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MBC PD수첩이 방영되었다. 시청률은 평소 때와 크게 다름없는 10% 정도였다고 하지만, PD수첩이 방영되고 나서 그에 대한 파장은 생각보다 큰 거 같다. TV가 집에 없는 나 같은 사람도, PD수첩이 방영되고 나서 인터넷으로 영상을 다시 봤으니 말이다. 보는 내내 자꾸만 드는 무거운 마음을 나는 어찌할 수 가 없었다. 언론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필터를 들이대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겠지만, 맹목적 팩트주의를 경계한다 하더라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누가봐도 시민들의 집회는 공격적인 무장집회가 아니었다.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70-80년대의 시위대처럼 전경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이라면, 전경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무력행사와 체포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집회하는 사람들 가운데 시민들을 악의적으로 선동하여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극좌파 세력들이 만약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들의 시위대 진압 방법은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고 힘자랑하는 조폭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시민들의 통행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아무런 원칙없이 관광온 일본인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집회와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미란다 원칙의 준수없이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체포하는 것을 지금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매주 설교를 해야 하는 교회 전도사이다. 설교는 은혜스럽고 회중들이 듣기에 부담 없어야 하며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법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원칙을 성실하게 잘 지키고 있는 편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회중들 앞에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잘 웃고 농담을 하면 그들은 좋아한다. 물론, 이것은 회중들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에게 무언가를 말해야 하지 않냐는 부담감을 계속 느끼게 된다.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교회의 장로님이다. 물론, 나는 그를 지지했고, 나는 지금도 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가 장로인 까닭에 대부분의 교회는 그에 대한 지지를 보냈으며, 지금도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성경적인 가치관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한 유대인의 회당에도 들어가시고, 민중들에게 들어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늘 그들에게 하실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며 그들과 소통하려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 정부와 국민은 코드가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소통의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중에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 13:29)”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용납하고 함께 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시위대 안에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는 극좌파 세력들이 있다 하더라도 선량한 시민들은 함께 보호해줘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인과 지적장애인, 청소년, 선량한 여러 시민들까지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곤봉에 함께 고통받아야 하는가? 시민들은 아무 이유없이 로마군병의 채찍질에 고통당하고 온몸이 찢겨진 예수님이 아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레포트와 씨름하면서도 답답한 속을 붙잡고 몇자 끄적거려 보았다.
"Was soll ich t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