 부드러웠던 한 정치인.
나는 기억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노무현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절대권력에게 굳센 표정으로 호통을 치던 노무현이 국민에게는 오히려 웃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 스스로 권위를 던져 버려서 오히려 국민들에게 바보로 보여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던, 아니 정치의 근간이 되어 있던 권위주의와 금권정치, 정치·경제·언론의 유착이 던지는 유혹을 거부했습니다. 정치 쉽게쉽게 하면서, 상부상조하면서, 챙길 건 다 챙기고 할 수 있는 유혹을 떨쳐버렸습니다. 홀로 고고하게 서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그의 지지기반이었으니까요. 철저한 원칙과 도덕성만이 당신의 자존심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마음만이 당신의 이상에 부합하였던 겁니다. 유시민 전 장관의 말대로 "모두가 이로움을 쫓을 때, 혼자 의로움을 쫓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면 또 떠오르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일본 왕과 당시 고이즈미 총리, 김정일, 부시 대통령 등 세계 정상들과의 악수장면에서 상대방이 오히려 허리를 굽혔지만 당신은 가볍게 목례만 할 뿐이었지요. 하지만 봉하마을에서 국민과 악수할 때는 허리를 푹 숙였지요. 자신이 진정 섬겨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실천하고 있던 겁니다.
부패의 온상이자 왜곡의 산실이었던 언론의 총구에 머리를 직접 들이밀고 치료하려 애썼지만, 그들의 강력한 힘은 더이상의 지지기반마저 잃고 있던 당신에게는 너무나도 강한 해일이었지요. 지금 보면 언론이 그에 대해 왜곡했던 것이 명백하게 보이지만, 그때의 어른들은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우린 아무것도 모른 채, 무언가를 해 주려 했던 사람을 밀쳐내고, 돈 벌어 준다는 거짓말쟁이 정부를 덜컥 앉혀 버렸습니다. 경제위기 해결해준다던 그는 이제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을 하나하나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법권이 어린아이 딸랑이 휘두르듯 아무렇게나 휘둘러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패러디 축에도 못 들었던 풍자 작품이 이제는 작가에게 '몸 조심 하세요'라는 댓글부터 남기게 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이젠 당신의 영전 앞에서 촛불을 드는 것도 불법이랍니다. 어느 나라 어떤 법전에 쓰여 있는지는 제가 까막눈이라 알 수 없지만, '어버버'하며 제대로 설명을 못하긴 해도 높으신 분들이 불법이라니 그럴 수 밖에요. 모 단체의 위령제도 지내던 서울광장은 전 대통령의 추모를 위해서는 절대 개방할 수 없답니다. 이게 그들의 예우입니다.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며,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입니다. 국민의 손으로 만든 정부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입니다.
어쩌면 이 위기를 넘기는 것이 군부독재 때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몽둥이와 총칼로만 위협하던 그때보다, 지금은 검은 권력이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알아버렸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았습니다. 직접 거리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생계에 발목이 잡혀, 그 생계를 위협하는 주범을 잡기를 포기했었지만 이젠 달라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죽음을 자결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 한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공감이 갑니다. 당신의 죽음은 자결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사전을 보면 '자살 [自殺] [명사]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음.’이라고 되어있고, 자결은 ‘자결 [自決] [명사] 1. 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두 단어의 차이점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자살은 그 순간에서 모두 끝납니다. 남은 이들에게 기억과 아픔과 과오만을 남기며 그렇게 혼자 떠납니다. 자살은 저질러 놓은 삶에서 탈출하는 비겁한 방편입니다.
자결은 자신의 의지와 결백을 증명하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자결은 남은 이들에게 울분과 비통함을 안겨주지만, 억압과 부정적인 현실을 타파하려는 기폭제가 됩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자결한 민영환, 정미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애석함이 없다"(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 라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자결한 박승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 택배비 30원 올려달라 외치다가 목숨을 끊은 박종태. 그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자결입니다.
자결은 후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미 들불은 겉잡을 수 없이 타들어갑니다. 이 불길은 잘못된 것을 추종하고, 자신의 이로움을 위해 국민의 고혈을 짜던 이들에게는 지옥의 겁화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의 죽음을 옹호하는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합니다. 그 방법밖에 없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냥 조금 더 부드럽게, 유연하게 살다가 역사의 심판을 받고 편안히 천수를 누렸으면, 그냥 조금 더 힘들어도 봉하마을 촌로로 살면서 가끔 사람사는 세상에 재미난 이야기도 올리면서 모내기도 하고 김도 메고 말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생 얘기 정치 얘기 조금씩 하면서, 동네 이장처럼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거였냐고 묻고 싶습니다. 벌써부터도 이렇게 그리워지는데 말입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았던 대나무
당신은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그늘에서 쉬면서도 그늘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그저 그곳에 그것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이따금 벌레가 떨어지거나 방해가 되면 불편하다고 느끼기조차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그 소중함을 통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통렬하게 깨달았고, 무엇이 진정 소중한 것이었는지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당신의 성질 그대로 하셨습니다.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최루가스를 그대로 다 마시며 연설하던 성질, 퇴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던 성질, 작통권 회수 반대하던 군 장성들에게 일갈하던 성질. 올바른 것이 아니면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도 거부했던 그 성질 그대로.
눈밭에 혼자 핀 고고한 매화였던 사람아. 차라리 주변히 진흙탕이어도 홀로 필 수 있는 연꽃같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무의미한 소망이 바람에 날립니다. 바람 가는 대로, 휘면 휘어지는 들풀까진 아니어도 언젠가 역사가 증명해 줄 때까지 참고 있었으면 하는 후회같은 바람이 남습니다. 그는 결국 정을 맞는 '모난 돌' 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꺾이면 꺾였지,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영전에 분향하지 않겠습니다. 아직입니다. 이 땅의 모든 검은 권력과 거짓들이 무너질 때까지, 진실을 왜곡하고 정의를 위협하는 펜촉이 부러질 때까지, 진정 국민을 위하는 자들이 통치하고 진실을 보도하려고 애쓰는 언론만이 남았을 때, 그때 당신의 영전에 향 하나 꽃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때 한 번 당신을 봤던 어린이가, 이젠 고등학생이 되어 한 말씀 드립니다.
이 빌어 처먹을 세상에서 참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아직은 당신이 이루려던 이상의 무게가 두렵지만, 올바른 것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꼭 담배 끊으시길 바랍니다.
편히
잠드소서
*출처 : http://www.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1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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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