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페라 하우스
총공사비 500억원이 투입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000. 11월 착공하여 2003년 7월 준공과 함께 2003년 8월 7일 역사적인 개관을 하게 되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지면적 2,620㎡, 지하2층 지상4층 연건평 5,200㎡으로 오페라 등 무대 공연작품 전용공연장이다.
독립 오페라극장으로는 전국 유일한 공연장으로써 주요시설로는 객석은 1,508석(장애인석 16석 포함), 무대면적 450평(주무대는 113평), 분장실 10개소, 지휘자실 2개소, 연습실 7개소이고, 그밖에 휴게실 2개소, 까페, 아트숍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등 공연예술 활성화를 통하여 시민에게 보다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게 될 것이다.
2. 코오롱 야외음악당 (야.당)
코오롱 야외음악당은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민선 문 희갑 대구시장이 코오롱 그룹에 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1997년 7월 23일 두류공원 임업시험장 건설현장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그 해 10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 이 공연장은 부지 3만평에 공연장 1만 7백평 (좌석 12,700석, 최대수용인원 13,400명), 잔디광장 1만 9천 3백평으로 건립된 대규모 문화공간으로 1999년 10월 개장하였다.
지하1층으로 꾸며질 공연장의 무대가 총170평이고, 70평 짜리 연습실이 4개나 마련되며 총 334평에 분장실과 탈의실 등이 22개실로 꾸며진다.
또 객석은 27,000석 인데 1천여석이 고정객석이며 나머지는 잔디객석이다.
국내 최대규모인 야외공연장은 대구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코오롱 그룹이 1백 30억원을 투자하여 시공하는 등 총공사비 200억원이 소요되는 공사로 완공과 함께 대구시에 기증된다.
이 공연장은 대구 문화 예술 회관, 두류 인물동산, 두류 운동장 등이 인접한 두류공원 일대가 명실상부한 종합문화체육공간으로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3. 제일교회
대구 제일교회는 1893년 4월 22일 당시 부산에 주둔하던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배위량 목사의 초도순행에서 시작하여 1896년 현 기지를 구입하고 1897년(광무1년) 봄 안의와 선교사가 내구하여 본격적인 교회로 설립되었다.
그 후 교세가 계속 확장되어 1933년 9월에는 신도들의 현금과 지방교회의 성금으로 현재의 벽돌조 교회당을 건축하고 1937년에 이르러 5층(높이 33m), 연13평의 종탑을 세워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한 대구경북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약전골목 내에 자리잡고 있다.
초창기의 제일교회는 복음전파와 함께 제중원(동산병원의 전신)을 세워 의료활동을 펴 나갔으며 대남교회, 신명여학교를 건립해 근대교육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최근에는 동산동에 새교회가 건립되어 신도들이 모두 그 건물로 옮겨갔으며 이 건물은 교육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근관광지로는 약령시, 동아쇼핑센터, 대구 관덕정 천주교 순교 기념관, 서문시장이 있다.
유형문화재 제30호이다.
4. 계산성당
이 성당은 처음에는 한식 기와집의 십자형 성당으로 세워졌으나 이듬해인 1901년에 원인모를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로베르 신부는 서상돈, 김종학, 정규옥 등의 협력으로 1902년 소실된 장소에 다시 고딕식 벽돌건물로 준공하여 1903년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건립된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서울, 평양에 이어 세 번째이고 영남지방에서는 최초의 것이었다.
그 후 1911년 천주교 대구교구가 설정되어 주교좌성당이 되자 성당을 증축하여 종각을 2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확장하여 1918년 12월 비로소 현재의 성당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성당은 대구지방에 천주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상징하는 건조물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서양의 건축양식이 대구에 도입된 표본이기도 하다.
계산동 성당은 천주교 전파 과정의 고충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건물이다.
