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시국선언에 반발하여 보수우익단체(뉴라이튼지 뭔지하는 스스로 보수우익 단체임을 자처하지만 그 실상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마지못해 MB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친미친일사대주의 기회주의자 기득권연합에 불과한 집단)들도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내 놓으면서 한국 사회의 보수vs진보 갈등(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민망하지만...)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우익단체(다시 말하지만 친미친일사대주의 기득권연합으로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짓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조차 하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의 조직적인 자기합리화를 위한 단체)들이 이 사회의 혼란을 그저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겠다고 나섰다.
모 대학의 총장은 실제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은 해당 학교 전체 교원들 1786명 가운데 6.9%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고, 모 신문의 칼럼에서는 이러한 총장의 지적에 대하여 정파적 색채를 띤 일방적인 시국선언이 전체 대학사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한 지적이라 평하기도 하였다. 릴레이식 시국선언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교수들은 성명을 통해 "침묵하는 다수를 무시하고 시끄러운 소수가 우리나라의 민주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물론 모 대학의 총장과 모 신문의 칼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대학을 비롯한 이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한 의견들이 바깥으로 실제로 표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누가 침묵하는 그들을 대변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먹고 살기 바빠서 (그저 개인 블로그에 키보드나 두르리면서 글이나 찌질거리고 있는)'침묵하는 다수' 가운데 한 명인데, 내가 만약 이 글을 쓰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 시국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내가 아무런 표현을 하지도 않았는데 이를 어떻게 알아서 대변한다는 말인가? 보수우익단체(계속 강조하지만, MB를 추종하는 사대, 기득권수호, 기회주의자 연합)들 가운데 누군가가 독심술 내지는 관심법으로 침묵하는 내 의중을 파악하지 않은 다음에야 말이다. 결국 이들의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겠다는 말은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는 물어보지도 않고서는 날로 먹으려는 날강도 심보에 불과하다.
그 날강도 심보를 내가 살짝 빌려 가겠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시라.
전 국민의 50%도 안 되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그 투표율 중에서도 50%가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된 2MB는 침묵하는 다수를 비롯하여 전 국민의 75%가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이다. 자 침묵하는 다수를 빌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설령 백만번, 천만번 양보해서 시국선언의 목소리가 실제로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치자. 그렇다 치더라도 소수라는 이유로 사회 한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평가절하하고 무시하고 귀를 닫는 처사는 과연 바람직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원리에 합당한 것인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소수를 짓밟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다. 힘을 가진 자가 힘 없는 자를 위해 양보하는 것은 관용이다. 폭력과 관용, 어떤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가까울까?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며, 대화와 타협은 상호 이해, 관용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의견이 백 명의 의견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서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고로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소수 의견이든 다수 의견이든 관계없이 경청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