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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바라보며 국민을 밟고 가다

김용호 |2009.06.14 09:25
조회 122 |추천 1
<STYLE type=text/css>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은 그가 어디에 앉아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6월4일 낸 성명을 보자. 그는 “국민의 기본권은 정부의 선심으로 보호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이 한 문장으로 안 위원장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국가에 구걸해야 하는 처참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폭로했다. 그는 시선의 마주침의 대상을 권력이 아닌 국민으로 설정한 셈이다. 같은 날 강희락 경찰청장도 경기지방경찰청을 찾아 한마디 했다. “집회를 하다 보면 정치집단화할 수 있고, 많이 모이다 보면 도로까지 깔고 앉아 불법 폭력시위로 번질 우려가 있다. 서울광장의 개방은 집회를 여는 시위 주최 쪽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인가에 따라 판단하겠다.” 경찰의 총수가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경찰이 집회의 성격과 모이는 이들의 성향을 자의적으로 판단한 뒤 집회 승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초헌법적 발언은 그가 시선을 맞추려는 게 국민이 아닌 청와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경찰이 휘두르는 언어의 폭력이다.

» 5월30일 저녁 7시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도로를 행진하던 중 연행되고 있다. 오른쪽에 색소 섞인 물총이 분사되는 모습도 보인다. 이날 연행된 72명은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지만 일단 경찰서에서 48시간 가까이 붙들려 조사를 받았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강희락 경찰청장 ‘집회 허가제’ 운용 시사

비슷한 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표적인 게 ‘상습 시위꾼’이라는 말이다. 헌법에 연원을 둔 ‘시위’라는 말에 경찰은 앞뒤로 부정적 냄새가 강한 단어들을 갖다붙임으로써 시위를 국민 의식 속 뒤주에 가두려 한다. 시위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상습’이라는 모욕적 단어를 앞세우고, 그러한 이에게 ‘꾼’이라는 비하적인 꼬리를 다는 경찰은 누구와 눈을 맞추고 있는 걸까? 강 청장의 말에서처럼, 집회·시위를 ‘상습’적으로 금지하는 경찰의 수뇌‘꾼’들이 틈만 나면 던지는 “불법 폭력시위로 번질 우려”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시위’ 앞에 ‘불법’과 ‘폭력’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들을 갖다붙인 뒤 역시 좋은 때는 쓰이지 않는 ‘번지다’란 동사로 방점을 찍는다. 그런데 그 ‘우려’를 하는 진정한 주체는 청와대일까, 국민일까?

경찰은 그 언어를 통해 폭로된 스스로의 정체를 거리 위에서 폭력적으로 구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다음날인 5월30일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 천막 철거 사건은 경찰의 폭력이 조직적으로 표출되고 또한 은폐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날 새벽 경찰은 잠시 해제됐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버스 차벽을 다시 쌓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이 다녀간 대한문 앞 노란 분향소 천막을 전·의경을 동원해 부숴버렸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작전지역을 벗어난 전·의경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떠넘기기라는 비난 여론이 일자 강희락 경찰청장은 감찰조사를 지시했고, 그 결과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황아무개 기동1단장과 장아무개 기동본부장의 ‘우발적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제대로 된 사과나 변상은 언급되지 않았고 주 청장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는 해명이 되지 않았다.

경찰의 천막 철거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에도 똑같은 자리에서 벌어진 바 있다. 이날 오후 4시께였다. 최초의 촛불상근직을 자임하고 나선 누리집 필명 ‘다인아빠’가 텐트를 펴려는 순간 대한문 앞을 포위하고 있던 전·의경들이 다가와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인아빠가 “친절함이 고맙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의경들은 텐트를 휙 낚아채 광화문 네거리 방향으로 들고 간 뒤 잘게 부숴버렸다. 지난해 촛불 회원들의 회비 30여만원으로 산 소중한 텐트였다. 폭우가 퍼붓던 8·15 집회 때 명동성당 앞에서 촛불들에게 한우 설렁탕을 나눠줄 때 비를 가려주는 등 촛불의 역사와 함께했던 텐트는 그렇게 박살났다. 다인아빠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보다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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