천주교는 19세기 초반부에 이미 대구에 들어왔지만, 계속되는 박해로 인해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산간벽지가 천주교도들의 주 활동무대가 되었는데 신나무골, 새방골, 한티마을 등이 그 대표적인 성지이다.
그 후, 1886년에 체결된 조·프조약을 계기로 천주교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바로 그 무렵, 신나무골에서 은신하던 로베르 신부가 세상에 나서면서 세운 성당이 계산동 성당이다. 건물은 적·흙색 벽돌을 적절히 섞어 고딕양식으로 지었으며, 전체적으로 라틴십자형을 이루고 있다. 서쪽 출입구 좌우에 2기의 종탑을 세우고 그 사이에 장미꽃잎 모양의 창을 내어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계산동 성당은 영남 최초의 고딕양식 성당으로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산동 성당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남산동은 대구 천주교의 발상지로, 가톨릭 대학을 비롯해 교구청, 수녀원, 성모당 등이 거대한 가톨릭타운을 이루고 있다. 특히, 프랑스 루르드 동굴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성모당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이다. 적·흙 벽돌과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아름답고 정교한 건물로, 대구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5. 관덕정 순교 기념관
연구산에서 조금 서북쪽으로 내려선 곳에는 아미산이 있었다. 적십자병원에서 반월당 네거리에 이르는 곳에 언덕을 이루었던 이 산은 여인의 눈썹처럼 생겼다고 하여 아미산(娥眉山)이라 불렀다.
옛날 이 일대에는 무과시험을 관장했던 관덕정이 있었으며, 무사들이 무예를 닦던 연병장이 있었다.
또 아미산은 국법을 어긴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 있었던 곳으로, 경상도 지역 천주교 순교자들이 무고한 생명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대구대교구는 가톨릭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관덕정 순교기념관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뜻을 높이 받들었다.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동아쇼핑 건너편 적십자병원 뒤 편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지어졌다. 건물 지하에 성인의 유해를 모신 성당과 생활전시실이, 1층에 흥선 대원군의 척화비가, 2층에는 천주교 교우촌과 순교자들의 유물이, 3층에는 대구 유일의 성인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자료와 누각이 있다. 기념관은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개관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6. 서문시장
조선시대 3대 시장의 하나이며 한강 이남의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총6개 지구의
상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목직물, 의류 등 섬유관련품목이 주종을 이루며 청과물, 건해산물, 신발 등의 도.소매가 이루어진다. 냉난방시설, 대형주차장 등 편리한 시설이 완비되어 다양하고 저렴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7. 달성공원
달성공원은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원래 대구의 옛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토성 ‘달성’은 사적 제 62호로 우리나라 성곽 발달 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성곽으로 ‘달성공원’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토성에서 유래한다.
공원에 들어서면 잔디밭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느릅나무·느티나무·이팝나무 등의 전통수목과 색색의 화초들이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져 있다.
달성공원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는 곳은 동물원이다. 1970년에 문을 연 이 동물원에는 코끼리, 사자, 원숭이, 물개, 타조 등이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또, 공원 곳곳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큰 인물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 중에서도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만민평등사상으로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의 동상과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비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외에도 경상감영의 정문누각인 관풍루와 향토역사관이 들어서 있으며 현재 시민을 위하여 각종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공원이다.
잔디광장(26,446㎡)이 시원스럽고 전망이 좋고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사적지와 동물원이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산교육장으로 이용되며 자연생 거수목과 조경수가 조화된 도심의 푸른숲으로 시민의 휴식과 정서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토성 : 길이 1,300m, 폭 66m, 높이 4 - 10m
동물원 : 포유류 - 호랑이 외 27종 91마리, 조류 - 타조 외 53종 505마리
어류 - 비단잉어 외 1종 837마리, 천연기념물 - 조류 10종 30마리
그 외 이상화시비, 산책로 물새장, 최제우 동상, 어린이 헌장비, 달성서씨 유허비, 꽃동산, 석주선생 이상룡 구국기념비, 매점·휴게실 1곳과 화장실(5개소), 정구장 그리고 음수대 5곳의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8. 경상감영공원
경상감영공원내에 현존하는 선화당은 경상감영의 정청으로 쓰이던 건물로 우리나라 전체에서 현존하는 관아건물의 실례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66년 경상북도 청사가 산격동으로 이전하고 난 후 1970년 중앙공원 조성 때 보수되었다.
