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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선생님들 보세요. (바른 가르침은 → 바른 삶의 모범)

조영국 |2009.06.01 22:20
조회 74 |추천 0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몇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중 '교육'의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교육에 깊은 관심은 갖지만, 갈수록 무너져 내리는 교육의 현실, 그 안에서 교회 내의 주일학교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의 논제 입니다.

 

교육은 크게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공교육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초.중.고등학교의 제도권 학교를 가르키며, 사교육이라 함은 학원.과외 등의 개인별 맞춤 학습에 가까운 것을 가르킵니다.

 

공교육은 많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으로 보편성을 뛰며, 인성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생각됩니다.

반면, 사교육은 특수성을 뛰며 공교육에 비해 소수의 학생들이 인성이라는 목적보다는 성공이라는 목적에 탁월한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보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두 곳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 발전 시키려 했지만 결코 해결되지 못하고 그 간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지고 있습니다.

 

인성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시대의 빠른 지식 발전에 못 미치는 공교육과 빠른 지식의 발전에는 부응하지만 인격을 저하시키는 사교육의 현실 앞에 시간이 무엇인가를 해결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한물 가버린 옛날 이야기나 다름 없습니다.

 

교회 내의 주일학교 교육은 이 교육 가운데 사교육의 범주에 들어 간다고 생각됩니다. 사교육의 범주에 있지만 학생들의 인성을 키워주는 교육기관 입니다. 

주일학교의 교육은 주로 신(神)에 대해 가르치는 것으로 현실의 교육(공+사교육)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비현실적 교육으로 비춰집니다.

 

일주일을 7일로 구성했을 때 3.4일은 공교육의 현장에서 또 3.4일은 사교육의 현장에 서 있는 우리 학생들이 마치 C.A와 같은 개념으로 그중 0.2일을 교회의 주일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0.2의 시간을 가지고 주일학교의 선생님들이 신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을 능가하는 아주 말도 않되는 일로 생각됩니다.

 

이런 현실 앞에 교회 교육은 특유의 성질을 버리고 0.2일의 시간 마져 학교와 학원 앞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학교의 시험 철이 되어서 학생들이 교회를 오지 않는 것은 학생 스스로 갖는 부담감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이미 교회의 어른들과 선생님들의 생각 안에는 시험철에는 예외라는 특별 조항이 자리 잡음으로 우리의 마지막 남은 0.2일의 시간을 갈아먹게 만들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주일 학교라는 특수성을 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리킬 때에 바른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바른 지식의 전달이 중요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키는 것의 첫째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가르킬 것은 '하나님'입니다. 세번째.. 그 이후 순서에서 우리가 가르킬 것은 모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외에 무엇인가를 가르킨다는 것은 방법론과 접근성, 현실성의 문제에서는 아주 뛰어난 방법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그것이 오리지널(original)이라고는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것들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은 해내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존재의 현실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20장에서 말하는 그 믿음과 같은 맥락에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재, 장소, 재능, 학생, 교사, 운영, 상황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막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위의 전제들은 모두 가르치는 것들을 어렵게 할 뿐 막히거나 단절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문제 가운데 더욱 담대히 말씀과 기도, 땀방울로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승리의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지식 전달. 즉, 하나님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가 일차적으로 집중해야 할 교육의 목표입니다. 바른 가르침 만이 바른 목적으로 인도해 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삶의 모범이 필요합니다.(물론 우리의 삶이 바르다는 것 자체에 모순이 있습니다. 이 모순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성화'라는 교리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왜 지식의 전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키는 자의 삶까지도 중요한가의 문제에 대해서 저는 '체험.경험'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말하고 싶습니다.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말 할 때에 우리의 학생들에게 그것은 글(text) 이외의 어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A라는 공식을 가르키고, 선생님은 B라는 공식으로 문제를 풀며 다시 학생들에게는 A라는 공식을 주입 시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문제의 공식으로 설명 할 때에 오는 이 공식의 차이는 복수가 가능하지만, 기독교 진리를 가르 칠 때에 이 공식은 단수만 가능하므로 공식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맞는 공식과 틀린 공식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가르치는 것과 현실과의 차이(gap)가 가져오는 혼돈(chaos)은 오히려 학생들의 인성을 피폐(疲弊)하게 만드는 더 극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바른 가르침은 → 바른 삶의 모범을 통해서 완성 될 것으로 보여진다.[물론 이것은 인간적측면의 이야기이다. 이 모든 것의 기조(基調)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한 때 승승장구하던 주일학교 교육이 현재에는 매번 패배하는 시점에서

 

바른 가르침은 → 바른 삶의 모범

 

을 통해 완성 된다는 논지는 우리 교사들이 바위에 새기는 것이 아닌 마음에 새겨 가져야 할 중요한 지침이다.

 

 

2009. 6. 1.

 

 

조영국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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