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스크랩] 모성애(마더), 아직도 가야 할 길?

정건희 |2009.06.20 23:27
조회 85 |추천 0

아래 글은

YMCA연맹 블로그에 이혜정 간사님이 올린 글에
답글 달면서 "모성애와 지도력"에 대한 부분에 대해 소통한 글입니다.


아래는 이혜정 간사님 글입니다.

 

ㅋㅋ 흔들리면 피는 꽃은 마녀의 전용 게시판인가요?
다들 여기다 글 좀 쓰삼... 이것저것 수다 떨기 좋쟎아요...

제가 며칠 전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보았답니다...
서울 오면 이명화 간사님네 집에서 지내는데 그날 밤 친구들이 온다고 해서
시간이나 보낼 생각으로 본 영화였는데 기대 보다 훨씬 좋았어요...

뭐냐... 그간 "모성애는 신화다.. 특히 잘 나가는 남자들이 만든..."이라고
끈질기게, 밑도끝도 없이, 무작정 주장하던 저에게
뭔가 논리적으로 "모성애는 허구"라고 확신을 주는 영화였다고 할까요...
사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반전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게는 모든것이 계획된 것이고 예정된 사건으로 보였다고나 할까요...

아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세계에 갇혀서 반쯤은 바보처럼 반쯤은 정상인처럼 살고 있었고
엄마는 경계선에서 서서 엄마로 부터 독립할 가능성이 없는 아들의 상태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으니까요..
아들은, 엄마의 세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 세계의 룰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영화를 본 밤부터 읽게 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에
이 엄마의 심리가 너무도 잘 묘사되어 있더라구요...
그는 애착과 사랑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애착은 영혼이나 생명의 유무에 상관없이 느껴지지만
사랑이란 영혼과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해 느끼는 것이다(애완동물에게는 애착, 인간에게는 사랑),
사랑은 상대방의 정신적인 성장에 관심을 두는 반면 애착은 그렇지 않다,
사랑의 크기는 책임의식과 지혜와 비례하지만 애착은 상관없다고 말하는데,
스캇 펙의 이론에 따르면 
엄마는 아들에게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절대 사랑하지는 않았던 거죠...

아들이 삶의 고통과 고해를 극복하면서 영혼이 성장하기도록 돕기 보다는
"바보라고 놀리면 꼭 때려줘라", "한대 맞으면 꼭 두대 때려라"는 식으로
눈 앞의 문제를 아주아주 폭력적으로 해결하도록 부추겼거든요.
저는 이게 우리나라 모든 엄마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엄마 될까봐.. 저는 엄마를 안 하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특히 성공한 남자들의 어머니(모성애) 찬양은 매우 볼성사납습니다.
왜냐면.. 어머니의 헌신과 봉사도 그렇거니와 자기 동생들, 누나들의 봉사와 헌신은
그대로 묻혀지기 십상이고 그 사이에 아버지는 뭘 하고 있었는지...
그 성공한 아들이 어머니를 독차지하는 동안
그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할 따름이고
그 모성애를 과연 인류애라고 할 수 있을까... (남을 죽이더라도 너만은 살라는...)
뭐 이런식의 반항심이 생긴다는 거죠..ㅋㅋ
그 어머니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잘난 아들을 만났을 뿐이다..
이런 식의 냉소가 넘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ㅋ

결국.. 저는 이게 사랑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죠..
보편적이지도 않고 호혜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폭력도 불사하는 이 감정을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며 신성시 해야 되느냐... 인간으로써 말이죠...
우리 어머니가 알면(제가 이렇게 발칙한 생각을 하는줄 우리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뒤로 넘어가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보편적이고 호혜적이며 자각적인 모성애가 아니라면 "아니올시다" 사양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없는 제가.. 이렇게 주장하는게 철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스캇 펙도 말했다시피
자신을 확장(또는 헌신) 함으로써 누군가의 영혼 또는 정신의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그가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상관없이
그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확장(또는 헌신)한다고 할 때...
먼저 "자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지향과 마음, 영혼 따위가 있어야 이걸 부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가는 변증법적 발전도 가능할 것이며
이것이 있어야 자기를 확장 또는 헌신할 수도 있다는 거죠...

회원들을 사랑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간사나 실무자들이라면야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회원들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간사라면
자기 훈련에 대해 무엇보다 몰입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더처럼 될테니까요...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대의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는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보편적이고 호혜적이며 자각적인 사랑을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때때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회원들을 포함해서)이 당하게 될 고통이나 어려움이 예상될 때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게 되고 걱정과 두려움이 느껴지더라도...
제가 그들에 대해 가진 책임의식 만큼, 그들에 대해 가진 지혜만큼 
그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그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그들의 고해를 함께 하는 만큼 저 역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결국...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도 둔감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현실을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없을 거라는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마더처럼요..