1601년(선조34년) 경상감영을 대구로 이전하였을 때 선화당, 응향단 등 여러채의 건물과 함께 지어졌다.경상감영공원은 400년 전 대구로 옮겨온 경상감영이 처음 자리잡았던 곳이며, 그 터를 영구히 보존하자는 취지로 1970년에 첫문을 연 (구)중앙공원 자리에 담장을 허물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어 1997년 10월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경내에는 경상감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대구유형문화재 제1호)과 처소인 징청각(대구유형문화재 제2호)이 세워져 있으며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27기)가 있다.
이 공원은 푸른 숲과 아름다운 꽃, 잘 정돈된 잔디광장, 무더위를 해소시켜주는 분수, 아늑한 산책로와 벤치 등이 마련되어 있어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조용한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선화당(宣化堂)
선화당은 선조 34년(1601) 안동에 있던 경상 감영을 대구로 옮겨오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관찰사가 공무를 보던 곳으로 1730년 두 차례의 화재를 입었고, 현존 건물은 순조 7년(1807) 재건된 것이다. 그 후 1969년까지 당시 경북 도청 구내에 있었으며, 1970년 이곳이 중앙공원으로 조성되면서 보수공사가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징청각
징청각은 선조 34년(1601) 경상 감영이 대구로 옮겨 올 때 선화당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1730년 두 차례의 화재를 입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정조 13년(1789)에 새로 지은 것이다. 그 후 1970년 옛 경상감영 자리가 현재의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보수공사가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징청각은 선화당 뒤쪽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개장시간 : 종일개방
9. 망우공원
관람연인원 약 1,600,000명(행락철 일 4,000명가량)이다.
숙박 시설로 허니문여관(953-1160), 동보장여관(942-9475) 외 10곳정도이다.(동촌유원지내에 망우공원이 위치하므로 숙박시설들은 유원지 입구 쪽에 위치)
공원내에 홍의장군동상, 망우당기념관, 조양회관, 만세기념비, 김만호예술비, 영남충의단 등이 있다. 대구의 동쪽 관문에 자리잡은 공원으로,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망우공원이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장군은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신출귀몰한 전략을 펴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장군은 붉은 복장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나곤 해서 ‘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원 내에는 말을 타고 장검을 찬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동상 가까이에 망우당 기념관을 지어 장군의 유품을 보관해 두고 있다.
망우공원에 들어서면 하얀 성벽 위로 번듯한 누각 하나가 맨먼저 눈에 띈다. 바로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써,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80년에 옛모습을 찾아 이곳에 중건해 놓았다.
대구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인 조양회관도 공원 내에 있다. 조양회관은 일제강점기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1922년에 건립되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 ‘조양’(朝陽)이란 이름에는 ‘조선의 빛’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공원 사방으로는 백일홍, 목련, 은사시나무 등이 동산을 이루고, 뒤쪽 절벽 아래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연혁>
1972. 4.22. 홍의장군동상 및 기념관 건립
1972. 11.26. 공원결정
1974. 2.28. 공원관리실 신축
1986. 2.28. 공원조성계획결정.
1990. 10. 6. 공원조성계획변경
10. 성모당
성모당은 초대 대교구장인 드망즈(안세화) 주교에 의해 계획되었다.
안세화 주교는 부임 후 루르드의 성모님께 3가지를 청원하였다. "주교관과 신학교를 건설하고 주교좌 성당을 증축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주교관을 위해 예정된 대지안의 가장 좋은 장소에 루르드의 동굴과 유사한 동굴을 세워 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였다.
