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엔니오 모리꼬네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세상을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이분법의 양지에 서 있는 이들과
함께 있었다.
엔니오 모리꼬네 내한공연을 갔다.
저 멀리 노인의 손짓에 따라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데보라 테마가 흘렀다.
나는 발레하는 소녀 데보라와 훔쳐보는 소년 누들스를 떠올렸다.
그 낮은 허밍과 바이올린 소리에 어둠속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빨간 눈을 하고 있었을까.
계속되는 영화 말레나, 시네마천국.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OST가 흐를 땐 침몰하는 폐여객선에서
내리지 않은 1900의 쓸쓸함을 떠올렸다.
에어컨이 없는 그 공간은 매우 더웠는데.
나는 가끔 추위에 떠는 것처럼 오들오들거렸다.
능청스럽게 깔려버리는 바이올린 연주 그 시작에 맞춰
몸의 털이 모두 일어났다.
다들 속으로 따라부를 수 있는 그 익숙함에 몰입할 때
나는 차라리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고 조명불빛을 살폈다.
저기 사람 없는 객석에도 눈길을 주고
어떤 감명을 받았을지,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의 뒷모습을
가는 눈으로 지켜봤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올 때
눈을 감는 행위와 비슷한 건데.
지금을, 이 충만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모두 아우르고 있다. 모두 기록하고 있다. 정도의 의미가
있겠다.
초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지 첫날 밤에 그랬던 나의 모습처럼.
주변을 살피고 모두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역설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모두를 아우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한발 물러나는 지혜를 익혔다.
대학 오티, 엠티, 축제때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흥청이는 밤일 때
그 가운데에서는 살필 수 없는 주변의 이야기들,
놓치고 있는 저 끝의 무언가가 궁금해서
나는 먼발치서 소외된 누군가를 챙기고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여유가 너무 좋다. 정도로 파악했었는데.
그것은 아까 말했듯이 모든 걸 아우르고 싶어하는 내 욕심이였다.
그렇게 욕심쟁이라서,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에 기인해 현실에
만족해 버려서.
더 높은 곳에 닿지 못하는 지도,
지금 소중한 것을 잃는 게 두려워서 사랑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감상적인 나를 벗어나 조금 꼬집어 보자면
엔니오 모리꼬네는 단 한마디의 인사도 하지 않았다.
줄곧 지휘만 했다.
그것이 아쉬웠고.
내가 좋아하는 캐논 인버스의 테마와 러브 어페어,
시티 오브 조이 OST가 연주되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3, 4번이나 앵콜 공연을 하며 마지막엔 더이상 없다는
의미로 악보를 모두 챙겨서 안고 나갈 땐 그 유머스러운 상황이
참 즐거웠다.
나는 꼭 보고 싶은 3가지 공연이 있었다.
첫번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이승환 콘서트이고.
두번째는 엔니오 모리꼬네 공연, 세번째는 SES의 공연이었다.
이승환 콘서트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노리다가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오리지날 버젼 콘서트를
같이 오랜 시간 기다려온 고향 친구와 참석함으로써
이뤄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오늘로써 실현했다.
SES의 공연은. 그 의미상 당대 여자 아이돌 그룹을 말하는 건데.
이제는 소녀시대 쯤 되겠다.
서른 다 되서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뤄내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해본다.
공연을 극찬에 가깝게 얘기했지만 십 몇년을 기다린 이에겐
그 기대치가 너무나 높았나보다.
나는 누구보다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내 십몇년의 갈증을
생각한다면 사실 조금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나는 초등학생 시절 시네마천국에서 시작된
이처럼 청승맞은 감성이 엔니오 모리꼬네 그의 영화음악에서
기초하였음을 다시 생각해냈다.
영화를 본 다음날 학교 책상에 엎드려 나는 얼마나 그 테마를
흥얼거렸던가.
내 뒷쪽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에 공감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나처럼 오래 기다려온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에
가슴 어딘가가 충만해져서 그랬으리라.
1928년생 그가 2시간 40여분동안 서서 열정적인 지휘를 했다.
마지막 악보를 챙기고 돌아서는 뒷모습에
누군가는 나처럼 한번쯤 그를 다독였으리라.
'오 캡틴. 마이 캡틴.'
책상이 앞에 없었기에 영화처럼 그를 뒤돌아보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익숙한 그의 음악, 박수소리.
귓가에 여전하다.
여름을 타는 최원영.
오늘이 내 시작되는 여름의 신호였던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