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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이현석 |2009.07.05 00:20
조회 309 |추천 7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잘 살기가 힘들다. 그녀들이 잘 살기 위한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날씬하고 예쁘게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현대성형의학은 뚱뚱을 날씬으로, 못생김을 예쁨으로 바꿔놓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이 존재하며, 그녀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그 이유 역시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현대성형의학이 날씬을 아주 날씬으로, 예쁨을 아주 예쁨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아주 날씬을 아주아주 날씬으로, 예쁨을 아주아주 예쁨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성형의학은 절대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발전되어온 것이 아니다. 사회의 진화양상은 그만큼 도덕적이고, 이상적이지가 못하다. 미인을 더욱 예쁘게 만들기 위하여, 기존의 권력자가 더욱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말하자면, 과학기술마저도 약자의 편은 못된다. 그러면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들은? 그런 건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지금껏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도 사회는 잘만 돌아갔다. 어떻게든 지들끼리 알아서 살겠지. 아니? 그렇게 살아왔잖아. 새삼스럽게 갑자기 왜들 그래. 당신들, 좀 촌스러운데?

 

여자도 아닌 내가 새삼스럽게 이런 촌스러운 생각이나 하며, 잠이 안와서 하는 짓쯤으로 주절주절 쉰소리나 하는 데에는, 사실 이유가 따로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날씬한 미인들이 아니다. 물론, 뚱뚱한 추녀들은 더더욱 아니고. 진짜 흥미로운 것은 그 가운데에 놓인 절대다수들 즉, 고만고만하게 생긴 여자들이다. 고만고만하게 생긴 여자들이란 말인 즉슨,

 

어느 날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 나와 동갑내기인 한 여자가 새로 오게 된다. 비교적 나이가 젊었던 사장은 면접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들의 담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슬쩍슬쩍 여자애의 얼굴을 관찰 혹은 평가한다. 일이 끝난 후, 나는 친구들을 만나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여자애 한 명이 새로 왔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은 일제히 합창했다. 예쁘냐? 그냥, 뭐. 고만고만해. 흠, 그래? 그렇군. 놀랍게도 친구들은 모두 다 이해하는 분위기다.

 

고만고만한 여자들이란, 사회점유율 80%를 이루는 절대다수의 계층이다. 당신의 누나, 당신의 여동생, 당신의 친구. 혹시 고만고만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천부적 외모가 될 수 없다. 80%라면, 사회 전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생겼고, 자신 역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여성들의 80%는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 성형수술의 수요는 하위 10%와 상위 10%이어야만 타당한 것이다.

 

하위 10%는 성형수술을 통하여, 충분히 고만고만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이는 더 이상 천부인권의 차별이 아니다. 모든 이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평균에 도달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상위 10%는 연예인이거나 화류계 여성이다. 그들이 어찌 살든, 우리 모두의 알 바는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지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간다.

문제는 다시, 절대다수 80%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당신의 누나, 당신의 여동생, 당신의 친구. 그들은 왜 앞트임을 하고, 코를 세우고, 턱을 깎는 것일까.

 

그거야, 남자들이 원하니까 그러는 거죠. <VJ특공대>에나 나올법한, 심플하면서도 대중을 대변하는 어투로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말한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눈이 큰 여자를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콧대가 높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턱선이 갸름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우문현답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여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수정'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남자들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얼굴 예쁘게 튜닝한 것이 남자들이 원했기 때문이란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열녀 포스다. 워워, 부담스러워라. 예뻐져서 좋긴 하다만, 말은 바로 하자. '남자들이 원하니까'가 아니라, 니가 '남자들을 원하니까'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현상이기는 하다. 경제관념적으로 봐도, 경쟁이 치열하면 으레 질좋은 제품이 생산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여자들의 외형적 가치가 빠른 속도로 상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것에 반해, 남자들의 '실용적 가치'는 그에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여자들에게 안 좋은 소식이다. 기껏 '남자들'이 원한다고 해서, 거의 '반(半) 김태희'까지 튜닝해 놓았는데, 아뿔싸 '남자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눈씻고 주위를 둘러봐도 연봉 1억에 아파트와 중형차를 소유한 '실장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의 20%가 나머지 80%를 먹여살린다는 8:2의 법칙이 있다.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고? 그렇다면 능력있는 남자는 기껏해야 20% 수준인데 반해, 예쁜 여자는 80%가까이 넘쳐난다. 여기서 잠깐, 아까 언급했던 문장을 여기 그대로 옮겨보자.

 

<그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천부적 외모가 될 수 없다. 80%라면, 사회 전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생겼고, 자신 역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여성들의 80%는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

 

아직도, '남자들이 원하니까' 성형수술을 한다고 말할 셈인가. 바보가 아니라면, '실장님' 찾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외모가 아닌 다른 분야의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예쁜 상황에서 자신이 예쁜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거 원, 내가 마치 '실장님'이거나 상당히 마초적인 반여성주의자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난 어디까지나 가설의 반증을 위하여, 나조차도 역겨워하는 '남성권위주의'를 전제했을 뿐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제 '남성권위주의' 따위의 말은 씨알도 안먹히고, 농담 축에도 못낀다.

 

물론 나도 안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그리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만큼 못나지도 않았으면서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시비걸 게 뻔하다. 남자들 사이의 모임에서 돈없으면 쪽팔리는 법이고, 여자들 사이의 모임에서 못생겼으면 쪽팔리는 법이다. 넓은 시각에서는 모든 게 다 인지상정이다.

 

나는 이 글의 결론을 낼 생각이 없다. 참고로, 나는 누구에게도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비판했다면, 나는 해결방법을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단지 우리사회의 모습일 뿐이다. 잘한 사람도 없고, 잘못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유행이라면 유행이고, 대세라면 대세다. 나는 다만, 남자든 여자든 각자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세상이야, 어차피 적자생존 그 이상이 아니다. 적자의 무리에서 탈락되는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래, 스타일.

추천수7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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