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 대한 단상.
자기 자신을 단단히 세우도록 만들어 주는 자존심.
그러기에 한번 무너지면 그 사람은 정말 휘청거리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세운 자존심이라 매우 허술한 것이라서 단단한 활대가 되어주지 못해
종종 사소한 일로 꺾여버리는 일 많다.
삶이 그렇듯이 자연과 주변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어
단단하고 견고하게 세운 자존심 일 수록 한번 꺾이면 완전히 부러져나가기
마련이다.
나또한 내가 세운 자존심이 아주 작은 일로 부러져 나가서 나뒹구는 경험을 해보았다.
그런 일은 매우 자주 일어나고 또한 지금도 그런일을 겪었다.
내가 세운 긍지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을과 남에게 내세울만한 꽤나 잘하는 것들을 모아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토대로 세웠다.
그것을 나는 자존심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매우 자랑스러웠고 대놓고 자랑하지 않았지만 타인과 비교하며
은근한 우월감을 즐기면서 살아 왔다.
자존심은 이런 일들로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편견을 조성하는데 이런 편견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조성에서 일종의 무리를 짓는데 조건이 되기도 하고 타인을
비판하고 혐오하게 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허나 삶을 살다보면 이렇게 자신이 세운 자존심을 깨뜨리는 일들이 꼭 기필코 일어 난다.
어째서 내가 정성들여 세운 나를 내세우는 자존심이 이렇게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려고 할때 마다 꺾이고 마는 건지 참으로 궁금했다.
스스로 가장 단단히 세워놨다고 생각 했을 그 시점에 사건은 꼭 터진다.
일련의 이런 경험들로 종종 타인을 경계하고 비난하고 미워하는 존재들이 생겨난다.
이런 자존심과 편견은 함께 동반되어 지면서 과연 삶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가.
이것은 단지 사람의 어리석음의 징표밖에 되지 못하는 걸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빈정거리는 토대로 밖에 사용되어지지 못하는 걸까?
혼자 그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자존심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은
이야기 전반을 지배하면서 그것을 각각 사람의 관계를 엮어 놓으면서 그로 인해
사건들이 터진다.
그것은 비단 소설속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사건은 이렇게 전개 된다.
사람이 자신이 가진 자존심을 내세워 타인과 비교해 우월감을 누리고 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든 숨겨져 있든지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타인이 그 자존심을 땅바닥에 던지고 짖밟아 주기까지하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빈정거리고 무시하던 존재에게 당하게 된다는
이 드라마틱하고 소설같은 전개는 삶에서도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 이다.
그렇게 내가 무시하고 비웃고 나의 기준에 닿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던 존재들에
의해서 나 자신이 세운 자존심이 무너지고 나면 한동안 분노와 슬픔에 잠겨서
타인에게 등돌리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런 나의 자존심과 편견이 참으로 헛된 것이였으며
또다시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슬그머니 뒤를 돌아 보게 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뿐일까?
그렇게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생각과 장점들만이 자아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과 실수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회복하는 축복은 그리 많은 사람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마크 다시가 자신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엘리자베스에게
다시금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다가가는 것은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는 오늘도 무너진 나의 자존심의 파편은 허망하게 바라보면서 내가 편견을 가지고
손가락질 하고 빈정거렸던 그 말들이 나에게 돌아온 것을 보며 나를 겨우 추스리려
이렇게 떠들어 보지만 여전히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극복하지 않는다면 나의 진정한 가치는 드러나기 힘들 것 이다.
그러니 나는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미래를 구축해 나가는 방법이다. 인생을 가치있게 분주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