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법원에서 존엄사를 허락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김할머니의 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김할머니는 죽지 않고 자가호흡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도 스스로 살아 있다. 이 과정에 김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느니 마니 하는 것은 왠지 포인트를 흐리는 부차적 이야깃거리인 듯 하지만, 사실 공사 다망하신 네티즌들에겐 이 사건이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인터넷 상에 올라오는 여러 가십들,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간에 사고, 열애, 결혼, 파혼따위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 네티즌들이 오래 굶은 개처럼 달려들어 불쾌한 악취를 풍기며 살점을 뜯어내며 천박하게 웃는 일들이야 너무나 빈번하고 자연스레 벌어지는 일들이다만. 이번 사건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앞에 문제들에 비해 더욱 복잡하고 조심스러운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다시 김할머니의 눈물로 돌아가자면, 네티즌들이 그 눈물에 대해 매기고 있는 판단은 바로 자식들의 대한 원망이다. 물론 김할머니가 실제로 눈물을 흘렸어야 앞으로의 논의가 존재론적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나는 실제라고 가정했을 때 벌어지는 타자들의 기상천외한 반응에 관심이 있으므로 사실여하는 당장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보기에 네티즌들의 대다수는 김할머니의 눈물과 존엄사를 선택한 그녀의 가족들을 향해 비난과 원망을 합치시키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전복시킨 상황을 가정하며 그들이 그들 부모의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기때문에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그들의 잘못의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므로 나는 그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제스쳐를 보내주는 것이 합당한 듯 싶기도 하다.
내가 가장 지적하고 싶은 점은 네티즌들이 대체 얼마나 그들의 가족에 대해 아느냐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존엄사를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선택하는 자들의 심정을 비난할만큼 확신에 가득찬 -다른 표현으로 오만한- 사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그 가족들이 경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선택을 하기까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을 두려움과 슬픔을 완전히 무시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인지과학, 심리학등에 능통한 일부 네티즌들이 그 상황을 보니 자식들의 완전무결한 계획된 살인이라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우리가 아는 정보가 너무 적지 않은가? 기껏해야 신문과 뉴스에서 전하는 간략하고 정제된 이야기들 뿐 아닌가. 게다가 의식이 없는 김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도 불명확할뿐 아니라 그것이 자식들에 대한 원망일지 대체 누가 안단말인가.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그 원망은 김할머니의 특권이지 타자인 우리들의 경솔함일리 만무할 것이다.
어쩌다 길게 썰을 풀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남 말 할때에는 좀 조심했으면 하는 것이다. 좀 전에 보니 김할머니 가족들이 과잉 진료를 한 세브란스 병원에 위자료를 청구했다고 하는데, 그리고 이 기사가 뜸과 동시에 더욱 조직적인 비난여론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조심히 말하거나 아니면 함구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다시 언급하지만 나는 존엄사가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존엄사의 존엄은 인간다움의 존엄이라기보다 돈의 존엄이 아닌가 한다. 고작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신성하고 존엄한 돈이 쓰인다는 것에 대한 일부 지각있는 현대인들이 신성모독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