사실 인류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 조차 한번에 한 사람씩 사랑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사랑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고통을 피하거나 고통에 맞서기 보다는 
고통을 포월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어떤 회원을 하루종일 생각하면서
결심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글을 쓰는 동안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 회원에 대한 저의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어제 오후부터 꼬박 24시간 동안 제 마음을 부글거리게 했던 분노와 복수심을 조용하게 가라앉혔다는
놀라운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싶군요. ㅋㅋㅋ

 

아래는 정건희 답글입니다.

 

간사님 잘 지내시죠...
자주 들어오는 연맹 블로그에 간사님 글 보면 즐겁습니다.
온라인에서 인스턴트 음식 맨날 먹다가
한식당에서 정식 먹는 기분이예요..
고맙습니다.

이 글 읽으며... 조금 생각했는데... 이해가 어려워서 몇가지 여쭙습니다.

애착과 사랑???
어머니의 사랑과 애착의 비유???

저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어머니에 대한 모성애에 대해 간사님이 비유하신 내용과는 전혀 다르겠죠.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한답니다.

저는 보편적이고 호혜적이며 자각적인 모성애가 아니라면 "아니올시다"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일(?)을 정확하게 하고 아이들을 주체적으로 키우고
주변의 다양한 관점도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를 뜻하는건가요?

자신을 확장(또는 헌신) 함으로써 누군가의 영혼 또는 정신의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그가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상관없이
그는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자신의 확장(=헌신),
영혼, 정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 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투자의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셨는데...
이 부분 또한 이해가 안됩니다.

상대방을 위해, 행하는 것 그 자체가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부분 어렵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머니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저로서는
영혼, 정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식과 자신의 확장이라는 간사님 말이 복잡합니다.

제 어머님의 방식과 차이가 있게 느껴져서요.
제가 고교 때 아버님 하늘나라에 보내시고
너무 힘겨운 환경이었지만
어머님 혼자서 삼남매 몽땅 키우시며
어떻게든 아이들 위해 살아가시려 노력하시려 하는
그 모습 자체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 또한 쉽지 않은 삶이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본을 보이시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간사님이 말씀 하신
"자신을 확장(또는 헌신)한다고 할 때...
먼저 "자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셨는데, 그 자기란 저희 어머님의 예를 들면
어떻게 하셨어야 할까요?

이 부분이 이러한 비유와 맞지 않고
아래 글처럼 간사 자신의 자주성이나 주체성에 대한 부분과 학습과 훈련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 하신 거라면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회원들을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간사라면
자기 훈련에 대해 무엇보다 몰입하고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더처럼 될테니까요...
하셨는데요...

또...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고통을 피하거나 고통에 맞서기 보다는
고통을 포월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썩은 사과 이론(그냥 지어낸?)마냥...
사과가 조금 썩었으니(요즘 세상 모두 그렇다..뭐 그런..) 버리지 말고 그 사과 몽땅 먹을 수 있는
튼튼한 자기 위를 키워라... 뭐 이런 말씀인지요?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이 이러한 튼튼한 바탕을 만드는 일이라 강조하신건가요?

 

 

  아래는 이혜정 간사님 답글입니다.   2009.06.20 10:33:26 (*.127.82.121) [레벨:1]차칸마녀
흠...  간사님.. 반가와요. 우리 대전에서 슬쩍 보고 제대로 얘기한적이 없네요.
그간 득녀도 하시고... ㅋㅋ 즐거운 일이 많으셨다고 들었어요. 축하해요...

그러니까.. 저는... "모성애는 본능이다" "모성애는 모든 사랑중에 우위이고 모든 역경을 뛰어넘는다"
이런 것이 말도 안 된다는 회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고 노력하고 학습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뜻이죠.(이게 자기 확장이고 헌신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러니까 우위를 따질 수도 없고 모든 역경을 뛰어 넘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아들을 잘 키운 것은 모성애가 아니라 그 엄마의 독특하고도 헌신적인 인간성입니다.
물론 엄마조차 모성애에 최면되어 있기는 하지만요...)
성공한 아들들은 특히, 엄마의 인간성(욕구)을 존중해야 합니다. 은혜를 갚겠다, 이런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모성애에 대한 이러한 신화 때문에 부모가 자식한테,
특히 엄마가 자식한테, 특히 엄마가 아들한테 하는 모든 짓이 쉽게 용인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엄마이기 때문에 불합리하게 자기 자식(아들)을 두둔하고 비이성적으로 아들을 용납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분위기라는 거죠.
저는 이런건 애착이라고 봐요. 사랑이 아니죠.
그런데 이러한 구조 안에는 대단히 여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마더에서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면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딸간의 애증에 관한 영화는 많아도
아들-엄마에 관한 실제적인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는 것만 봐도 
우리가 가진 엄마-아들 간의 모성애에 대한 신화가 얼마나 지배적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 "마더"에서 모성애를 보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보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모냐면.. 허구적인 모성애를 신화화 함으로써 안 그런 엄마들(직장 다니는, 혹은 일에 열정적인)이 죄책감 느끼게 하고 자식은 엄마소관인거처럼 만든다는 거죠.  가난한 시절에는 아들 한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온 집안 식구들이 자기 인생을 살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가난하지 않은데도 유독 엄마만은 아직도 그래야 하는 것 처럼 생각한다는 거죠. 제 생각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대부분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런데 모성신화가 지배적인 한 아이 양육의 사회적 책임은 구호일 뿐입니다. 
 