동굴 윗면에 표기된 1911은 대구교구가 설립된 연도이며, 1918은 안주교께서 교구를 위하여 하느님께 청한 3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진 해를 가리킨다.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허원에 의하여란 뜻이다. 성모굴의 평면형은 우측면의 배면이 약간 꺾여들어간 장방형으로 암굴처럼 꾸며진 내부에 성모상을 모셨다.
외관은 화강석 기초위에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과 수평띠를 구성하고 나머지 벽면에는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각부의 비례 구성이 아름답고 벽돌조적이 정교한 건물로 지금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대구유형문화재 제29호이다.
11. 대구향교
대구향교 연혁의 대강은 향교지와 대구부읍지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먼저 향교지에서는 대구향교의 연혁에 대해 "대구향교는 태조 7년(1398) 대성전과 명륜당을 창건하였으나 정종 2년(1400)에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 34년(1601)에 대성전, 선조 39년(1606)에 명륜당을 중건하였고 1932년에 현재의 남산동으로 옮겨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구부읍지는 대구향교의 연혁에 대해 "향교는 부의 동쪽 2리에 있다. 처음에는 동문 밖 고성에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곳에 옛 향교터라고 한다. 이후 선조 32년(1599)에 달성으로 옮겼다가 선조 38년(1605)에 달성으로 부터 지금 있는 곳으로 개축하였다. 명륜당과 동서제는 모두 성균관 제도대로 했다.
이상의 기록과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구향교는 태조 7년(1398) 부동 2리(지금의 동성로 교동으로 추정)에 건립되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의 병화에 소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선조 32년(1599)에 달성공원 남각에 건립하였으나, 관찰사의 장계를 올려 윤허를 받아 옛터인 교동에 다시 옮겼지만 명륜당은 역부족으로 건립하지 못하였다.
인조2년(1624) 대구 사림이 명륜당 건립안을 건의하여 즉시 착공하게 되었으며, 이듬해에 준공하였다.
교동의 향교가 현재의 남산동으로 이전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당시 일제는 복잡한 대구시가지를 정리한다는 핑계로 향교 이전을 강행했지만, 실제로는 향교를 중심으로 지방유생들의 독립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향교 경내는 토담을 길게 가로놓아 앞·뒤뜰을 엄격히 구분해 놓았다. 앞뜰에는 명륜당, 낙육재 등 비교적 근래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외삼문을 열고 뒤채로 들어서면 조선시대의 건물인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은 1601년(선조 34년)에 지어진 건물로 내부에 중국과 우리 나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견실한 건물로, 지붕과 처마의 이음매 부분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성전 앞뜰에는 옛경상도 관찰사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즐비하게 서 있어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교는 한문교육·예절교육 등 다양한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통혼례장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정원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어 조용히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다.
1398 : 조선태조 7년 지금의 중구 교동에 창건
1592 : 임진왜란으로 소실
1599 : 현 달성공원에 이전 재건
1605 : 구지인 교동으로 환건
1625 : 명륜당에 복원
1932 : 현위치에 재이건(대성전, 동, 서무, 명륜당)-일제시대
1947 : 대구대학 설립인가 - 명륜당에 개설
1974 : 명륜당, 삼문, 사무실 중건
1981 : 대구직할시 승격에 따라 재단법인 대구직할시 향교재단 설립등기
1990 : 동재, 서재, 낙육재 복원
1995 : 유림회관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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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구에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고, 즐길 곳이 많은데 ..
타지역 사람들이 대구에 가볼만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대구 토박이인 나에게
질문을 해올때면 늘 "대구는 갈 만한 곳이 없어." 라고 대답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지금까지 자라온 내가 내 고향 내 지역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랑하겠는가 ...
반성하고 우리 고장 대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교양있는 대구 시민이 되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