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분향소를 찾았지만, 내심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아버지 같은 그 분을 어떻게 멀리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겠는가... 계속되는 불안 때문에 결국, 어머니를 설득하여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저녁이라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저녁을 안먹었다는 것도 잊은체, 난 어느새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봉하마을에 가까워 지면서 차들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하나 둘씩 붐비기 시작했고, 입구 근처에는 수많은 차량이 빈틈마다 곳곳에 주차를 해놓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마음으로 오신 분들이구나...검은 옷과 노란 스카프를 하고 온 수많은 사람들...그들은 봉하마을의 입구를 향해서 점점 걸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어느새 도로를 가득 메울 만큼 엄청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 너무나 어두운 탓에 겨우 찍었음...
본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걸어서도 5분이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런데 장장 3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불어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 걸어가면서 여러지역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는 먼저 가도록 자리를 양보해 주는 등 매우 질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봉하마을로 향하는 길에 설치되어 있는 추모 만장의 글귀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고마움의 메시지가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또한 가는 길, 숙연하게 만드는 그의 상징인 촛불 또한 함께했다. 참고로 입구에는 자원 봉사자들이 생수도 나누어 주는 등, 다수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봉하마을 입구의 모습(폰카로 찍어서 조금 떨렸음)
긴 줄을 따라 봉사자들이 나뉘어 준, 근조 뱃지를 달고 어느새 멀리 노통님의 영정사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봉사자의 말에 따라 질서 있게 잘 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으며, 그들이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고 여기에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음 편히 말을 걸수 있는 분들이겠구나..하고 느꼈다.
- 자원봉사자들이 국화꽃을 얼음물에 넣어서 다시 재활용하는 모습
- 가까워지는 노통님의 영정사진...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서 영정 앞에서 절을 드릴 수는 없었다. 국화꽃을 헌화하고 대신, 짧은 묵념으로 대신하고 물러나야 했다. 솔직히 영정앞에 놓인 수많은 국화꽃과 노무현 대톨령님에게 바치는 글귀가 적힌 종이, 노통님을 위해서 만든 소정품들이 놓여 있었는데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몇몇 분들은 묵념을 뒤로 하고 휴대폰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찍고 그랬는데, 차마 나는 죄송스러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상주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아고라 분들이 설치한 자료들...
노무현 대통령님 생가 뒤쪽으로 향하는 길목에 아고라 분들이 이명박 정권과 정치 선전 정책, 그리고 집시법의 대한 내용을 담은 자료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우리 가족은 경찰 집안이라서 아버지는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 였는데, 위에 자료들을 보고서는 어머니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집에서 나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것이었구나...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생가로 향하는 벽에 빼곡히 씌여진 추모글들... 국민의 마음이었고 국민의 외침이었다... 보고 어둠 속에서 남모를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한쪽 곁에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한의 외침들... 어떤 아줌마는 자신이 직접 썼다며 꼭 좀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분노는 두려움도 없었고 가식도 없는 진실된 분노의 외침, 그것이었다.
노무현 생가 맞은편, 노사모 회관의 입구에서 내려다 본 사람들의 수는 내가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많아 졌고, 사람들이 점점 모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진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봤을 때 엄청난 수의 추모 인파였다.
노사모 회관 입구에서 가장 눈의 띈 것들...노통님 부부의 사진을 본 순간, 정말..부모님 같다는 생각이 왜그리 많이 들까... 아마 직접 보면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입구에 우리를 맞이한 노란색의 장미들...그리고 천장에 크게 그려진 노통부부님의 케리커쳐... 살아계셨다면 이것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을 터인데, 이젠 고인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니, 케리커쳐의 미소가 왜 그리 눈물짓게 할까...ㅠ.ㅠ
-노무현 대통령님을 위한 민중의 수많은 편지글들...
-생전, 그의 채취가 묻어있는 옷들...
-노사모 회관안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절을 올리는 나...(폰카로 찍은 사진..)
노사모 회관 안으로 들어가니, 방명록과 아버님에게 남기는 수많은 편지글들...그리고 생전, 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왼쪽에는 영정사진과 함께 절을 하도록 따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나는 사진을 찍다가 바로 줄을 서서 영정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애도했다. 정말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는데 왜그리 마음이 미안한 것일까... 그의 어릴적부터 서거전까지의 사진이 차례대로 벽에 걸려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자연을 사랑한 순수한 사람을... 우리는 왜 뒤늦게야 안 것일까. 언론의 속임수에 속아서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그를 바라보고 비하하였다. 그가 지금껏 보여준 인간적인 사진과 영상들은 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 어릴적부터 함께해온 그의 생활 그 자체였으며 인간 노무현의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눈물이 난다. 한없이 울고 싶었는데, 참았다. 정말 가슴이 고통스럽게 나를 때려도 참아 내며 그곳을 내려왔다.
-지금은 고인의 흔적이 되어버린 케리커쳐..보드.
-발인식을 앞두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시간은 정말 유수같이 흘러갔다. 도착을 했을때만 해도 1시쯤이었는데 어느새 4시가 되었다. 시민들은 발인식을 모두가 잘 지켜보기위해 모두가 앉아서 발인을 함께 지켜보았다. 앞에서서 뒤에 분들을 가리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툼 없이 서로 농담을 하면서 매우 질서있게 잘 지켜보았던 것 같았다.
-아버지의 영정을 모시고 생가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들...
발인을 하고 영정을 생가로 향할 때부터 한두명 씩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울음 소리를 봉마을을 울릴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애통한 감정을 쏟아내었다.
-떠나는 운구차량을 사진에 담는 사람들..
-떠나는 운구차량을 지켜보는 사람들..
-차량에 설치된 그의 영정사진...이젠 편히 쉬시옵소서....ㅠ.ㅠ
- 이젠 가슴 속에 지니신 고통 훨훨 털고 하늘로 비상하시길 빕니다..ㅠ.ㅠ
- 운구차를 보내기 한타까워, 어루만지는 명계남씨...
- 발인이 끝나고 추모는 계속되었다...
- 지금도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ㅠ.ㅠ
국민은 노무현이라는 아기장수를 낳은 부모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둠의 권력층에 홀로 저항하다 자결한 아기장수...그는 이제 부엉이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국민들은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통한의 눈물을 훔치고 있구나... 곧은 소나무 같은 노무현이여..그의 영혼은 이제 고통의 나날에서 해방되리리.. 이제금 자연의 한조각이 되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 이제는 그를 볼 수 없는 생가입구....
- 그를 뒤로하며...
- 이제는 볼 수없는 그의 생가....ㅠ.ㅠ 왜 이제서야 왜...돌아가신 후에 뵈러 왔는지...죄송합니다..한없이 죄송할따름입니다.....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엉이 바위는 울고 있다.
그의 영정앞에 바치는 시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원했던 원대한 생의 본질적 희망을...
첫키스의 강렬한 환희의 태양을
가슴 깊은 외침과 부러지지 않는 곧은 의지로
어둠 속의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그는 울림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어둠의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의 뜨거운 햇살은 괴로움의 눈부심이었으리.
홀로 남겨진 그에게 돌을 던지는 민중들이여
그돌의 무게는 또 하나의 어둠의 벽으로 쌓였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이들이여.
그는 전쟁과 같은 인생의 한줄기 희망을
쓰디쓴, 담배 연기로 대신하려 하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생의 본질을 위해 과연 그에게 전쟁의 삶을 부여 하여야만 했는가.
이슬 맺힌 새벽 안개 속의 부엉이 바위는
울고있다.
대한민국은
울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