동시에 저는 우리 엄마가 나에게 "너 만은 꼭 성공해야 된다"거나
"너 만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랑이란, 스캇펙에 따르면 "지각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있게 칭찬하고 지각있게 바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입니다.
자기 확장이란 이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지각을 늘 연마하고 훈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랑이란 그 목적이 늘 상호간 정신적 성장에 있습니다.

인생이란 거, 삶이라는 거, 생명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져서 존재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함석헌 선생님 말대로 "살라는 하늘의 명령"인 것이죠.  
어쨌든 살게 되어 있는 이 인생이 고해라는 펙이나 에리히 프롬이나 부처의 말에 완전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때문에 우리 인생이 고해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해를 고해라고 이해하지 못하고(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지못하고)
고해를 피해가려고만 하면 정신적 성장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화적 모성애는 자식이 그 고통을 피해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각된 사랑만이(이건 모성애건 아니건, 어떤 사랑이건간에)
그 고통을 품고 넘어서(포월임다... 초월이 아니라)
영혼이 성장하게 한다는 것이죠.

저는 YMCA운동이 정신운동이고 자율적인 개인의 성장을 위해 훈련하고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원들이 튼튼한 위를 키우게 하자는 것 보다는
사과가 썩었다고 말하고
썩지 않은 사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좋은 사과를 재배해서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려면 늘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가 먹어왔던 그 썩은 사과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필요하고
자기가 왜 그 썩은 사과를 인식하지 못했는지 자기 성찰, 고백도 필요한 법이죠.
이것이 자기 고통을 포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회원활동이란게 쉽게, 재밌게, 즐겁게... 만은 안될거라는 거죠
개인과 조직에는 늘 위기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피하게 해서는 안된다... 실무자 스스로도 이걸 피할 생각을 먼저 해서는 안된다.. 뭐 이런뜻? ㅋ

그러니까.. 뭐... 더 단순하게 말하면...
도전과제, 고통스럽거나 어려운 상황... 이런것이 다 나와 회원들의 성장을 위한 기회다..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해가려하고
오히려 이걸 감수하려는 회원들을 자기 틀안에다 가두고 자기 규칙으로 통제하려고 꼼수를 쓰면
안... 된... 다... 뭐 이런 정도 입니다...
  아래는 정건희 답글입니다.      2009.06.20 23:17:15 (211.109.2.3) [레벨:3]생명

아~~ 간사님 감사합니다.
많이 배운 글입니다.

허구적이며 신화적인 모성애의 문제
우리 아이와 남의 아이의 철저한 이분화
스캇펙의 사랑
YMCA운동, 정신, 자율적인 개인의 성장, 훈련, 교육
튼튼한 위보다는
사과가 썩었다고 말하고
썩지 않은 사과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더 좋은 사과를 재배해서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훈련
용기, 자기가 먹어왔던 그 썩은 사과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필요하고
자기가 왜 그 썩은 사과를 인식하지 못했는지 자기 성찰, 고백도 필요한 법이죠.
이것이 자기 고통을 초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장을 강하게 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에 솔깃했을 때가 있었어요.
아이들이 상처 입고 힘겨워지는 게 싫었죠.
세상의 환경적 문제를 바라보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너희들이 강해져야 한다...
뭐.. 이런 논리였죠.

썩은 부분에 대한 바탕을 변화시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죠.
그걸 하기 위해 아이들 개개인의 자기 주체성, 자주성이 강화되기를 바랬지요.
당연히 와이 안에서 아픈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 경험의 양이 현재 우리 와이 안에서
어느 정도의 질적 성숙을 가져 올 수 있는 깊이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꽤 회의적이었어요.

그래도.. 그 안에서 환경적 내용을 구성하고
실무선에서 훈련시키고 함께 하는 게 주라 믿고 움직이죠.
실무자들의 한계가 존재 하나 그 안에서
끊임없는 토론과 학습과 훈련 안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이죠.
그래야 되겠지요.

간사님 말씀대로 YMCA 정신운동에 대한 부분은
공감하는 바 크죠,. 그래서 이곳에 있지요.
그래서 가끔 아프기도 하지요.
공감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에
많은 꽃들이 흔들리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조만간 뵈어요.
보고잡습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